수필가 방인숙의 옐로스톤·그랜드 티톤 여행기②
공작새의 패션쇼
어느새 황금 같은 여행길의 하루해가 쏜살같이 기울었다. 우린 중국뷔페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김치볶음밥에 김칫국, 도가니 등의 특별 사이드메뉴가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대기하고 있을 줄이야. 우린 배가 작은 남산만 해져서 첫 밤의 숙소에 안착했다. 아이다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며 교통의 요지인 포카텔로
다. 우린 온천물의 여운을 아끼느라 샤워생략이다. 신기할 만큼 생 머릿결임에도 미끄럽고, 민얼굴도 당기지 않고 뽀야니까. 더해서 바지런한 친구가 방방을 돌아다니며 오이마사지 서비스까지 했다. 얼굴이 호사
한 덕인지 몇 년은 젊어 보인다.
둘째 날 아침 6시. 룸메이트인 뉴욕에서 만난 20년 지기 단짝이랑 산책길에 나섰다. 먼 앞쪽, 능선이 포근한 산들의 중턱에 노란 야생화들이 무리 지어 피었는지 드문드문 노르스름한 초원의 목장이다. 구릉 따라 걷는데 들꽃과 잡초들이 뉴욕과 다르다. 성명미상의 자잘한 연 노랑과 중 노랑꽃의 야생화들이 주종인데, 우리 멋대로 유채와 장다리꽃으로 명명했다. 엉겅퀴도 뉴욕제보다 잎이 좁고 뾰족하고 가시도 날카롭다. 약간 사막성의 토질 탓인가? 버스는 아이다호 주 아니랄까봐 온통 감자밭 천지인 길을 달린다. 동부의 시골에서 보던 광대한 옥수수 밭은 규모상 저리가라다. 지금 저 광활한 땅속에서 오글오글 뿌리에 매달려 있을 어마어마하게 많은 감자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그런데 쇠파이프들을 삼각형으로 쭉 연결해서 세운 것들이 군데군데 눈에 뜨인다. 키 작은 풍력발전설비를 쭉 이어놓은 모양새다. 저게 뭐지? 내내 의문의 눈길로 보다가 드디어 한 곳에서 물을 뿜고 있는 걸 보게 됐다. 가까이 보니 밑에 바퀴가 달려서 논두렁모양 골이 진 곳을 따라 드넓은 감자밭을 이동하게끔 돼있다. 물줄기가 X자형으로 쭉 엇갈리며 뿜는 삼각형 꼴의 뽀얀 물보라가 장관이다. 퍼뜩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지붕형상과 교차된다. 그리고 뉴욕과 달리 내가 사랑하는 미루나무가 유난히 많다. 작은 호수들이 참 많은데 호수 주변마다 미루나무 숲이다. 고향의 전원적 풍광과 비슷해 반갑기 그지없다.
반면에 은빛 가로수들이 낯설다. 전체적으로 뽀얀 빛을 띄워 보리수인가 했지만 보리수보다는 잎사귀가 좁다랗다. 은사시나무랑은 잎꼴이 완연 틀리고. 궁금해서 가이드께 물어보니 올리브나무란다.
지중해 연안도시도 아닌데 설마 올리브로 가로수를 심었을까. 반신반의해서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 올리브나무 사진을 보았다. 잎이 큐티클 층으로 덮여있고 유도화 잎과 비슷하지만 덜 뾰족하고 조금 넓은 타원형이다. 올리브나무는 최소한 15년 이상이 지나야 첫 소출을 얻는다는데, 중키의 그 가로수들이 하나같
이 열매가 없어 석녀로 보였으니까. 20에이커에 달하는 베어월드동물원에 도착했다. 무스, 바이슨과 곰들의 야생생태를 버스에 탄 채 엿보는 곳이다.
마침 곰들 옆에 새끼곰들이 보였다. 곰박사>이신 가이드 말에 의하면, 곰이 겨울잠 중간에 새끼를 낳고는 겨울잠을 깨자마자 새끼한테 제일 처음 먹이는 게 꿀이란다. 꿀 얘기가 나오니 벌이 멸종되는 추세로 심각하다는 작금의 ‘불편한 진실’이 언뜻 머리를 친다. 하여간 벌의 멸종은 벌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다. 사슬고리로 연결된 모든 생물에 여파를 끼치고 종래엔 인류의 멸망까지 이어지기 마련일 터. 또 하나 ‘섬뜩한 진실’은 먹이사냥도 안하는 게으른 곰 아빠가 새끼를 보면 죽인다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고로 새끼를 3년 동안 아빠랑 격리시키고 4년 만에 성인식을 한다나.
버스에서 내려 냇가로 가니 북미산 하얀 백조가 유유히 물놀이 중이다. 얼굴만 거무스름해 전체가 순백인 백조랑 다르다. 소 동물원의 순한 동물들도 우리에 넣지 않아 자유를 만끽중이다. Silkies는 하얀 백설공주 닭인데 옛적 양계장에서 보던 백색 레그혼보다 작고 모양에 차이가 있다. 메추라기 형인데 좀 크다고 할까. 하여간 참 예쁘다. 회색바탕에 빨간 땡땡이가 있고 주둥이와 벼슬이 빨간 점백이 이름은 Plymouth Rock이다. 타조같이 점백이 꽁지가 늘어지고 목이 가늘고 긴 닭은 꿩과의 새로 서아프리카산 Guinea Fowl이란다. 종류에 따른 닭들의 ‘화려한 변신’이 다채로워 놀랍다. 이정도면 ‘변신지수’가 새들 못지않게 높다. 그중에서도 끼 많은 공작새의 패션쇼가 요즘말로 단연 ‘인기 짱’ 이다. 날개를 큰 부채인양 쫙 펴고는 ‘날 좀 보소!’하며 팽그르르 360도 도는 거였다. 천천히 우아하게. 그 덕에 처음으로 날개 편 뒷모습까지 보게 됐다. 황홀할 만치 아름다운 앞날개랑 달리, 그 날개 뒤는 아래가 누런 조그만 부채, 위는 누르스름한 단색의 큰 부채모양으로 수수하기 짝이 없다. 앞면이 총천연색 영화라면 뒷면은 흑백영화의 차이쯤 될까. 그런데 나는 화려한 앞 얼굴보다 숨겨진 뒷면의 검소한 진짜 모습이 더 마음에 다가온다. 소박하고 진실 됨이 느껴져서다. 이 등식은 인간관계에서도 성립되곤 했다. 그럴싸하고 완벽하게 포장한 겉모습만 보다가, 어느 순간 감춰진 약점이나 허술함을 발견했을 때의 친밀감!
또 하나 감동 이벤트는 사슴이 연출했다. 아기 사슴이 마침 응가를 했는지 어미 사슴이 연신 아기사슴의 항문을 핥아준다. 그 틈에도 아기 사슴은 엄마 배 아래에서 젖을 빠느라 정신없다. 서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뭉클하도록 아름다운 모정과 사랑의 장면이다.돼지들도 새끼들을 낳은 지 얼마 안됐단다. 실상은 내가 돼지띠라 의리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새까만 아빠랑 흰점박이 엄마인데 엄마붕어빵점박이가 세 마리고 아빠붕어빵은 두 마리다. 하나같이 가늘고 짧은 꼬리가 또르르 말려 올라가서 웃음이 절로 인다. 내 생전에 그렇게 귀여운 돼지들은 처음 봤다. 지저분하고 못난이의 대명사이던 돼지도 얼마든지 ‘이미지 변신’이 가능하다. 그래도 얼굴은 분명 납작코돼지에 틀림없으니 지금 행복한 마음으로 봐서 더 예쁜가. 어쨌든 참으로 생물의 종의 기원과 번식 사이클이 신비스럽다. 확실한 건 무슨 동물이건 간에 애기들은 무조건 더 예쁘고 천진하고 사랑스럽다는 것.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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