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럴 진영은 제대로 싸우지도 않은 ‘굴욕적 항복’이라고 분개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불가피한 타협’이었다고 방어한다. 이번 주 초 발표된 오바마-공화당의 감세 타협안을 둘러싼 민주당내 공방전이 뜨겁다.
금년 연방의회 레임덕 회기의 최대 쟁점인 부시 감세조치 연장안이 지난 주말 막후협상으로 정리되면서 한 고비 넘기는 가했더니 발표와 함께 (공화당이 강력 주장하고 민주당이 절대 반대해온) 부자들의 감세연장을 허용한 오바마의 ‘배신’에 반발하는 민주당의 집안싸움으로 워싱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오바마 첫 2년간 충실한 지지를 보내 온 민주당 진보파의 이번 ‘폭발’은 사실 어느 정도 예견되어 온 것이다. 헬스케어 개혁에서 퍼블릭 옵션이 빠진 것도 눈 감았고, 포괄적 이민개혁이 계속 밀리는 것도, 아프간전쟁이 종전 아닌 확전으로 치닫는 것도 묵인하며 인내해왔다. 그러나 “부유층 감세 허용은 다르다, 그건 민주당 원칙에 대한 포기”라고 리버럴 진영은 흥분한다.
감세 협상을 위해 공화당과 마주 앉은 오바마에게 주어진 선택은 극단적으로 말해 딱 두 가지였다 : 민주당 지지기반의 분노를 감수할 것인가, 불경기에 휘청대고 정치권 양극화에 실망한 중산층의 좌절을 외면할 것인가.
이번 타협안은 적어도 형식상으론 중대한 첫 ‘초당적 합의’다. 그러나 오바마는 ‘초당적’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유층 감세연장을 위해 중산층을 볼모로 잡은 공화당을 ‘인질범’에 비유하며 과격하게 비난한다.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중산층을 살리기 위해선 자신의 선거공약까지 어겨야 했던 불가피한 타협이라는 주장이다.
민주당 투사보다는 국가의 지도자로서 마땅한 선택을 했고 “국민들이 문제해결을 기대하고 있는 이때에 정치적 게임을 할 수는 없었다”고 강조한 오바마는 또 타협안을 자세히 검토하면 상당히 합리적 내용임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를 호소한다.
이번 타협안에 대해 대부분은 공화당의 ‘승리’, 민주당의 ‘패배’처럼 간주하지만 사실 내용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진보성향 온라인잡지 살롱닷컴은 ‘실제로, 상당히 괜찮은 타협’이라고 지적한다. 민주당 입장에서 볼 때 타협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최고 부유층의 감세연장과 부자의 상속세 감면이라는 ‘대가’를 치르겠지만 수백만 장기실업자들의 생명선인 실직수당이 13개월간 더 지급되고 자녀양육 및 대학등록금, 비즈니스 장비구입 등에 대한 세금공제 혜택도 연장될 뿐 아니라 사회보장세율이 2년간 2% 포인트 삭감되어 직장인의 봉급액수가 늘어나게 된다.
액수로 환산해도 민주당의 일방적인 ‘항복’과는 거리가 멀다. 타협안 이행에 필요한 소요경비 약 9천억 달러 중 1,200억 달러가 부유층 감세와 상속세 감면에 들어가는데 비해 민주당 선호 항목에 들어갈 경비는 4,500억 달러에 이른다. 나머지는 양당이 함께 원하는 감세연장에 소요될 것이다.
진보파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많은 민주당 정책 전문가들과 경제학자들이 이번 협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오바마-공화당의 시끄러운 감세타협안이 충분하진 못해도 일자리 창출과 소비 진작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경기부양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타협안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높다. 어제 발표된 갤럽조사에 의하면 지지율이 66%에 이른다. 가장 어필하는 것은 중산층 이하에 대한 감세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부유층 포함 모두에 대한 감세연장을 차선책으로 지지한다.
민주당의 입지가 허약해진 현 상황에서 완강한 공화당(국민을 볼모로 삼는 공화당의 방해전략에 대해선 차후에 짚어보기로 한다)과 팽팽히 대결하다 감세 만료일을 넘겼다고 상상해 보라.
세금까지 올라가 쥐꼬리보다 더 줄어든 봉급수표를 받아든 중산층, 실업수당마저 끊긴 실직가정의 막막한 겨울나기, 일자리 창출은커녕 또다시 감원을 고민해야할 소기업들…원성의 첫 대상은 인질작전을 불사한 공화당이 아니다. 허약해도 아직 ‘집권당’인 민주당이고 오바마다.
새로운 정치현실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오바마의 주장엔 근거가 충분하다. 불만족하더라도 1억을 넘는 중산층 가족들에게 연 2천달러를 보태주는 타협안이라면 현 경제상황에서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7일자 사설에서 오바마의 타협안을 ‘합의 아닌 항복’으로 비난했던 뉴욕타임스 역시 8일자 사설에선 그래도 민주당은 타협안을 지지해 레임덕 회기 중 통과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말 두려워해야할 후유증은 이번 타협안으로 한층 악화될 연방적자다. 9천억 달러가 고스란히 더해질 테니까. 1월의 국정연설과 2월의 예산안 발표를 통해 오바마가 제시해야 할 향후 2년 국정의 주요 로드맵은 적자해소 대책이 될 것이다. 새해부터 하원을 장악하고 상원의 거부권을 강화할 공화당은 적자대책을 함께 모색하는 성숙한 책임감을 발휘할 수 있을까. 워싱턴의 ‘초당적 합의’ 능력은 그때 진짜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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