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LA카운티 뮤지엄(LACMA) 한국관에 가면 아주 특별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중앙전시실 오른쪽, 전에 도자기실이었던 공간이 고미술품 복원작업실로 변해 있고, 그 안에서 6명의 한국 문화재보존전문가들이 18세기 대형불화를 조심스럽게 보존처리하는 모습이다. 이들은 라크마가 한국서 초청해온 박지선 교수(용인대학교 문화재학과)와 그 제자들인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 팀. 지난 9월 중순부터 1년 예정으로 라크마에 머물며 ‘석가여래설법도’의 고미술품 복원작업을 벌이고 있다.
훼손 심한 18세기 대형불화 ‘석가여래설법도’
한국의 문화재보존 전문가 초청 메우고 붙여
1년여 걸쳐 당시 모습 되살리기 특별한 작업
이 런 작업을 일반 관람객들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희귀하고 특별한 일이다.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작품의 복원이나 보존처리 과정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라크마는 관람객이 미술관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경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이번에 처음으로 보존처리 전 과정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완전히 오픈된 공간에서 미술품 복원과정을 공개하는 일은 아마 전세계에서 처음일 겁니다. 저희도 처음엔 좀 거부감이 있었는데 미국 관람객들의 성숙한 태도에 많이 감화됐지요. 작업을 방해하지 말라는 푯말 하나 붙어있다고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는 문화의식이 참 놀랍습니다. 아마 한국서는 이런 작업 자체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박지선 교수에 따르면 한국 미술품의 보존처리는 한국으로 보내서 해오는 것이 훨씬 쉽고 경제적이다. 6명의 전문가(박지선 조은혜 이남이 최점복 윤기범 임지혜)를 초청해 1년 체류비를 지불하고, 모든 복원기구를 옮겨와서 작업하는 일은 비용이 몇배나 드는 일이다.
한국서 공수해 온 도구들을 보니 건조판과 작업상, 내왕판 등이 모두 엄청나게 크다. 그림을 붙여서 말리는 대형 건조판을 3개로 분리해 가져와 이곳서 조립해서 쓸 수 있도록 했고, 작업대로 사용하는 큰 상도 3개 조각으로 만들어왔다. 또 바닥에 펼쳐 놓은 미술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위를 돌아다니며 일할 수 있도록 움직여주는 내왕판도 두 세트를 싣고 왔으니 그 외 보존처리에 사용되는 수많은 도구들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모든 비용과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라크마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미술관이 하는 일을 좀 더 잘 이해하고 가깝게 느끼도록 하기 위한 교육과 홍보를 위한 것이다.
“좋은 점은 라크마 보존실 분석팀과 공조가 잘 돼 작업이 아주 수월하다는 것입니다. 라크마 안에 과학분석팀, 종이팀, 텍스타일팀 등 여러 전문부서가 있어서 안료가 어떤 광물로 이루어졌는지, 어떤 기법으로 그렸는지 쉽게 분석이 가능하죠. 게다가 지금 세계적인 고려불화 전문가인 정우택 동국대 교수가 안식년으로 이곳에 머물면서 자문도 해주고 작업에 도움을 주고 있으니 최상의 작업조건에서 일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 교수 팀이 복원 중인 작품은 ‘석가여래설법도’(1755). 가로 4m, 세로 3m가 넘는 대형 그림이다. 석가모니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석가설법도’는 통상 ‘영산회상도’로 알려져 있는 매우 수준 높은 작품으로, 라크마는 이 불화를 수년 전 구입하였으나 훼손이 심각하여 전시는 물론 공개조차 불가능한 상태였다. 창고에 둘둘 말려 있어 펴볼 수도 없었던 것을 3년 전 박 교수가 와서 응급으로 펴는 작업을 한 다음 사진촬영을 해놓고 이번에 본격적인 보존처리를 시작한 것이다.
“오늘(지난 15일)로서 전체 조각을 하나로 맞추게 됩니다. 여섯 개 조각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퍼즐 맞추기처럼 이제 잇는 작업을 하는 거지요. 그래도 본존 얼굴이 살아 있어 그림 상태는 좋은 편이에요”
보존처리 과정은 우선 먼지를 털고, 말려 있는 부분을 습기조절로 편다. 녹색 물감이 가루처럼 거의 전체를 덮고 있었는데 이를 안정시키고, 오염된 부분을 클리닝 한 후 안료를 안정시킨다. 손상된 배접지를 제거하고, 떨어져 나간 부분을 메우고, 각 조각들을 붙이는 전과정은 매우 천천히 조심스럽게 오랜 시간이 걸려 진행되는데 관람객들은 그 중 한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내년 2-3월까지 집중작업을 한 후 앞면 건조기간에 들어가 5월에는 거의 완성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 다음 뒤집어서 또 서너달 건조시키면 가을에는 보존처리가 완료되지요, 모든 과정이 끝나면 한국관 중앙 전시공간에 1년간 전시하며 일반에 선보이게 됩니다”
박지선 교수는 고 미술품의 한국식 보존방법을 개척한 선구자다. 박 교수에 의하면 그동안 우리나라 미술품은 95%가 일본 스타일로 복원돼 왔다. 일제시대에 보존방법이 다 없어져 아예 한국에는 보존작업 인력이 없었던 것.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 옷 입고 있는 식”이라는 그는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는 일본 쿄토에서 공부한 후 한국 스타일로 남아 있는 작품들을 연구하여 2000년부터 한국식 보존처리 방법과 그 중요성에 대해 발표하기 시작했다.
“우리 식 복원의 필요성에 대해 우리보다 라크마가 더 먼저 인식한 것이 놀랍습니다. 이 작업도 라크마가 우리를 초대해서 시작된 것이죠. 마침 제가 학교 안식년이라, 온 김에 많이 보여주자는 생각에 작업이 커졌습니다”
미국 여러 지역을 다니며 강연했다는 박 교수는 “라크마처럼 한 건물의 주요 갤러리를 통째로 한국관으로 쓰는 곳은 한 군데도 없더라”며 세계 어디서도 한국미술이 이런 대접은 못 받을 것이라고 감탄했다. 박 교수는 또 “이 정도 규모에 이 정도 전문적 전시가 이루어지는 곳이면 한인사회가 나서서 서포트 그룹을 만들고 관심과 지원을 보내야 할텐데 LA 교민들의 무관심이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고 아직도 미국에서 한국문화는 일본에 비해 턱없이 안 알려져 있다며 미주 한인들의 노력을 촉구했다.
LACMA 주소 5905 Wilshire Blvd, LA, CA 90036, (323)857-6000
<글 정숙희 기자·사진 왕휘진 기자>
LACMA에서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 ‘석가여래설법도’. 여섯 개로 조각난 작품을 일단 모양대로 맞춘 모습.
LACMA에서 복원작업을 하고 있는 ‘석가여래설법도’. 여섯 개로 조각난 작품을 일단 모양대로 맞춘 모습.
박지선 교수가 한국 미술유산의 한국식 보존처리법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