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아리랑처럼, 루마니아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민요는 “미오리짜(Miorita)”이다. 이 민요는 카르파티아 산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목동들의 전원생활과 깊은 연관이 있다. 루마니아의 소설가 사도베아누(M. Sadoveanu)는 자연과 관련된 루마니아 문학작품 중 “이토록 예술적이면서 고상한 심성을 가득 담아낸 작품은 아직까지 루마니아 문학에서 찾아볼 수 없다”라고 언급하였다. 이처럼 루마니아 문학의 최고 서정시로 간주되는 미오리짜는 결국 루마니아 신화(神話)가 되었다.
‘미오리짜’라는 말은 루마니아어로 1~2년 된 ‘어린 양’을 의미한다. 고대부터 루마니아 목동들은 봄이 되면 양떼들을 몰고 카르파티아 산맥의 고산지대 목초지로 올라갔다가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이 되면 다뉴브 강 저습지나 강가로 내려오는데, 미오리짜는 루마니아 민족이 고대부터 행해온 전원생활, 즉 카르파티아 산맥의 양치기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루마니아의 몰도바(Moldova) 지방과 트란실바니아(Transilvania) 지방 그리고 브란체아(Vrancea) 지방 출신의 목동들이 산에서 양떼들을 몰고 내려오는데, 트란실바니아 지방과 브란체아 지방 출신의 두 목동이 몰도바 지방의 목동을 살해하여 그가 소유하고 있는 양떼들과 말 그리고 개를 빼앗으려고 음모한다. 그런데 몰도바 목동이 데리고 다니던 어린 양은 두 목동이 음모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 후 어린 양은 삼일동안 입을 다문 채 풀을 뜯어 먹지도 않는다. 걱정스런 마음에 몰도바 목동은 어린 양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어본다. 그러자 어린 양은 두 목동이 꾸민 음모를 이야기하며 양떼들을 몰아 강가 어두운 숲으로 피하고 목동을 잘 따르는 가장 용맹하고 충성스런 개를 곁에 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어린 양의 말을 듣고 난 후 목동은 죽음을 피하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목동은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았을 때, 죽음을 ‘자연과의 영원한 합일(合一)’로 생각한다. 목동은 어린 양에게 자신이 살아왔고 일해 왔던 곳, 즉 “너희 양떼들이 있는 가까운 곳”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유언하면서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 신화에서 ‘죽음’은 흥미롭게도 우주(宇宙)의 공간 속에서 거행되는 하나의 <혼인식(婚姻式)>처럼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목동은 자신의 신부를 ‘사랑스런 공주님, 바로 이 세상’이라고 말한다. 또한 ‘전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는 혼인식 하객들이 되고 ‘산맥’은 신부님이 되고 ‘태양과 달’은 목동의 대부와 대모이며 ‘새들’은 혼인식 연주가들이며 ‘하늘의 별들’은 혼인식을 밝혀주는 촛불을 상징한다.
목동이 묘사하고 있는 혼인식은 일반 혼인식과는 달리 사뭇 슬프지만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목동의 의연함도 함께 묘사되어 있다. 세상과 작별하며 자연과 혼인하는 즉 우주와 합일하는 이 작품의 슬픈 분위기는 특히 눈물을 흘리면서 목동을 찾아 헤매는 목동의 늙은 어머니의 모습에서 더욱 더 증폭된다.
“보게 된다면/ 만나게 된다면/ 양털로 만든 외투를 걸치신/ 늙으신 우리 어머님을/ 두 눈에는 눈물 고이시고/ 온 들녘을 헤매시며/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물어보시며/ 이렇게 말하실 어머님을.//
누구 아시는 분 없나요?/ 내 아들을 본사람 없나요?/ 내 자랑스러운 목동, 내 아들 말이에요./ 바늘귀로 빠져나갈 듯/ 연약한 우리 아이 말이에요./ 앳된 얼굴은/ 우유 거품처럼 희구요/ 이제 막 자라나는 수염은/ 밀 이삭 같고요/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까마귀 깃털처럼 검고요/ 앙증맞은 두 눈은/ 들판에 피는 머루 같지요.”
어린 양은 목동의 어머니에게 자신의 주인님이 공주와 결혼했다고 말해야 했지만 혼인식 때 죽음을 상징하는 별 하나가 떨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미오리짜에서 나타나는 죽음은 더 이상 두렵고 슬픈 것이 아니라, 이 단계에서 저 단계로 지나가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미오리짜에 묘사되어 있는 죽음과 관련한 비극적인 면 때문에 이 작품을 낙천주의적인 경향(optimism)의 작품이라고 규정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염세주의적인 경향(pessimism)은 더 더욱 아니다. 또한 사후의 결혼은 불행한 사건을 우주적인 혼인식으로 변형시키면서 신화적인 의식을 표현하는 웅장함까지 내포하고 있다. 목동의 행동은 전혀 허무주의(nihilism)적이지 않다. 목동은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다른 차원에서의 새로운 개념(槪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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