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닭이 울지 않아도 아침해는 어김없이 떠오르 듯이, 또 한 해의 새 해가 밝아 왔다
해는 지난 해의 그 모양 그 빛깔로 떠오르 건만, 많은 사람들이 태양을 신(神)으로 믿는 신도처럼, 바닷가로 산 언덕으로 몰려 가 두 손을 모우고 있다.
새해를 맞는 시점에서, 한국말을 배운지 얼마 안 된, 선교사가 신년 모임에서 “묵은 년은 가고, 새 년이 옵니다. 갈 년은 가고, 올 년은 와야 합니다. 하지만, 묵은 년이라고 다 나쁜 년이 아니고, 새 년이라고 다 좋은 년은 아닙니다“ 라는 축사 한 마디가 머리에 떠 오른다. 이 케케묵은 우시게 소리 같은 그 말 속에는 눈 앞의 이윤에 현혹 되어 옛정을 흔신짝 같이 내 팽개치는 몰지각 한 삶의 실태를 아프게 꼬집는 듯 한 페이소스(Pathos)가 기뜰고 있슴을 느끼게 한다. 한편으로 그 말 속에는 우리가 어떤 연유로 이 미국 땅에 와 살게 되었는지는, 개개인에 따라 각기 다르겠지만, 그래도 지난 날에 몸 담고 살았던 고국을 못 잊어 하는 향수와 후회 같은 아픔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기도 한 것이다.
정월 초하루가 며칠 지난 어느 날 나는 장을 보려 가게에 들어 간 할멈을 기다리며, 우두커니 차 안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차 창 밖, 가게 앞에서 바람에 불리어 그 홀씨가 거의 날라가 버린 민들레처럼 머리 뒷통수에 새하얀 머리카락이 엉성하게 남아 있는, 내 나이 또래의 노인이 초점 잃은 눈으로 먼 하늘을 바라 보고 서 있다. 짐작컨데 그도 나 같이 시장 보려 가게에 들어 간, 마누라를 기다리고 있는게 분명 해 보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부질 없는 상상을 해 본다. 그가 무슨 까닦으로 또 어떤 연줄로 이 땅에 이민 와 살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 노인의 까칠한 얼굴로 미루어 보아, 이질문명 속에서 물 위에 뜬 기름 같이 살아 온게 분명해 보였다.그래서 그는 그렇게 묵은 년 (年,舊緣,故國)을 잊지 못 해, 저렇게 먼 하늘을 바라 보고 서 있는지 모른다.
잠시 후, 비뉼 봉지 2개를 달랑 손에 든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낙네가 그 노인에게 다가 가서 그를 부른다. 노인은 후닥딱 잠에서 깨어 나듯이, 정신을 차려 내 차 가까이에 파킹 되어 있는 연도가 꽤 오래 되어 보이는, 도요다 차에 올라 탄다. 이윽고 여인이 모는 차가 내 시야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차를 차 창 밖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또 다른 짐작을 해 본다. 그 노인은 할멈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게 분명하다고 ---. 그리고는 나는 부질없이 또 다른 염려를 해 본다. 운전대를 잡은 그 여인이 그 노인의 며느리라면, 옛 속담처럼 ‘며느리 사랑은 씨아버지’ 라는 말처럼, 그 외로워 보이는 노인을 친 아버지 같이 보살펴 주고 있을까 하고 말이다. 한편으로 그 여인이 딸이라면, 그 노인이 사위에게서 눈칫밥이나 먹고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말이다.
이윽고, 장을 보고 나온 할멈의 장바구니를 차에 담아 실고 집으로 달려 가는 동안, 짐짝 같이 실려 사라져 간 그 노인 생각이 내 눈 속에서 사물그려 견딜수가 없다. 그리고 어느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뒷 차의 크락션 소리와, 할멈의 “뭐 하요? 파란불인데 안 가고 ---” 라는 다구침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악세레타를 밟았다. 파란 신호등인데도 내가 멍청하게 멈춰 서 있었던 까닭은, 그 노인을 통하여 내 35년 이민의 세월을 되돌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민의 첫 닻을 내린 San Mateo 에서의 2년, 미국 그로서리 가게를 인수하여 근 20년 가까이 살아 온 Cupertino, 그리고 내 여생의 마지막 칩거(蟄居)의 둥지가 될지도 모를 Campbell 에서의 14년! 이 긴 세월 동안, 다소의 경제적인 여유와 자식들의 학업과 자립(自立) 면에서, 그리고 1990년도 초반부터 15년 넘게 이 땅에서 왕성한 작품활동과 연극공연 으로 해서 흔히 말하는 American Dream 을 조금은 성취했다고 자위 하지만, 그 땅에서 내가 일구었던 내 나름의 분야에서 개척한 그 길을 내 스스로 허물어 뜨리고 와 버린 어리석음과, 이민 초기 12년 가까운 세월 동안, 원고지 한 칸도 매우지 않고 살아 온 후회가, 내 가슴 속에 엉어리져 있기에, 나는 화살 맞은 사슴처럼 쩔뚝거리며 이민의 광야(曠野)를 걸어 왔는지 모른다.
새해를 맞아, 내 노년의 화폭 속에 담고 싶은 내 황혼의 자화상이 있다면 그건, 근면과 부부사랑,그리고 신앙심을 바탕에 깔고있는 밀레의 그림 ‘만종’에서 보듯이, 하루의 밭일을 끝내고 멀리 교회의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밭 이랑에 서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부부의 모습 처럼, 나도 가정을 위해 기도 하는 남편으로,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들녘 비탈밭에 씨를 뿌리고,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저녁의 능선(산마루길)을 지개를 지고 소를 앞 세우고 집으로 돌아 가는, 농군(農軍)의 그 보람에 찬 모습 같은 게, 내가 새해에 소망하는 내 황혼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아동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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