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는 하늘을 너무 높이 날려하다 떨어져 죽은 비운의 청년이다. 미노스왕의 분노를 사 아들 이카루스와 함께 지중해 크레테섬 미로의 감옥에 갇힌 당대 최고의 장인 다이달루스는 아들의 탈출을 위해 날개를 만들었다.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붙인 날개를 달고 비상하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당부했다. “너무 높게 날아선 안된다” 젊은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충고를 잊어버린채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 경이로운 모험이었고 꿈의 실현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뜨거운 태양열에 밀랍이 녹고 날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그는 바다로 추락하고 말았다.
이상을 향한 노력과 도전 정신을 동경할 때도, 무모한 욕망에 의한 몰락을 경고할 때도 자주 인용되는 양면성을 지닌 이카루스의 비상은 지금도 인간에겐 경계하면서도 끌리는 치명적 매력으로 다가온다.
아리아나 허핑턴은 자주 “이카루스 이후 가장 높이 오르려는 그리스인”으로 불린다. 모국 그리스를 16세 때 떠나온 이후 치열한 노력과 빈틈없는 인맥쌓기로 신분상승에 성공하고 이제 미국 인터넷 미디어의 여왕으로 등극하는 그에 대한 질시어린 조소가 담겨있다.
이런 아리아나가 2005년 인터넷 사이트 ‘허핑턴포스트’의 출범을 발표했을 때 평론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리아나가 리버럴 친구들을 위해 마련하는 디지털 사교장 정도로 무시했다. 그러나 ‘허프포’란 애칭으로 불리는 이 사이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속도로 무섭게 성장했다. 인터넷 미디어의 새 시대를 역설한 아리아나 자신의 기대조차 뛰어 넘었다.
허프포는 실패함으로서 성공한 셈이었다. 처음 아리아나가 약속했던 월터 크롱카이트와 워런 베이티, 다이앤 키튼등 명사들의 블로그 참여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사이트 자체엔 활기가 넘쳐흘렀다. 1년만에 700명으로 늘어난, 대부분 듣도 보도 못했던 블로거들 덕택이었다. 올드미디어와는 달리 인터넷을 통해 ‘독자들이 적극 참여하며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해가는’ 뉴미디어 가능성에 대한 아리아나의 착안은 적중했다.
방문트래픽이 급증하며 출범 4년만에 세계 영향력 1위의 정치블로그로 선정되었고 블로거 6,000명에 월 방문자 수가 2,500만명에 달하면서 지난해부터는 흑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번 주 초 인터넷기업 AOL은 허핑턴포스트를 3억1,500만달러에 매입한다고 밝혔다. 친지들의 투자금 200만 달러로 시작한 게 불과 6년 전이었다.
돈만 번 것이 아니다. 아리아나는 합병후 설립될 ‘허핑턴포스트 미디어그룹’의 대표 겸 편집인으로 선임되었다. 허프포는 물론 AOL 소유의 다양한 사이트들을 휘하에 두고 전세계 3억명 방문자들을 연결하는 거대 미디어 그룹의 얼굴이 된 것이다.
지난해 허프포 매출액 3,000만 달러의 10배가 넘는 매입가가 너무 비싸다는 지적에 일각에선 그건 “아리아나를 스카웃한 몸값”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계속되는 적자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AOL이 다이내믹한 아리아나의 리더십으로 재탄생하기 원하기 때문이다. 아리아나가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상승해왔듯이 기업의 도약변신도 훌륭히 이뤄낼 것이라는 기대다.
196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입학으로 본격 시작된 아리아나의 일대기는 컬러플하기 짝이 없다. 30대초에 미국으로 건너 온 그는 돈도 명성도 뛰어난 미모도 없이 사교계 진출에 성공했다. 그가 몇 년 후 석유갑부 마이클 허핑턴과 결혼할 땐 재벌가의 앤 게티가 결혼식 파티비용을 전담했고 방송계의 스타 바바라 월터스가 둘러리를 섰으며 그의 하객명단엔 헨리 키신저가 포함되었다.
타고난 사교성으로 치밀하게 인맥을 쌓았고 치열한 노력으로 지성을 연마했다.
남편의 공화당 연방하원 당선으로 함께 정계에 입문하며 보수해설가로 이름을 날리다가 이혼한 뒤엔 리버럴로 기울더니 2003년엔 무소속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했다가 도중하차했으며 다시 2년후엔 허핑턴 포스트를 설립했고 진보진영의 인기 칼럼니스트로 자리를 굳혔다. 피카소의 전기에서 정치와 그리스 신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13권의 저서를 출판,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하고 표절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열정과 지성과 용기와 의지에 대한 찬사에서 독선과 기회주의와 비도덕과 이기적이라는 악평까지 상반된 평가를 아랑곳 않고 계속 상승을 꿈꿔온 아리아나가 원하는 것은 돈보다는 영향력이다.
스스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어온 그에게 실제로 막강한 영향력이 주어지자 ‘아리아나 허핑턴’이 전국의 핫토픽으로 떠오르면서 갖가지 분석과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 아리아나는 AOL을 살릴 수 있을까. 허프포는 진보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정치블로그를 탈피, 신구미디어의 장점을 묶겠다는 아리아나의 ‘인터넷 뉴스페이퍼’는 성공할 수 있을까…
AOL은 “전 세계에 가닿을 차세대 미국 미디어컴퍼니”를 구상하고 아리아나는 “1+1=11”이라며 시너지 효과를 장담한다. 그러나 이번 거래를 바라보는 월가와 언론계는 의구심을 숨기지 않는다. 지금 인터넷 매체들이 누리고 있는 무료 블로거와 공짜 콘텐츠의 혜택이 언제까지 가능한가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6년전 허프포에 대한 의구심은 훨씬 더 컸었다. 아리아나 ‘여왕’이 만들어 갈 인터넷 신문의 내일을 진지하게 지켜보아야 할 이유다.
박록 주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