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새’ 주지사의 첫 주정연설은 짧고 강했다. 14분을 조금 넘긴 연설의 주제는 단 한 가지, 예산 균형이었다. 지난 31일 새크라멘토 주 의사당 양원합동회의에서 행해진 브라운의 연설은 3주전 발표한 주지사 예산안의 조속한 실현을 거듭 촉구한 기회이기도 했다.
숫자로 본 브라운의 예산안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 새 회계연도 846억달러 규모 예산의 균형을 이루려면 예상적자 254억달러를 해소해야 하는데 지출에서 125억달러를 줄이고 세수입을 늘려 나머지 120억달러를 충당한다는 것이 브라운 예산안의 골자다. 민주당이 반대해온 ‘삭감’ 절반, 공화당이 반대해온 ‘세금’ 절반으로 나눈 공평한 ‘하이브리드 플랜’이다.
대대적 삭감의 세부계획은 이미 발표되었고, 금년 7월로 만료되는 한시적 소득세·판매세·차량등록세 인상을 앞으로 5년 더 연장하는 세금 ‘인상’은 주민투표에 회부해 실현시키려고 한다.
일정도 타이트하다. 브라운은 1월10일 예산안을 공개하면서 주의회가 3월중 예산안에 합의하고 6월에 특별선거를 개최, 세금인상 연장안을 주민투표에 부치도록 촉구했다. 스스로 균형예산 실현 60일 시한을 정하고 카운트다운에 돌입한 것이다.
주 재정위기에 ‘고통스럽지만 정직하게’ 대처하려는 이번 예산안엔 브라운이 호소한대로 “캘리포니아 드림을 되찾는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을 뿐 아니라 브라운 주지사 제3기의 승패도 걸려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장애만도 ‘산 넘어 산’ - 주지사에게도, 주민들에게도 고단한 행군이 될 것이다.
이번 연설의 핵심은 세금인상 연장안의 주민투표 회부였다. 브라운은 세금연장 여부를 주의회 표결 아닌 주민투표로 결정짓기 원한다. “유권자의 허락없이는 세금인상 안하겠다”는 선거공약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은 세금인상은 물론 주민투표에 회부하는 것도 반대한다. 세금관련 법안통과엔 상하원 모두 3분의 2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전원 찬성한다 해도 최소한 상원에서 3명, 하원에서 2명 공화당 의원의 지지를 확보해야 연장안이 주민투표에 회부될 수 있다.
당장 눈앞에 놓인 첫 번째 산을 넘기 위해 브라운은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의 주민투표 권리를 다소 엉뚱하게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에 비유하기도 했다. 주민투표의 필요성을 강조한 후 “공화당 의원들도 박수 좀 치시지…”라고 미소 띤 조크를 던지면서도 그는 주민들의 결정권을 저지하는 것은 “비양심적”이라며 공화당을 압박했다.
아직은 새 주지사와 새 주의회의 밀월기간이니 성사 전망이 나쁘지 않다. 노련한 정치 베테랑 브라운이 양당의원들과 친밀하게 만나며 협상 용의를 강조해서인지 초당적 분위기까지 읽혀진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주의회 통과를 점치고 있는 근거다.
더 높은 산은 그 다음이다. ‘세금’이라면 앨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캘리포니아 유권자들을 설득해 세금인상 연장안의 지지를 얻어내는 일이다. 같은 연장안이 주민투표에서 압도적으로 부결된 게 2009년 5월이었다.
다행히 그때와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지난주 가주공공정책연구소(PPIC)의 여론조사 결과가 희망적이다. 3분의 2가 특별선거 실시를 지지했고 58%가 브라운의 ‘공정한’ 예산안을 지지했으며 세금연장안 지지도 53%를 기록했다. 브라운에 대한 열정적 지지는 아니어도 ‘정치게임 안하는 솔직하고 실용적 리더’ ‘지켜보자’는 긍정적 평가가 우세하다.
문제는 이같은 미지근한 지지로는 연장안의 통과를 얻어내기 힘들다는 데 있다. LA타임스는 세금을 혐오하는 유권자들에게 세금인상 연장안 지지를 설득하려면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과장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장안이 부결될 경우 어떤 사태가 발생할 것인가. 당연히 120억달러의 추가 삭감이다. ‘초중고는 연중 수업일수를 한 달 이상 단축해야 하고, 초만원 교도소는 범죄자들을 석방해야 하며, 예정된 삭감만으로도 사형선고라고 비명 지르는 저소득층의 복지는 더욱 잘려나갈 것이며…’ 이중 어디까지가 정확한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브라운은 연장안 부결의 결과가 “알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할 것”이라고 기자들에게는 말했지만 아직 유권자들을 위협하는 공포전략은 삼가고 있다. 그러나 합리적 설명은 표밭에선 별 효과가 없다. 연장안의 지지율이 신통치 않으면 브라운도 별 수 없이 공포전략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브라운의 일정대로라면 30여일 후 주민투표 여부와 함께 여야가 합의한 예산안이 마련된다. 125억달러의 삭감이 포함된 안이다. 가난한 어린이와 노인들, 장애자가 의지해온 기본 복지가 휘청댈 것이다.
모든 주민의 고통과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한 브라운의 예산안은 재정위기에 대처하는 무난한 출발점이지만 저소득층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주의회가 심의과정에서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물론 ‘수입한도 내에서 지출’해야 하고 삭감은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힘없고 가난한 약자들의 신음을 외면하는 사회엔 미래가 없다. 주의회가 보다 ‘인도적’ 예산안으로 바로 잡기를 기대한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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