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새벽 일찍 배달된 신문을 가지려 현관문을 열고 나선다. 밤 사이 내린 비바람에 물기 어린 은행잎이 땅 위에 소복하게 쌓여 있다. 지나친 표현인지는 몰라도, 얼마 전에 새로 포장한 새까만 아스팔트 위에 내려 앉은 샛노란 은행잎의 색깔의 대조가, 마치 ‘샤갈’의 그림을 보는 듯, 그 강렬한 색감(色感)이 가슴팍에 짙게 물든다.
나는 신문을 주워들기 전에, 10여거루의 아람드리 은행나무 가지들이 초겨울의 찬 바람에 오솔 오솔 떠는 소리와 우수수 땅 위에 떨어지는 은행잎들 소리가 겹쳐, 마치 싸아 하고 해변의 모래 사장을 할퀴고 밀려 가는 파도같은 소리를 듣고 섰다. 그리고는 어느 토요일 아침인가, 방문전도(訪問傳道)를 위해 우리 집에 들렸던 여호와의 증인이 “선생님집 앞 길은 은행나무 거리네요.” 라고 말 하던 그 말이 새삼 머리에 떠오른다.
내가 신문을 주워 올리려고 할 때, 비에 젖지 않도록 신문을 감싼, 파란 프라스틱 봉지 위에도 여러 조각의 은행잎들이 또닥또닥 붙어 있다. 나는 그 은행잎을 차마 떨어 버리기가 아쉬워, 그대로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와 테이블 위에 놓고,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그리고는 오늘은 내 글이 실리지 않는 날인데도, 마치 내 글이 은행잎이 붙어 있는 프라스틱 봉지 안 쪽에서, 향긋한 잉크 냄새를 품기고 있을 것 같은 착각에 사로 잡힌다. 나는 살며시 프라스틱 봉지를 걷고 신문을 꺼낸다. 그리고는 은행잎 한 잎을 주워 든다. 내년 봄, 새순들이 돋아날 그 자리를 비워 주고, 아쉬움 없이 땅 위에 내려 앉은, 자연순환(自然循環)에 순응하는 은행잎들의 순종의 미덕을 생각해 본다.
다음 순간, 마치 호기심 많은 어린이가 입김으로 팔랑개비를 불어 돌리듯이 나는 무말랭이 같이 마른 내 두 손가락으로, 은행잎 한 잎을 주워 들고 빙빙 돌려 본다. 돌아 가는 부채꼴 은행잎은 어느 사이, 동화 속의 회전목마(回轉木馬)가 되어 나를 태우고 달려 간다. 그리고는 그 회전목마는 다시 내가 어릴 때 탔던 완행열차가 되어, 지난 날 내가 거쳐 온 뭇정거장으로 나를 실고 달려간다.
드디어 회상(回惻)이란 이름의 완행열차가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세월을 그슬러 올라가는, 내가 머물렀던 곳, 통영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통영여중 교사(校舍)에다 나를 내려 놓는다. 이곳에서 나는 아버지의 강요로 교편생활을 잡기는 했지만, 가르친다는 것은 두 번 배운다는 말처럼, 국어선생 2년은 내가 후일 글쓰는 작업에 있어서 크게 도움이 되었으며, 한편으로 나를 몹시 따랐던 내가 담임을 맡았던 16살 풋내기 가시내에 대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고, 그 추억은 지금껏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어느 초겨울, 교복 가슴팍에 단풍잎 한 잎을 달고 나타 났던 유경숙! 내 교사생활 2년 동안에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학생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경숙이, 하지만 그도 이제 70줄에 접어 든, 손녀 손자의 할머니가 되어 있을 게 분명할 것이다. 어느 때는 문득 KBS의 ‘TV는 사랑을 실고’ 프로 같이, 경숙이를 찾아 볼 생각을 해 본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양 뺨에 살짝 보조개가 파이고, 웃을 때마다 살짝 내 보였던 덧니가 인상적이었던, 예쁜 그때 그 모습의 경숙이를 끝내 내 가슴에 간직하고 싶기에 그만 두기로 했던 것이다.
사춘기 소녀도 아닌 내가, 그것도 김수철의 가슴을 에일듯 한, ‘황천길’이란 음률이 배음(Back Music)으로 깔리는 가운데, 내 인생극장 종막(終幕)을 연기할 나이인 내가, 단풍잎 한 잎을 들고 내 나름의 판타마임(一人劇)을 벌이고 있는게 꼴사나운 짓거리 일지는 몰라도, 고목 같이 마른 내 몸뚱아리 속에도 아직 파랑잎을 피울 수 있는 정서(精緖)의 물줄기가 흐르고 있기에, 소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면 <이십억 광년의 고독>이란 시를 쓴, 일본의 유명 시인 ‘다니카와 준이지로’!. 그는 80살의 나이지만 8살 어린이처럼 순수한 생각으로 시를 쓴다고 했듯이, 나도 그 시인 같이 순수하게 살고 싶기에, 내나름의 연기에 몰두하고 있는지 모른다.
세월은 가고,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그 강물 따라 잎새 하나 흘러 가듯, 내 그 잎사귀 되어, 산골짜기 실개천의 여울물에 굽이쳐 흘러 내려, 동리 마을 개천 따라 흐르다가 들판을 가로지르는 강물을 타고 가다, 어느 날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어느 포구(浮口)의 소용돌이 물에 휩싸여 살아질지 모르는 나이지만, 그래도 나는 그 옛날 경숙이가 가슴에다 은행잎 한 잎을 달았듯이, 나도 내 글 쓰는 작업에 필요한 메모장 책갈피 속에다 단풍잎 한 잎을 끼워 둔다면, 주책 없는 노인의 노망(老亡)이라고 말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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