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56) 감독을 응원하고 있다. 그를 만나본 적도 없고 잘 아는 사이도 아니지만 스포츠팬으로서, 그리고 스포츠 기자로서, 어부지리로 한국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성공시대를 여는 드라마가 보기 좋다.
그는 남아공월드컵 후 허정무 감독이 사퇴하고 홍명보 등 계산 빠른 앞 순위 후보들이 줄줄이 대표팀 사령탑 자리를 사양한 덕에 지금 감독 자리에 앉아있다. 첫 원정 월드컵 16강의 목표를 달성한 후 기대치는 한 없이 높아졌고 다음 월드컵까지 갈 길은 먼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 자리라 그에게까지 기회가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와 핌 베어펙 등 거스 히딩크의 뒤를 이었던 감독들처럼 이번 대표팀 감독 자리는 기본적으로 ‘실패하게 될 셋업’(set up to fail)으로 여겨졌다. 지금 감독이 돼 지저분한 일은 다 해놓고 나면 결국 중도에 경질돼 다음 월드컵엔 못 나갈 가능성이 높기에 다들 고사하고 다음 기회를 노린다는 야무진 계산을 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첫 평가전에서부터 윤빛가람이란 과감한 신예 기용으로 히트를 치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아직까지는 별다른 잡음이 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물론 이번 아시안컵 성적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만 그는 한국 체육인 중에서 정말 보기 드문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선수를 보는 눈이다.
그 동안 한국의 수많은 선수들과 감독들을 만나고 겪어봤는데, 유감스럽게도 종목을 막론하고 그들의 선수 보는 눈은 일반적으로 ‘꽝’이다. ‘전술’은 감탄할 만 한 반면 선수 보는 눈은 미안한 말이지만 거의 ‘장님’ 수준이다.
그래서 지금은 직장이 없는 ‘명선수’ 출신 ‘전 감독’들도 많다. 한국 프로스포츠 ‘용병시대’에 선수 보는 눈이 없어 좋은 선수를 골라내지 못하다 보니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 예를 들어 현재 LA 레이커스에서 176만5,000달러 연봉을 받고 뛰는 맷 반스는 2000년대 초 롱비치 잼이란 하부리그 구단에서 뛰고 있을 때 웬만한 한국 프로구단 감독들이 다 와서 보고 퇴짜를 놓은 선수다.
레이커스에서 뛸 실력은 돼도 한국팀에서 뛸 실력은 안 된다는 말 아닌가.
또 한국 여자프로농구 역대 최고 용병으로 평가되는 타미카 캐칭스(한국에서는 캐칭으로 부름)도 키가 너무 작다며 다들 거부했던 선수다. 하지만 한 구단에서 애당초 계약했던 선수가 마지막 순간 임신했다며 한국행을 거부, 할 수 없이 받아들인 결과 ‘대박’이 터진 케이스였다.
배구는 더 심하다. 훈련 모습을 아무리 지켜봐도 모르겠다며 퇴출을 고심하다가 실전 성적이 나온 것을 보고는 사과한 경우도 있고, 브라질 선수만 고집하며 퇴짜 놓은 선수가 다른 팀의 교체 용병으로 나타나 훨훨 날아다니는 걸 보고 후회하는 시나리오는 시즌마다 반복된다.
사실 선수 보는 눈은 한국 감독들만 나쁜 게 아니다. ‘농구황제’ 마이클 조단도 형편없다. 신인 드래프트의 전체 1, 3번 지명권으로 각각 콰미 브라운과 애덤 모리슨 등 별 볼일 없는 선수들을 뽑았으면 할 말이 없다. 그가 현재 구단사장을 맡고 있는 샬롯 밥캣츠(12일까지 15승21패)의 로스터도 자랑할 게 못 된다.
그만큼 귀중한 것을 조광래 감독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축구의 프론트라인 스타가 아니었던 박지성과, 김병지 뒤에 서 있던 골키퍼 이운재 등을 앞으로 끌어낸 것처럼 구차철, 지동원 등 장래 스타들을 골라낸 장본인이 그가 아니라고 해도 지금 그들을 빛나게 만들고 있는 건 조광래 감독이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도사’ 명성의 필 잭슨 LA 레이커스 감독과 현재 마이애미 히트의 구단사장인 팻 라일리 전 레이커스 감독도 ‘어부지리 명장’이다. 각각 덕 콜린스(현 필라델피아 76ers 감독)와 폴 웨스트헤드 감독이 해고되면서 지휘봉을 물려받은 어시스턴트 코치들이었는데 이들이 이 정도의 역사적인 명장이 될 줄은 그 아무도 몰랐다. 잭슨은 선수생활을 접은 후 NBA 직장을 구하는데 7년이나 걸려 4년이나 푸에르토리코 구단을 지휘했고, 라일리는 처음에 혼자도 아닌 ‘공동감독’으로 레이커스 사령탑에 올랐다. 조광래 감독이 성공해야 스토리라인도 좋고 한국축구의 미래도 밝아진다.
이규태 스포츠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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