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엔 악몽과 같았던 긴 밤, 공화당엔 들떴던 축제의 밤이 지나고 새 날이 밝았다. 승자도 패자도 피해가기 힘든 험난한 비바람의 한기가 벌써부터 느껴지는 풍랑의 2년을 향한 첫날, 2012년 대선이라는 같은 배를 탄 두 적수, 오바마 백악관과 연방의회 공화당은 오월동주(吳越同舟)의 생사를 건 항해를 시작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데 요즘 천심은 쉽사리 변하고 조급하기 그지없다. 적어도 이번 중간선거에서 드러난 2010년의 민심이 그렇다. 불과 2년 만에 그처럼 열광했던 변화의 사도는 변화를 가로막는 공공의 적으로 추락했고, 경제파탄의 주범으로 내처졌던 공화당은 경제회복의 대업을 위임받아 화려하게 재기했다.
표밭의 변심 이유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엉망인 경제와 워싱턴 정계에 대한 불신이다. 다만 책임을 져야 할, 분노의 대상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지난 20여년 선거 때마다 번갈아 바뀐 것뿐이다.
공정한가의 여부를 떠나 언제나 분노의 대상은 집권당이었다. 금년에도 공화당의 승리는 보수화 물결이라기보다는 밀물에서 썰물로 조류의 변화다. 언제라도 다시 변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민심은 어떻게 보면 기존 양당 모두에 대한 거부감의 표시다. 민주당을 ‘큰 정부의 집단’으로 싫어하는 여론이 과반수를 넘듯, 공화당을 ‘대기업의 대변자’로 흘겨보는 여론도 과반수를 넘고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 또 다시 워싱턴 양당에 주어진 최우선 과제는 한 가지다 : 얼마나 빠르게 가시적 경기회복을 이룰 수 있는가.
앞으로 2년 유권자들은 또 다시 지켜볼 것이다 : 이 과제의 성취를 위해 어느 쪽이 얼마나 더 성숙하게 초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가.
사실 ‘초당적 타협정치’는 이행되지 못한 오바마의 대선공약이었다. 민주당 독주의 시절에 공화당을 경시한 오바마의 탓인지, 오바마 어젠다에 사사건건 반대해 온 공화당의 ‘노우’ 전략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제 뒤늦게라도 오바마는 좋든 싫든 초당적 타협을 다시 외치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 되었다.
중간선거에서 패한 역대 초선 대통령들이 그랬듯이 오바마도 선거 다음 날 첫 회견에서 “공화당과 초당적 협력을 위해 더 한층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패배의 책임은 감수했지만 지난 2년의 정책기조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타협을 모색하지만 대결도 불사한다는 속마음이 드러났다.
아직은 축배를 들 때가 아니라며 공화당의 새 하원의장 내정자인 존 베이너도 강조했다. “대통령이 정책의 방향을 바꾸고 국민이 요구하는 변화를 수용한다면 우리도 그와 협력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렇지 않으면 타협보다는 대결로 간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았다.
역사적인 헬스케어개혁과 금융규제 등 오바마의 야심찬 입법의 시기는 일단 끝났다. 지금부터는 경기회복에 올인하지 않으면 대선은 물 건너간다. 이제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입법이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이다. 공화당과 다투는 민주당의 보스가 아닌 국민의 고통해소를 위해 공화당의 제안을 경청하는 성숙한 지도자라는 이미지 개선이 시급하다. 아직 젊은 이상주의자 오바마에겐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고민이 깊기는 사기충천 공화당도 마찬가지다. 당분간은 오바마가 내민 손도 쉽게 잡지 않을 듯 고개를 세우고 있지만 그들의 속도 편하지는 않다. 우선 공화당에 대한 신뢰가 아닌 민주당에 대한 불신 탓에 어부지리로 거둔 승리라고 모두가 지적한다. 변덕스런 무소속의 지지는 언제 사라질지 모를 불안한 자산이라는 의미다.
지금까지의 ‘노우’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반대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출삭감과 적자해소를 위해 구체적 방법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는 불신하지만 정부가 내게 주는 혜택의 삭감은 반대하는 유권자들의 이율배반적 자세를 어떻게 수용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책임을 공유하는 통치철학을 정립하여 실천하는 성숙한 정당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극우보수 티파티의 과격한 요구에 대한 수위조절도 빨리 매듭지어야한다. 방치하면 내분의 소지가 다분하다. 민주당의 중도파 대거 낙선으로 더욱 리버럴해진 민주당과 반정부 티파티의 극단적 보수가 정면충돌한다면 새 의회는 타협은커녕 끝없는 교착의 늪에 빠질 것이다. 어렵게 새 기회를 얻은 공화당도 이젠 절반의 책임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원의 막강 다수당으로 복귀해도 아직 상원은 민주당 수중이고 대통령의 거부권도 건재하니 공화당이 실제로 실현시킬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2년 양당 모두 대립해온 주요정책의 입법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유권자의 지지는 입법 자체보다는 정책에 대한 논쟁과 그 근거가 되는 통치철학의 진정성에 의해 판가름 날 것이다.
한 선거의 끝은 또 다른 선거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2년 후엔 더욱 성숙해진 오바마와 더욱 성숙해진 공화당의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누구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지지를 위해 내 한표를 행사하는 ‘천심다운 민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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