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평양인근에 군 병력이 대폭 증강 배치됐다. 수 천 명에 이르는 당 대표들이 평양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정은 이미 두 달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제3차 조선노동당 대표자 회의다. 44년 만에 열리는 이 대회의 중요성을 감안해서인지 중국의 신화사 통신은 대회 리허설부터 보도했다.
그 대회가 그러나 열리지 않았다. 김일성에서 김정일, 그리고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사상 유례가 없는 공산왕조 3대 권력 세습의 쇼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대표자 회의다. 그 대회가 결국 열리지 않았고 9월도 하순에 접어든 현재 평양 당국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극히 이례적인 사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공식적인 해명은 없다. 단지 엄청난 수해 때문에 대표자 회의가 연기됐다는 말만 비공식적으로 나돌 뿐이다.
인프라가 엉망이다. 가난한 나라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이 김정일이 참가하는 ‘1호 행사’ 마저 열 수가 없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연막용에 불과하다는 게 대다수 북한 관측통들의 진단이다. 그 진짜 이유는 그러면 어디에 있을까.
권력승계에 따른 권력재편 조율을 둘러싸고 권력 내부에 갈등이 노정된 결과다. 주로 북경에서 나오는 관측이다. 김정은 후계문제와 관련해 군과 당의 핵심세력 간에 갈등이 불거진 결과 당 대표자회의 개최가 지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같은 전문가는 김정일을 정점으로 한 ‘로열패밀리’까지 그 갈등에 휘말려들 수 있는 것으로 보면서 김정일조차 어쩔 수 없는 통솔불가능 상황 발생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김정일이 이성적 판단능력을 상실한 결과가 아닐까. 또 다른 관측이다. 2년 전 김정일이 뇌졸중 증세를 보인 이후 북한당국은 줄곧 괴이하기 짝이 없는 결정만 내려왔다.
그 가장 두드러진 예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간 화폐개혁이다. 천안함 사태도 그렇다. 도발결과 돌아온 것은 외교적 고립에, 한층 터프해진 국제사회의 응징, 더 악화된 경제난 뿐이다.
한 국내 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은 죽은 김일성을 만났다고 말하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그 보도가 사실이라면 당 대표자 대회 돌연 연기 같은 사태는 언제나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그 연장에서 나오고 있는 또 다른 관측은 김정일의 건강이 더 나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다른 각도의 관측도 제기된다. 북한 권력 내부보다 외부적 요인에 초점을 맞춘 관측이다.
“김정일과 후진타오가 만난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을까.” 영국의 북한문제 전문가 에이던 포스터-카터는 당대표자대회를 앞두고 김정일이 돌연 중국을 방문한 데서부터 그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북한을 썩어서 제풀에 떨어질 과일로 중국은 보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김정일이 품에 날아들었다. 지난 8월 후진타오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거기에서 한 가지 빅딜이 성사됐을 가능성을 그는 이런 식으로 풀이했다.
“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도 인정하겠다. 대대적인 경제지원도 마다하지 않겠다. 60년 전 6.25때 북한을 구해준 것처럼 북한 체제의 안보도 보장하겠다.”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시장경제가 그 하나다. ‘북경 컨센서스’를 따르라는 이야기다. 또 다른 하나는 더 이상 사고를 치지 말라는 것이다. 당장의 핵 포기를 요구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또 한 차례의 군사적 도발이나 핵실험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 중국방문 이후 북한은 평화공세에 여념이 없다. 이산가족상봉에서 군사회담 제의 등. 분명히 변화라면 변화다. 여기까지는 오우케이다. 문제는 중국의 북경 컨센서스 순응 요구를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 가하는 것이다.
개혁·개방 소리만 나와도 경기를 보여 온 체제다. 그런데 개혁·개방과 함께 선군(先軍)에서 선경제(先經濟)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당 정책에 반영시켜야 한다. 심각한 내부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게 당 대표자대회 연기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그러나 어디까지나 관측일 뿐이다. 그 진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머지않아 당대표자회의가 열리고 김정은으로 후계구도가 기정사실화되어도 수령절대주의시대는 곧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서방의 자유 시장경제체제는 말할 것도 없다.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개혁·개방정책이 도입되어도 수령절대주의는 무너지게 돼있다. 정보의 자유 유통과 함께 우상숭배체제인 수령절대주의 체제는 그 존재의 이유를 상실케 되는 것이다.
좌로 가든, 우로 가든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북한 체제가 맞이할 운명은 결국 파멸뿐인 것이다. 예고했던 당 대표자회의 조차 못 여는 북한의 오늘 날 모습. 이는 그 대파국 시나리오의 카운트다운이 이미 시작된 것을 알리는 게 아닐까.
옥 세 철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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