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 해도 그 끝자락을 감추려 하고 있다.
과거는 잊어 버리는 것, 미래에는 기대를 걸지 말라고 했기에, 흘려 보낸 세월과 함께 가버린, 갖가지 사연들을 되돌아 보지 않고 살아 갈려고 다짐 하며 살아 가지만, 자꾸만 뒤돌아 보이는 과거 ! 그리고 바라다 보이는 두고 온 그 땅 !
올 해는 다른 해와는 달리, 꼭 설악산 단풍잎 구경을 하리라고, 철길 가의 코스모스 길도 걸어 볼 것이 라고 마음 먹었었는데, 벌써 설악산 대청봉에 찬 눈이 내렸다니, 어린애들 표현처럼, ‘꽝’ 이 되고 만 것 같다.
작년에도 가고, 또 그 작년에도 갔다 온 그 땅인데, 왜 못 가서 앙달 일까 ? 올 해 못 가면 내년에 가면 될 것인데 말이다. 그러나 그건 젊었을 때의 말이지, 달이 가고 해가 갈수록 바람 나간 풍선처럼, 다리에서 힘이 빠져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비행기 탑승 태랍까지 걸어 가는 길이 멀게만 여겨 지고, 지하철의 그 가파른 ‘에스카레타’ 의 손잡이를 잡은 손이 후들 거려지기만 하고, 그 무수한 계단을 걸어 올라 가기에는, 내 나이 걸음으로는 벅차기 만 하니 어쩌란 말인가 ?
스위스의 요한나 여사의 동화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에서 도시문명 세계 속으로 보내 진 하이디 ! 그러나 그 소녀는 끝내 도회지(都會地) 생활에 적응 하지 못 해, 어릴적부터 길러준 목장주, ‘알름’ 할아버지의 알프스의 젖소 목장으로 되돌아 가고 말았듯이, 어쩌면 나 또한 미국이란 문명의 바닷속에 몸을 담구기 위해, 이민 보따리를 싸 짊어 지고 왔지만, 언어와 생활습관 그리고 문화의 차이란 이질감(異?感)을 안고, 이 문명의 바다에서 개해음 서툰생활을 처 오면서, 나 역시 알프스 소녀 하이디 처럼, 두고 온 그 땅으로 되 돌아 가기를 바랬기에, 기를 쓰고 고향 쪽으로 바라 보고 살아 가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해그름의 노을진 서 쪽 하늘을 바라 보면서, 밭갈이에서 그리고 짐 나르는 일에서 밀려나, 양지 바른 언덕받이에 배를 깔고 웅크리고 앉아, 새김질을 하고 있는 늙은 소처럼, 내가 걸어 온 지난 세월을 되 돌아 본다.
삶의 기술이란 하나의 공격목표를 정하고 거기다 힘을 집중 하는 것이라고 말 했듯이, 내가 살아 온 발자취를 되돌아 볼때, 그래도 나는 내 나름대로의 목적의식(目的意識)에서 내가 설정 한 한 목표물에다 대고, 끊임 없이 공격의 포탄을 퍼 붓고 살아 오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내가 쏘았던 포탄이 공격목표의 가녁을 정확하게 깨뚫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한 때 나마, 나의 삶의 기술에 있어서, 남 다른 성취(成就)를 일구었지만, 이러한 성취는 내가 한국 땅을 떠남으로 해서, 다시 말해서, 미국 이민이란 내 삶의 엉뚱한 전환으로 말미암아, 연극의 막이 중도에서 내려 지고 만 것 같이, 그 성취는 반감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러한 절반의 성취 속에서도,나는 내 스스로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내가 살아 온 과정을 통해, 얼마만큼의 많은 횟수의 즐거운 날들이 있었던가 하고 반추(새김질) 해 본다. 어떠한 기준으로 말했는지 몰라도, ‘케에테’가 그의 인생 75년에 즐거웠던 날이 4주(週) 밖에 없었다고 말 했지만, 내 인생 81년에 즐거웠던 날이 과연 얼마만큼이 있었을까 하고 자문(自問) 해 본다. 그러나 나는 케에테의 그 4주 보다는 훨씬 많은 나날의 즐거움을 맛 보지 않았나 싶다.
지독히도 상복(賞福)이 없는 나이기는 하지만, 다행 스럽게도 좋은 출판사를 만나 내가 원고지 칸을 매운 모든 작품이 책으로 엮어져 나왔을 뿐 아니라, 한국을 떠나 와 살고 있지만, 나의 자서전(自敍傳)과 내가 쓴 모든 동극 작품이 집대성(集大成)된 ‘주평아동극전집’ 10권이 내 살아 생전에 출간(出刊) 되어졌다는 사실은, 작가로서의 보람이자 즐거움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동극의 무대상의 형상화(公演)면에서 따져 보아도 한국에서의 20년, 미국에서의 ‘콩쥐팥쥐’ 공연 10년 등 30여년에 걸쳐, 100회가 넘는 공연을 함으로써 어린이들과 어울려 무대란 공간에다 동심(童心)을 색칠하며 살아 왔다는 사실 또한, 내가 남 달리 누렸던 즐거움이 아니 었던가 싶다.
한편 다른 작가가 걷지 않는 동극작가로써, 내가 누렸던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면, 그건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나의 4작품을 1967년부터 28년이란 긴 세월 동안, 수 백만명의 어린이들이 교육현장(교실,강당)에서 연극수업을 펼쳤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과거,현제,미래를 통하여, 나의 작품(극본)이 수천,수백 학교에서 학예회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 졌고, 또 올려 지고 있으며, 올려 질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외롭지 않는 노경(老境)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과거는 잊어 버리는 것이라고 말 했지만, 그렇지 못 한 내 성격 탓인지, 오늘도 나는 미국 땅 우리집 울타리의 석류 나무를 바라 보면서, 내가 개구쟁이 어릴 적에 보았던, 외할머니집 돌각담 샘 가의 빠알간 석류가 주렁주렁 달렸던, 그 석류나무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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