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멕 휘트먼과 제리 브라운이 한 자리에 마주섰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두 사람이 지난 28일 첫 공개토론에서 한판 대결을 벌인 것이다. 상대방을 녹다운 시킬만한 결정적 한방은 없었다. 누구를 뽑아야 하나, 망설이는 유권자에게 선택의 계기가 될 새로운 사실도 드러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재건’이라는 대전제는 되풀이 강조되었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은 여전히 제시되지 않았다. 판세 변화엔 별 영향을 주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흥미로웠다. 한 시간 공방이 별로 지루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론 두 후보에 대한 호감지수가 조금씩 높아졌다.
각기 짙은 색 수트에 청회색 타이를 맨 브라운과 보라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휘트먼이 악수를 나누면서 행사는 시작되었다. 정중하고 친절한 미소를 건네며 나눈 악수, 서로에 대한 이날 저녁의 호의는 이것으로 끝났다. 그리고는 지난 몇 달 미디어의 보도와 광고를 통해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들어온 상대에 대한 사정없는 공격이 쏟아졌다.
두 사람은 대조적이다. 54세 휘트먼은 대기업을 경영해온 억만장자다. 72세 브라운은 8년간 주지사를 포함 40년간 캘리포니아 정치를 섭렵해온 베테란 정치가다. 정치초년생 휘트먼을 무명의 여성 기업가에서 금년 중간선거의 스타로 부각시킨 1등 공신은 미 선거사상 가장 많이 쏟아 부은 후보자신의 돈, 1억1,900만 달러다. 그러나 3천만 달러의 기부금으로 꾸려가야 하는 브라운에게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정치명문가 ‘브라운’이라는 지명도와 숫자적으로 우세한 민주당 표밭이다.
대조적인 두 후보에게 보통사람이 맨 처음 던지고 싶은 질문은 아마도 같을 것이다. : “도대체, 왜 출마합니까?” 두 번이나 해본 주지사를, 이젠 편안히 은퇴할 시기에 또 하고 싶을까? 그 천문학적 액수로 할 수 있는 보람있는 일은 억만 가지도 더 있을 텐데…성공보다는 실패의 확률이 높은, 칭찬 보다는 비난이 쏟아질 이 힘든 정치에 왜 뒤늦게 입문하는 것일까?
두 사람의 대답은 같다 : “사랑하는 캘리포니아가 더 이상 망가지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그리고 파산지경에 처한 캘리포니아를 되살려낼 수 있는 적임자는 “바로 나”.
중병 걸린 ‘캘리포니아 살리기’ 처방은 이번 토론에서도 핫 이슈였다.
‘인사이더’ 브라운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경험과 양극화된 당쟁 속에서 합의를 끌어내는 권위와 설득력의 리더십을 강조했다. ‘아웃사이더’ 휘트먼은 변화를 실현시킬 신선한 새 얼굴의 강인한 추진력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정신이상에 대한 아인스타인의 정의까지 인용했다 - “같은 일을 계속 반복하며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지요”
가만히 있을 브라운이 아니다 : “같은 일은 반복하는 게 정신이상이라면…” 자기 돈을 쏟아 부은 정치초보 백만장자로 주정부 쇄신을 장담하고 나왔다가 실패하고 물러나는 현직 슈워제네거 주지사를 거론, 휘트먼을 슈워제네거의 복제로 암시하며 되받아쳤다.
휘트먼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오랜 세월 지원을 받아 온 노조와 브라운의 밀접한 관계를 겨냥, “공무원 연금개혁 위한 노조와의 협상을 브라운에게 맡기는 건 드라큘라에게 혈액은행을 맡기는 격”이라며 강펀치를 날렸다.
‘노조와 한통속’으로 묶인 브라운은 휘트먼을 ‘부자들의 대변자’로 몰아쳤다. “노조, 문제 있지요. 그런데 기업은 어떻습니까?” 휘트먼이 공약한 양도소득세 폐지를 실시할 경우 당장 53억달러의 세수가 줄어드는데 감세혜택의 80%이상이 휘트먼 같은 최고 부유층에 돌아간다고 그는 꼬집었다.
“정부의 운영은 기업의 경영과 다르다, 훨씬 어렵고, 훨씬 복잡하지만 주지사의 파워는 훨씬 적다”며 역전노장 브라운은 뉴 페이스의 ‘만용’에 혀를 찼지만 그라고 뾰족한 비결을 가진 것은 아닌 듯싶다. 경제대책 위원회 신설에서부터 정부기구 축소, 기업규제 완화, 지출 삭감, 세제 개혁 등 브라운이 제시한 대부분 해결책 역시 전임자들이 새크라멘토의 각종 관행의 벽에 부딪혀 좌절했던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의 승자는? 민주당에선 여유 있게 분위기를 리드한 브라운이 승리했다고 자신하고 공화당에선 진지하게 이슈에 집중하며 페이스를 잃지 않은 휘트먼이 이겼다고 평가한다. 철저하게 준비한 휘트먼은 초보 티 내지 않고 주정의 업무를 파악한 듯 신뢰를 주었고, 자신의 최대 약점인 나이를 소재삼은 조크로 청중의 폭소를 이끌어낸 브라운은 ‘인간적인’ 호감을 얻어냈다.
선거까진 33일 남았다. 지난 주 필드 여론조사에 의하면 아직 마음을 못 정한 유권자는 18%나 된다. 한인등 아시안은 더 많아 26%다. 공개토론은 10월2일과 12일 두 차례 더 열린다.
우리에겐 선택을 하기 전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이슈가 있다. 휘트먼에게 던질 질문이다. 공화당 후보인 그의 불법체류자 사면 반대 입장은 이해한다 치자.
이민법 개혁은 연방이슈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불법체류자녀들의 주립대 입학과 거주자 학비적용 정책에 대한 그의 반대는 다르다. 이미 캘리포니아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을 뒤집자는 것이다. 프로포지션 187에 담긴 반이민 기류가 감지된다. 그렇지 않아도 그늘에서 숨죽이는 아이들이다. 수십만 아이들을 왜 새삼 궁지로 내몰려고 하는지, 그의 답변을 반드시 듣고 싶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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