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여행하다보면 거리에서 구걸하는 집시를 쉽게 볼 수 있다. 최근 프랑스 정부의 집시추방과 관련하여 유럽 내의 비난 여론이 거세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는 프랑스를 우회적으로 비판하였고 또 며칠 전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도 집시추방정책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로써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더 좁아지게 되었다.
그동안 프랑스는 동유럽의 집시들을 일제 검거하여 자국으로 돌려보내는 정책을 고수했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집시가 범죄와 매춘 그리고 아동착취와 연계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EU집행위원회는 이를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로 판단하여 프랑스에 대한 법적제재 수순에 들어갔다. 따라서 앞으로 이 문제는 유럽사법재판소에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루마니아의 대학자 하스데우(B. P. Hasdeu)는 집시를 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가사이한 민족”으로 규정했다. 정체도 불가사이 하지만 집시의 기원도 분명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집시 전문가 베르코비치(K. Bercovici)는 “세상에서 집시의 수만큼이나 집시의 기원과 관련된 많은 이론이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집시의 기원과 관련한 그동안의 연구물을 요약하면 <이집트 기원설>과 <인도 기원설>로 나눠진다. 18세기 말까지는 이집트 기원설이 우세했다. 그 이유는 집시의 짙은 피부색과 또 이집트인들이 중세 때 주술가로서 명성을 날린 것처럼, 당시 상당수의 집시들이 주술과 관련된 일에 종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780년 독일의 역사학자 그렐만(H. Grellmann)의 연구를 시작으로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집시 언어와 인도어 사이의 유사성을 언급하면서 인도 기원설을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인도 기원설이 통설(通說)로 받아들여지면서 집시의 기원과 관련된 논쟁은 과거보다는 덜 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집시가 본래 거주하고 있던 지역에서 언제 이주하기 시작했으며 또 어떤 이유로 그렇게 많은 수가 이주했는지 명확하게 밝히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코걸니체아누(Kogălniceanu)와 같은 학자는 집시가 오래전에 유럽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집시의 이주시기와 관련된 것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로 남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주시기가 정확치 않지만 어쨌든 집시는 유럽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학자들은 그 시기가 15세기 초일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베르코비치는, 집시가 공식적으로 서유럽에 처음 등장한 것은 1417년 독일이었고, 거기서부터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그 후 스위스, 스페인 그리고 나머지 서유럽으로 퍼져나갔다고 언급하고 있다.
루마니아에 정착한 집시는 농노제도에 묶여 노예로 전락했고, 14세기 말경 헝가리에서는 인육을 먹는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한 마녀사냥의 대상으로 몰려 화형이나 생매장되기도 했다. 독일인들은 19세기 초까지 집시사냥을 감행했고 20세기에는 나치 대학살의 주요 대상이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일부는 헝가리와 루마니아 집시였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나 사라사테의 ‘찌고이너바이젠’,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등은 집시음악을 기초로 창작되었다. 스페인 플라멩코도 집시의 민속음악이고 스페인 최고의 투우사들도 집시였다. 이 외에도 집시는 금속세공 분야에서 탁월한 기술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집시들은 어디를 가나 환영받지 못했고 심지어 이교도라 박해되기도 했다. 유럽인들은 집시를 불결한 존재로 간주했으며 또 사람을 속이고 물건을 훔치며, 주술이나 점술로 일반 사람을 현혹하는 나쁜 영혼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18세기 말 유럽에 계몽전제주의 체제가 도입되면서 군주들은 백성들의 안녕과 복지 그리고 집시의 운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즉 군주들은 사회분야에서 전반적인 개혁을 시도하면서 집시의 ‘정착정책’을 실시하였다. 당연히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집시의 삶과 생활양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오늘날 집시는 유럽에서 초국가적인 소수민족을 이루고 있으며 그 수도 1,000만 명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서유럽에 있는 집시들은 사회적 동화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동유럽의 집시들은 인종차별문제에 부딪치고 있다. 최근 들어 집시문제는 유럽의 민족주의에 의해 또다시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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