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12월22일, 2차대전이 곧 끝날 것이라는 소식으로 희망에 부풀어있는 할리웃 거리에서 난 외롭고 비참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생각나는 ‘고향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시작된다. 30여년전 교육학자 오천석씨가 엮어 샘터사에서 발행한 낡은 책 ‘노란 손수건’에 실려 있는 실화 중 하나로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단순하지만 따뜻한 이야기다.
그날 저녁 남가주에서 텍사스로 가는 그레이하운드 버스의 승객들은 대부분 가난한 귀향객들이었다. 실업수당 25달러로는 버스요금도 부족해 친구가 쥐어준 꼬깃꼬깃한 비상금 10달러를 받으며 목이 메었던 배우지망생의 눈에 비친 크리스마스 풍경이 정겹게 펼쳐진다.
…버스안엔 파티장처럼 흥분과 즐거움이 떠돌고 있었다. 모두 사랑하는 누구에겐가로 가고 있는 것이다. 휴게소에서 주워온 솔가지로 버스를 장식하고 “I’ll be home for Christmas” 캐롤도 목이 쉴 때까지 불렀다.
다 헤어진 옷을 입고 넝마같은 종이부대로 아기를 덮어주고 있는 한 젊은 엄마에게 눈이 간 것은 얼마 후였다. 공군사관생도와 사랑에 빠져 임신한 텍사스 처녀 로지의 사정은 딱하기 그지없었다.
애인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왔지만 이미 그는 남태평양 전선으로 떠난 후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사통지가 날아왔다. 혼자 남아 웨이트리스, 세탁부 등 닥치는 대로 일하다 3주전 자선병원에서 아기를 낳은 그녀는 엄한 부모님이 용서해주기만 바라며 고향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마지막 돈을 전보치는 데 썼기 때문에 아기와 함께 내내 굶고있는 중이었다.
승객들은 로지와 아기를 위해 돈을 걷기로 했다. 모두 가난했지만 따뜻한 식사와 우유를 사기엔 충분한 돈이 모아졌다. 그리고 초라한 자신들의 가방을 열고 스웨터와 스카프 등 따뜻한 것을 찾아 로지에게 건넸다. 그들은 이미 하나의 ‘가족’이었다.
노르만디 전선에서 오른 팔을 잃은 젊은 화가 매튜는 왼손으로 이 따스한 정경을 스케치했고 밤이 깊어진 버스 안에는 나치치하에 가족을 남기고 탈출한 후 슬픔 속에 살아온 바이얼리니스트 맥스가 연주하는 음악이 아름답게 흘렀다.
버스가 달라스에 도착했고 흩어지는 눈송이 사이로 로지의 가족들이 그녀와 아기를 껴안는 것이 보였다. 그 광경을 글썽이는 눈물로 전송한 다른 승객들도 제각기 마중 나온 가족들과 포옹과 눈물로 합쳐졌다…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해 버스안의 크리스마스는 그들 각자의 가슴 속에 잊지 못할 감동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 같은 감동은 준 사람과 받은 사람 뿐 아니라 전해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까지, 어려울 땐 누군가 나를 보살펴줄 것이라는 위안, 그리고 절망을 딛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한다. 또 감동이 깊어지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교사 마크 골드가 인도여행길에서 티벳 난민 틸리를 만난 것은 1989년이었다. 틸리의 아내 써링은 상냥했지만 늘 두손으로 양쪽 귀를 막고 있었다. 귀에 치명적 염증이 생겨 너무 아팠던 것이다. 골드는 의사치료를 주선하고 항생제를 사주었다. 든 돈은 불과 몇 달러, 그러나 그 몇 달러가 써링의 생명을 구해냈다. 골드는 다시 35달러를 들여 보청기를 마련해주었다.
“처음 보청기를 낀 그녀가 지른 기쁨의 환성이 나의 뇌 속을 파고들며 마치 난 벼락을 맞은 듯 했다. 이렇게 적은 돈으로도 한 사람의 삶을 되찾아 줄 수 있다니…그 때까지 난 자선은 부자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100명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다. 다음 여행 때 현지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200달러를 모으기 위해서였으나 모금액은 곧 2,000달러를 넘었다. 현재 ‘100명의 친구들(100 Friends)’의 동참인원은 4,000명에 이르고 있지만 골드는 대대적 모금도 삼가고 유급직원도 쓰지 않는다. 성금이 운영비로 전용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의 원칙은 단순하다 : “당신이 내게 준 것을 난 그들에게 전합니다”
적게는 50센트부터 많아야 500달러로 베트남의 미망인에게 재봉틀을 사주고, 한 인도 가족의 생명줄인 인력거를 수선해주거나 티벳 소녀가장의 엄마에게 휠체어를 마련해주는 작은 도움을 통해 골드는 5만명의 불우한 삶에 밝은 크리스마스의 빛을 전해 왔다.
기부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수입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연수입 5만달러 이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를 위해서, 5~10만달러 층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서” 부유층은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를 도와야 하므로”라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 - 인디애나 대학의 조사결과다.
동기가 무엇이든 주는 사람의 진심어린 베품은 받는 사람의 진심어린 감사를 부르고 그 감사는 다시 어려운 타인에게 진심으로 베푸는 친절로 이어진다. 인간의 선의를 되살리는 순환의 법칙이다.
이 순환의 법칙이 계속되는 한 아무리 어두운 시절에도 크리스마스의 빛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종교를 뛰어넘었다. 크리스마스를 진정한 크리스마스로 만들어가는 사람은 기독교인뿐만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어려움 속에서도 버스 안 승객처럼 착해지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굳이 종교색을 빼야한다며 ‘해피 할러데이스”로 바꾸라는 논쟁은 소모적일뿐 무의미하다. 이 계절의 인사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훨씬 어울린다.
박 록/주 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