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타’ 는 인디언과 잘 융화하느 몰몬교 ‘우대’ 뜻
열 명의 친구들이 매달 조금씩 경비를 모았다가 여행을 하곤 한다. 이번엔 나도 합류해서 옐로스톤과 그랜드 티톤을 다녀왔다. 떠나기 전날은 마침 월드컵 16강 혈전의 날이었다. 10명이 한 멤버의 집에서 빨간 티셔츠대신 빨간 수박을 입에 물고 열띤 응원을 벌렸다. 국가적인 빅게임은 역시 함께 봐야 감동의 파고가 이심전심 더 높아진다. 하 세월, 오로지 축구만을 위해 죽기 살기로 뛰었을 선수개개인들의 피땀과 열정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하다. 결과는 모두의 숙원대로 돼서 그야말로 멋진 여행길 전야제가 됐다. 하물며 여행은 떠나기 전날이 제일 행복한 법이거늘.
다음날 새벽 4시, 설렘을 안고 안개가 자욱한 텅 빈 거리를 달려 오랜 친구인 여고동창 집으로 갔다. 차를 세워 놓고는 친구남편 차에 편승해 공항으로 달렸다. 그렇게 꼭두새벽에 떠난 첫 기착지는 45번째로 주로 편입된 유타의 주도인 고원도시 솔트레이크
다. 유타는 ‘우대’한다는 뜻인데, 옛적에 몰몬 교인들이 자기들과 잘 융화한다고 인디언들이 지은 이름이란다. 그래 선가. 공항분위기가 소박해 마음이 편하다. 수수한 외양에 카우보이모자들을 쓴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의 부드러운 눈빛 때문인가?
솔트레이크는 동쪽은 평균고도가 1320m인 워새치산맥과 빙햄산맥 사이에, 서쪽은 사막으로 이어지는 불모지다. 그래서 세계에서 제일 가볍고 건조한 눈이 내려 눈사람도 못 만든단다. 솔트레이크하면 우선적으로 떠올려지는 게 있다. 주민 76만 명중 70퍼센트가 일부다처제의 몰몬교 신자들인 몰몬교의 본산지라는 거. 그리고 지척에스노우스키 리조트지역으로 유명한 파크시티가 있다는 것. 그 파크시티에서 배우 로버트레드포드의 주최로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이름을 딴 선댄스영화제가 열린다는 것 정도였다. 아니 한국인에겐 ‘아! 어찌 우리 잊으랴!’가 있다. 2002년 동계올림픽 때, 안톤 오노가 비열한 스포츠맨 쉽인 헐리웃 액션으로 김동성의 1500M 숏 트랙 금메달을 채갔던 일로.
우린 공항에서, 미국 각지와 먼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 그리고 가이드란 분과 상견례를 한 다음 관광버스에 올랐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식당으로 향했다. 인제는 세계 어디를 가던 한국식당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고 뿌듯하다. 처음 찾은 관광지가 솔트 시에서 남서쪽으로 불과 30마일 지점인 빙햄 구리광산이다. 인류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한 금속이고 특히나 요즘 첨단기기엔 필수인 그 구리 말이다. 광산이라기에 의례 밑에서 파 들어가는 굴을 구경하겠거니 했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버스는 계속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어! 갑자기 나타난 어마어마하게 입을 벌린 황토 흙의 거대한 분지! 전혀 예측불허의 광경이다. 얼핏 오버랩 되는 게 페루 잉카족의 산꼭대기 유적인 마추피추 사진이다. 그런데 ‘Open Mine’이란 글자가 들어온다. ‘Mine’이란 ‘내 것’이란 소유대명사인데 ‘내 것을 공개? 그럼 기부?’ 느닷없이 뭘 기부하라는 거지? 좀 이상하네 했다. 알고 보니 드릴로 나무를 파듯 산꼭대기서부터 아래로 사발형으로 파낸 광산이이다. 그렇게 형성된 분지가 개방형의 열린 구멍 광산이고. Mine이란 단어에 광산이란 뜻도 있는 걸 여태 몰랐던 탓이다. 한심해라. 뭘 모르면 이렇게 소설을 쓴다 싶어 웃음이 난다.
가장자리로 빙빙 돌아가며 나있는 길이 광석운반용 트럭길이란다. 어찌나 까마득한 아랜지 트럭들이 딱 개미떼다. 그 개미떼들이 나르는 광석이 연간 31만 톤이라나. 참 많이도 캔다. 그렇게 파낸 깊이가 시카고의 시워스 타워 높이의 두 배고, 인간이 파낸 구멍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니 할 말이 없다. 우주 비행사들의 육안으로도 존재가 확인될 정도라는 데야... 탄광굴은 산속으로 파 들어가니 빈 구멍이 생길지언정 겉모습은 온전한 산 모양 그대로다. 그런데 이건 거대한 공룡 아니 괴물이 산 하나를 꿀꺽 삼켜버린 꼴이다. 아무리 인류의 삶에 필요한 광석이라지만 이렇게 산을 거덜 내면서까지 캐야했을까? 처참히 내장을 드러낸 산의 고통과 신음소리가 들리는듯해 마음이 안 좋다. 아니 두렵다. 자연의 변형정도에서 멈추지 않고 경외심 없이 낱낱이 파괴 증발시켜도 되는 건지. 다 파내면 산으로 원상 복구할 계획도 있다지만 인공땜질이 과연 얼마만큼 본연의 맵시를 살려낼까? 이미 죽은 생명인데. 그러고도 자랑하듯 산 하나를 송두리째 요절낸, 통째로 해체 분산한 현장을 관광하라니. 우리보고 어쩌라고...
떡하니 광석운반트럭의 바퀴 하나까지 조각상처럼 모셔놓았는데 어림잡아 사람 키의 두 배는 넘겠다. 적재정량이 292톤이라니 어련하겠냐만 바퀴조차 가해자의 일원이다 싶으니 밉상으로 다가온다. 인간들의 끝도 없는 탐욕과 자연에 대한 무모한 만용이 어떤 벌로 되돌아올까? 만약의 돌발 상황에 대한 철저한 사전대비책도 마련치 않고, 겁도 없이 바다 밑만 혈안이 돼서 팠던 결과가 어떻던가. 지금 몇 달째 바다에다 원유를 하루 7만 배럴씩 펑펑 토해내는 멕시코만 유정의 참사가 머리를 스쳐서다. 뒤끝이 씁쓸하다. 기분이 찝찝해서인가. 머리가 끊임없이 아프다. 잠을 못잔데다 비행기노독 탓 이기엔 좀 심하
다. 그런데 옆에 앉은 친구가 감자 칩이랑 인스턴트커피 팩의 봉지가 빵빵하게 부풀은 걸 보여줬다. 탱탱한 풍선처럼 손만 대면 터지겠다. 일종의 고산증! 그래. 내 머리가 아픈 원인도 갑자기 고도가 높아서였구나. 다행히 늘 핸드백 안이 미니약국인 만사준비완료형 대학동창 친우가 준 타이레놀을 먹고서 나아졌다. 그때 납득했다. 우리 축구건아들이 남아공 고지대에서 싸우기엔 얼마나 불리했던가를. 잠시 고소적응훈련을 했다 쳐도 고지대에서 자란 아르헨티나선수들하곤 도저히 몸 컨디션 상으론 게임이 안 되는 이치를.
그다음 들른 곳이 아이다호감자로 유명한 아이다호 주의 서남쪽, 용암온천이다. 용암으로 생겨난 두 시냇물이 계곡을 가로지르는 사이로 조성된 매력적인 마을이다. 그 라바 야외온천의 서쪽 입구 풀은 올림픽사이즈란다. 어쩔까하다가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유황온천이라 피부를 깨끗하게 해준다는데 혹해서는 아니다. 고백하자면 나는 ‘노천온천 미경험자’다. 고국에도 내가 떠난 후 노천탕이 생겼다지만 여태껏 내겐 그림의 떡이었다. 그깟 야외온천욕이 삶의 필수통과의례는 아닐 것이다. 또 ‘이리 산들 저리 산들 어떠하랴’겠지만, 일단 경험은 꼭 해보고 싶던 차였다. 과연 유황과 미네랄 함유수치가 높은지 냄새도 톡 쏘고 물속에 비치는 다리가 노랗게 보인다. 실내온천물보다 더 매끄럽고. 만사를 잊은 채 한가롭게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건너편의 벼랑을 보았다. 세상에! 주홍색 양귀비꽃들, 보라색의 매발톱꽃, 진분홍의 확스 글로브에 창포까지 눈에 들어온다. 그 위 새파란 하늘엔 하얀 비늘구름이 떠있고. 꼭 천상에 와있는 평화스러움이다. 아! 그때 그 꽃
언덕 위로 기차가 느릿느릿 나타났다. 처음엔 ‘웬 놀이동산의 기차지?’했다. 좀 있다가 네모난 칸을 끝도 없이 길게 달은 진짜화물기차란 걸 알았다. 그래도 어쩐지 낙원으로 사람들을 싣고 가는 하늘기차로만 여겨진다. 참 몽환적인 한 폭의 그림이다. 어느 누구가, 그 높은 벼랑위에, 기찻길이 숨어있는 걸 알았겠나. 기차를 좋아하는 내겐 그야말로 극적인 ‘볼거리보너스’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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