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걷기가 좋은 미구엘 (Miguel)가를 다시 나와 마요르 (Mayor)광장이라는 곳에 왔다. 큰 광장에는 악사, 부동자세의 사람들 또 카페, 음식점도 많았으나 우리는 여기서 쉬지않고 구 시가지 중앙에 위치한 시청 공터까지 왔다. 우중충하고 각층의 창문 규격도 다 다른 시청청사에는 일요일이라도 문을 열어놔 관광객만 들락거리고 있었다. 동쪽에는 성 이유라리아 (Eulalia)라는 큰 교회가 있었고 여기서 13세기후엽에 제임스 II세가 즉위 했다니 벌써 650년전의 일이고 그간 고친데도 별 없다고 하는데 깨끗한 것을 보니 육백년도 잠깐인가 보네.
그 옆에 17세기에 단장 했다는 고딕체의 수녀원도 본다. 아프리카 무어족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하며 색깔을 들인 벽돌건물에 창문 크기도 작고 개수도 적었고 규격은 다 달라 보이는 주택들이 좁으나 질서 있게 서 있었다. 이곳에는 비잔틴 시대에 짓고 아랍들이 목욕 했다는 바니스 아랍스 (Banys Arabs)라고 부르는 아랍 배스도 있었다. 10개도 더 되는 기둥위에 얹혀 있는 둥근 천정에 구멍 다섯개를 뚫어 방 두개를 밝히고 길러 놓은 물로 목욕을 했다는 곳인데 입장료는 받으면서도 볼 것은 전혀 없었다. 그 옆에는 이곳의 오아시스격인 무어식 정원이 있고 선인장 고사리 파초 종려나무와 새들이 살고 있는 파란 숲이라 고건물들에 생기를 주는 것 같았다.남쪽의 바다에서 멀지 않는 곳에 아름답게 지어놓은 고딕체의 마요르카 성당이 있다. 아랍인들이 세웠던 회교당을 허물고 13세기 초엽부터 근 350년간 공들여 지은 주황색의 석회석 건물로 벽면에 요철이 많고 삐죽삐죽 올라온 첨탑들이 북구의 교회당을 연상케 한다. 이 세우 (Seu)라는 성당을 개축한다며 바르셀로나의 가우디를 데려와 제단위에 큰 샹델리어를 달고 둥근 차양 덮개를 그 밑에 만든다느니 본당 뒤에 있던 성가대 자리를 제단 옆에 둔다는 둥 교회 내부를 개조하려다 현지의 반대에 부닥치고 화가 난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고 했다.
나도 교회내부와 양옆의 채플들을 한바퀴 돌고 앞뒤로의 공간은 많으나 중간에 총총히 박힌 높은 기둥들로 별 시야가 안좋아서 어떻게 하면 이 기둥들을 다 뽑아 버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 시간이 없어 나왔다. 이 성당 안에는 18세기때 제작된 거대한 촛대 등이 있었고 무어시대까지 올라가는 보물의 보관소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는지 살짝 물어 볼 사람도 없었다. 성당 옆에는 알무다이나
(Almudaina)궁전이 있었다. 무어족이 병영으로 건설 했으나 13세기에 카타루니아 군이 차지 했고 그 후로는 마요르카왕의 궁전으로, 또 병영과 궁전으로 쓰인 곳이다. 지금은 반은 스페인 왕실의 겨울예비궁으로 나머지는 박물관으로 쓰이지 마는 일요일은 박물관도 문을 닫았다. 궁 주위로 돌아가며 홈을 파 물도 채워 놓았고 이중벽에 싸여 있고 대 여섯개의 망루와 대포구멍도 있어 당시의 왕들이 신도 벗고 발도 뻗고 잘 수 있었겠다. 박물관에는 이 지방 화가들의 작품과 이곳에서 생산한 카펫들을 전시 한다고 했다.고딕체의 궁과 성당을 바로 뒤에 두고 돛단배들이 이리저리 떠 있고 백사장의 바다를 앞에 둔
길게 펼쳐 있는 공원이 팔마의 백미라고 생각된다. 풍랑과 싸우는 여인의 동상도 있고, 파초와 종려나무가 무성해 그늘도 있고 마실 물도 있으며 차도도 가까이 없어 조용하다. 여기는 화가들이 많다고 들었다.
스페인의 두 거장인 18세기의 고야 (Goya)와 19세기의 피카소도 이곳과 상관 많은 아라곤주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고 그들은 이 지방 사람들에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며 아마 화풍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된다. 공원의 곳곳에는 잡상인은 없어도 그림을 파는 사람은 있었다. 유명화가의 그림이라는데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고 손으로 만져보니 표면이 오톨도톨한게 오일 페인팅인듯 하고 또 이곳의 풍광도 잘 표현된 것 같아 30% 깍아 14”x10” 2매를 샀다. 가격을 보면 진짜 같지 않고 만져보면 사진본도 복사본도 아니고 모르면 물어봐야 하는데 물을 사람은 없고 상인이 말한대로 유명화가(?)의 진본이라 믿는 게 편했다. 가로수가 어울리게 늘어선 넓은 해변가의 사그레라 (Sagrera) 인도를 따라가면 요뜨하 (Llotja)라는 옛날 팔마의 관문이 나오는데 마요르카에서의 대표적인 고딕체 건물이라고 했고 그옆에 발레아레스주 관청 콘솔랏Consolat)이라는 큰 건물은 2, 3층은 여름 휴양지 같이 툭 터이게 지었으나 아래층은 콩크리트 벽에 겨우 사람둘이 지나갈 수 있는 출입구만 달아 놓고 그 옆으로 대포 두개를 두어 위협적이기 보다는 가히 해학적이었다. 생선가게가 해변쪽에 있는 것을 보면 싱싱한 해산물도 많이 나오는 것도 같다.
이 길 끝에 있는 발루아르드 (Baluard)라는 현대미술관에는 스페인의 대표작이 많다고 들었으나 들어가 볼 여가가 없었다. 이 미술관의 건물은 중세의 궁궐 같았고 옥상의 각 코너마다 망대 (Turret)가 예쁘게 붙어 있었다. 팔마 중간을 지나가는 강도 피사나 니스의 강처럼 강폭을 줄여 강변의 땅을 유용히 쓰고 대신 강벽을 높여 홍수를 방지 하는것 같다. 강변에 잘 꾸며논 페이시나 (Feixina)라는 광장은 큰 모뉴멘터도 녹지도 있어 시민들의 휴식공간도 되며 다양한 문화 행사도 열린다고 했다.벌써 5시가 됐네. 깨끗하고 녹지가 많은 강변도로를 따라 올라와 포르투칼 (Portugal)가에서 부두로 가는 버스를 타고 무사히 배로 왔다. 긴 시간은 보냈으니 마요르카를 어슴프레 알 수 있는 하루였다. 역사와 다양한, 특히 소박한 아프리카의 문화 유산을 갖고 있는 곳이며, 바다는 물론 백사장도 좋고 유명한 동굴도 있고 해안절벽과 절경도, 또 날씨도 좋다니 스페인에서의 휴가지로 손꼽힐만 하다고 생각 되었다. 배는 6시 정각에 아프리카의 튜니시아 (Tunisia)를 향해 출발 하고 있었다.
종일의 항해
오늘은 10월 12일, 7시 45분에 해가 뜨고 오후6시50분에 진다. 망망한 바다 위에는 먼 구름이 떠있는 하늘과 동쪽에서 쨍쨍 쬐는 해 밖에는 없다. 섬 한 점 없는 먼바다인데도 파도도 없었고 물새도 없었다. 하나님이 창조 하신 처음 세가지의 빛과 물, 물 사이에 궁창만 있으니 태초의 첫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네.선객들이 하루종일 배에 갇혀 있는 날이라 선상의 프로그램도 많았고 온 세일이라며 내다 파는 물건들도 다양하다. 대낮부터 승객들에 술 파는데도 열중하는 것 같다. 스케줄을 보니 2시에는 35달러짜리 와인 테이스팅, 3시에는 13달러짜리 칵테일 섞는 법, 4시에는 100달러가 이 넘는 와인병 옥션도 있단다, 시도 때도 없이 술 팔며 돌아다니는 웨이터들, 수도 많은 빠들은 대목이나 된 것처럼 부산하다.
1시에 만나자던 신부님이 5분이 지나 같이 여행 하고 있는 자기 누나의 손녀와 같이 9층 식당으로 왔다. 이 손녀는 대학을 막 졸업했고 신부님의 배려로 같이 여행하며 자기는 사진찍기를 좋아하고 신부님은 술 마시기를 좋아 하신다고 어제 아침에 나에게 귀뜸 했었다. 제법 유창한 한국말로 분위기를 잡고 나는 와인한잔 사 드리고 분위기에 응했다. 와인을 잘 드시면 거만하시겠네요? 나는 잠언의 한구절을 생각하며 운을 뗐다. 이 나이에 거만하면 누가 옆에나 오겠어요? 소주도 없고 막걸리가 없어 와인을 마시지. 나는 고해성사할 자격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고, 자기는 옛날 한국에 있을 때 간혹 나간 전
도와 봉사의 경험을 얘기 하고 종군신부의 뜻을 새겨주고 있었다. 나는 계속 듣고만 있다가 한국의 초기 선교를 아는지 물어 봤다. 조선 최초로 사제품을 받은 젊은 김대건 신부의 순교도 알고 있었고 특히 불란서에서 파견된 신부들의 순교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었다. 병인양요때 문물을 훔쳐간 것은 사제들의 순교를 욕되게 했다는 답도 했다. 이 신부님이 늙어 가는 게 아깝다고 생각이 들었다. 배는 계속 동남쪽으로 가고 있으나 그 긴 아프리카 대륙의 지중해 연안에는 섬 한점도 없으니 무료하다. 지난 며칠간의 여행일지를 노트에 계속해서 적어본다. 시애틀 가면 한번 찾아 뵐 작정으로 이 신부님 주소도 적어 놓았다.<계속>
마요르카 섬의 팔마에 있는 세우 성당 옆에는 알무다이나 궁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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