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 11시에 출발한 배는 근 10시간을 느린 속도로 남쪽으로 내려와 서부 지중해의 섬 마요르카 (Mallorca)의 항구도시 팔마 (Palma)에 아침 8시가 지난후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와 아프리카의 알제리아국 수도인 알지어 (Algiers)의 중간에 위치한 제주도의 두배정도인 이 섬은 다섯개 섬으로 된 발레아레스 (Balearic)군도 중 제일 큰 섬이다. 스페인으로 부터 자치령의 혜
택을 받고 있는 이 군도의 수도가 팔마다.
마요르카섬에는 50만명이 살고 그 반이 팔마에 살며 제주도처럼 휴양지도 많고 관광자원도 있으며, 수예품, 그림, 인조진주, 와인 등을 역외에 팔고 있단다. 해상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해 지방재정이 비교적 튼튼한 편이라고 들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의 활동지이었고 처가가 있었던 곳이다. 주민들의 생김생김은 스페인 테니스 선수 나달 (R. Nadal)을 보면 알듯하다. 이곳의 고대역사는 바르셀로나의 것과 비슷하고 로마제국이 망한 후로는 무정부 상태로 남쪽의 회교와 북쪽의 기독교인들 간의 싸움터였고 방대한 발레아레스 수로를 서로 지배하려고 다투며 해적질로 살아갔다고 한다. 강력한 북구의 독일계 반달족 (Vandals)이 몇번 쳐 들어와 섬전체를 파괴해 버렸다니 해적질의 보복인가 아니면 또 다른 약탈의 해적질인가. 그후 비잔틴제국의 지배가 있었고 이어 아프리카 서북부의 아랍들인 무어족 (Moors)의 지배가 CE11세기부터 13세기 초엽까지 계속 되었단다. 동북부의 이태리인들이 대서양으로 나가는 길목이기도 해11, 12세기때는 피사와 제노아 (Genoa)왕국이 약탈을 일삼았던 이 무어족을 수차례나 쳐 버릇을 고쳐놓은 적도 있었다. 13-18세기초엽까지 아라곤왕국에 속했고 그뒤는 스페인왕국의 통치를 받았다.
아메리카의 나라들과 통상의 뱃길이 분주해 지면서 이 섬도 다시 활기를 찾았다고 한다. 19세기 초엽에는 나포레옹의 압제를 피해 바르셀로나와 서쪽 본토에 있는 바렌시아 (Valencia)로 부터 대량의 피난민들이 들어 왔고 이들의 힘이 팔마의 재도약에 크게 보탬이 되었단다. 어제 이 배를 탄 시애틀에서 온 약 200명의 가톨릭 수련단 중에 80세가 넘은 주한 미군에 종군했던 신부님이 계시고 그가 일요일인 오늘 오전 7시 매스에 참석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도 이 예배에 참석하고 자유분망한듯한 신부님을 뵙고 내일 점심을 같이하기로 약속했다.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오는 불법이주자가 많은가? 배에서 내릴때 여권을 소지 하라고 한다. 부두에서 나와 가까운 대로변의 버스 정류소에 왔다. 낮 기온이 불과 72F밖에 안되고 아침 9시의 기온은 60F정도로 서늘하나 상쾌했다.
크루즈의 현지 여행에 참여하지 않은 8,90명중 반정도는 자기와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끼리 택시를 대절 해 떠나고 우리같이 멀리 시외로 나갈 사람은 시내의 시외버스 정거장으로 가기위해 시내버스를 탔다. 창으로 내다 본 팔마시는 생각보다 컸고 우람한 건물이며 도로정비도 잘되어 있었다. 휴양지답게 녹지도 많았고 시내는 한산했다. 시내 구경은 발데모사 (Valldemosa)에 다
녀온 후에 하기로 하고 시외버스 정거장에서 긴 열을 서고 30분후에 발데모사로 가는 버스를 탈수 있었다. 2차로의 굽은 길을 지나 시외로 나오니 툭 터인 평지에 경작지도 있고 과수원도 묘목원도 있어 전원은 좋았으나, 공장도 여기저기 보이고 무슨 수리소 같은 데도 많고 어쩐지 조닝이 잘 안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은 쇼팽 (Chopin)이 1838년에 폐결핵을 요양한다며 그의 여자친구인 불란서 작가 상드 (Sand)와 그녀의 두 애들과 같이 춥고 비가
많던 그해 겨울을 보낸 발데모사 수도원이다. 팔마에서 약 30분의 버스거리인 높은 산의 정상에 자리잡은 이 수도원은 14세기 말엽 불란서 가톨릭교회의 한 종파인 카르투산 (Carthusian)교회의 신부와 수녀를 길러내기 위해 세운 곳이
었다. 1835년에 세속화 시켰고 그래서 팔마에서 아파트를 못 구한 쇼팽일행이 몇개월간 유할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했고 몽크들이 쓰던 방과 기도원, 약국, 도서관, 식당들이 있었고 쇼팽의 작곡에 쓰였던 피아노도 있었다. 푸른 숲에 덮혀 있는 이 수도원 옆에는 아담한 정원이 있다. 요양도 소용없었던가, 이 폴란드의 작곡가는 10년후 38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요절 했다. 이 근방의 소예르 (Soller)이라는 해변가 산촌에는 경치 좋은 곳을 따라 다니면서 팔마로 가는 1910년대의 케이블카 같은 나무기차가 있다. 가서 타 보자고 몇 사람이 권했으나, 우리가 가기로 정해 놓은 곳을 다 돌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촉박 할 것 같아 사양하고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팔마로 내려 왔다.
정거장 앞의 넓은 광장에는 1230년 바르셀로나에서 군대를 이끌고 와 아랍족을 치고 마요르카를 점령하며 아라곤제국에 조공하는 마요르카 왕국을 세운 제임스 (James) I세의 말탄 동상이 있었다. 지도의 남쪽을 해 떠있는 곳으로 맞추며 이길 저길을 따라 돌리브 (D’Oliver)라는 시장통에 왔다. 생선 고기 야채 과일상들이 푸짐하게 벌려놓고 호객을 하는데 우리가 복숭아 여섯개를 점심으로 산 과일가계 여주인의 목청이 제일 좋았고 진열도 아주 예쁘게 해 놓았다. <계속>
마요르카섬의 팔마에 있는 알무다이나 성과 그 옆에 있는 세우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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