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 설계 ‘카사밀라’ 아파트는 곡선만 사용
종점인 수도원으로 가는 시내 버스 안은 깨끗했고 승객들도 우리보다 점잖은 옷차림이 많았고, 가고 있는 이 길도 건물, 가로수와 함께 깨끗해 보였다. 수도원이라기보다 옛날의 수녀원이라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14세기 아라곤의 여왕 엘리센다 (Elesanda)가 사재로 지은 이 수녀원은 수녀는 물론 재가 안한 상류층의 부인들, 나중에 남편을 잃은 자신도 많은 재산을 기부하고 이곳에 들어와 같이 살았다고 한다. 금남의 수도원은 박물관이 되었다. 우리도 이곳에 있는 당시에 쓰던 집기, 가구, 책과 그림, 부엌과 식당, 또 채플 등을 볼수 있었으며 수녀들의 침실도 있었다. 넓다란 정방형의 정원을 가운데 두고 돌아가는 아취형의 복도와 도미토리는 평화롭고 정숙하게 보였다.
오렌지 나무들과 파초가 널려있는, 주위가 조용한 이 수도원에서 10분 정도 걸어오면 구엘의 파빌리온이 나오고 그 정문에는 날개 달린 괴물, 동물의 어금니, 길게 누운 용들이 달려있었다. 이곳은 자연 현상을 건축에 접목 시켜보는 곳으로 바르셀로나 건축대학에 속하며 하루전에 예약을 해야 입장할 수 있다고 했다. 가령 무거운 쇠사슬의 양쪽을 고정시키고 축 늘어진 사슬의 모양을 아치문의 형상으로 만들면 보기도 좋고 튼튼도 하다는 식이다. 정문 앞에서 사진 몇 장 찍고는 나와 옆에 있는 도자기 박물관으로 갔다. 카타로니아의 국기 바탕인 노랑색으로 단장된 이 박물관은 옛날의 궁중답게 호화로운 샹데리아 가 윗층으로 올라가는 양계단 사이에 축 늘어져 있었다. 내용물은 특별한 게 없고 이 지방을 포함한 여러 곳의 매병, 접시, 단지, 인형 등이 있었고 실내장식등도 여러 가구와 모양으로 전시 하고 있었다.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가드는 구석의 의자에 앉아 눈을 떴다 감았다 아직 머리가 안 떨어진 것을 보면 낮잠 (Siesta)은 아니고 명상인가보다.
이 박물관앞의 지하도를 통해 건너편으로 와 버스를 탔고 다이아고날가와 그라사아 (Gracia)가가 만나는 곳에서 내렸다. 카사 밀라 (Casa Mila)라고 부르는 가우디가 설계하고 1910 년경에 지은 아파트를 구경하기 위해서다. 외부에서 본 이 건물은 어디에도 직선이 없는 콩크리트의 파도가 층들 사이를 지나가는듯 하고 들쭉날쭉의 벽면도, 벽을 파 뚫어 놓은 것 같은 창문도, 창문앞 발코니에 붙여놓은 꼬인 연철의 조각들도, 모두가 전통적인 모습과는 너무나 상이하다. 지붕도 굴곡이 심한듯 굴뚝의 높낮이도 달랐고 붙여놓은 조각상도 색깔도 다 다른 공상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것들이었다. 건물의 지탱도 쪽 바른 기둥하나 안 쓰고 전부 굴곡의 아취를 엮어 이 큰 아파트를 유지한다니 그 당시 건물 안전 허가 관리자들과 옥신각신 다투었다는 일화에 수긍이 간다. 아파트 내부도 바닥 외는 직선이 없고 전부 곡선이라며 평수가 다 다르고 천정 높이도 다르단다. 평면적에 비해 재료도 수공도 많이 들것 같지마는 이 구조로 집안의 채광이 좋아 진다고 한다.
백년전에 짓고는 더 안 짓는 것을 보면 모더니즘도 한때의 포퓨리즘이었던 것도 같다. 그라사아가를 남쪽으로 한참 내려오니 또 다른 가우디의 건물 카사 바트요 (Batllo)라는 19세기말 지은 집이 있었고 바트요의 개인집이라 했다.
윗층의 창문들 밑에는 얼굴뼈 형상의 받침을 해 놓았고 아래층의 타원형의 창문앞에는 다리뼈 같은 받침과 그 안에는 물결 같은 창살이 지나가고 있었다. 조각으로 붙여놓은 돌벽의 흐름도 있었고, 굴곡진 벽면도 사기그릇을 잘게 깬 모자이크로 여러가지 색깔을 내고 있었다. 지붕에는 트림하는 용을 올려놓았다. 가우디의 조형물 중에 용을 많이 쓴 것을 보면 동양의 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던가 보다. 좌우간 모더니즘을 대표한다는 이상도한 집들을 보고는 그라사아가 남쪽끝의 카타류냐 (Catalunya)광장으로 왔다.
바르셀로나의 사거리는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넓고 툭 터져 보인다. 모든 사거리는 각 코너를 잘라 버려 다이아몬드형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다니기도 한결 쉽고 시야도 넓어져 목적지를 찾아 가기도 쉬운 것 같다. 카타류냐광장은 바르셀로나의 중심이니 카타로니아의 중심이다. 중요한 길들이 이곳을 다 지나가고 넓디 넓은 광장에는 분수들과 무수한 동상들이 있고 또 이 시의 지도자였던 마시아 (Macia)의 모뉴멘트도 있었다. 묵직하게 보기 좋게 지어놓은 주위의 건물들도 있고 볼만한 명소들이 멀지 않게 있어 좋고 우리도 시간이 있으면 더 쉬고 싶었다. 밤에는 조명 앞에 춤추는 분수의 구경도 있다니 좋겠고. 북구의 도시들처럼 비둘기떼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여기는 중세때부터 있던 벽과 집을 허물고 19세기에 벌써 도시계획을 했으며 1930년에는 지금의 도시로 변화되고 지하 철로를 중심으로 하는 교통망도 정비 되었다고 했다. 잠깐 둘러본 지하철역은 모자이크로 잘 장식되어 있었다. 광장을 나와 콜럼버스 동상을 향해 다시 램블라가로 들어 왔다. 이 넓다란 길은 시의 중심에서 해변을 연결하는 도보로 퍽 재미를 느끼며 갈 수 있는 길이다. 주위의 건물 하나하나가 다 다른 형상으로 정면을 꾸며 놓았고, 어떤 건물에는 큰 용이 초롱 등을 들고 있는 조각품도 달아 놓았으며 구엘이 살았다는 옛집의 지붕에는 가우디 작품의 삐죽하게 올라온 원뿔형의 이상한 조각들이 나열되고 있었다. 길도 착시로 높낮이가 다르게 보이도록 색깔이 다른 블럭으로 깔았으며 어떤 곳은 모자이크로 단장을 하고 있었다. 인파가 이 넓은 길을 꽉 채우고 있었고 노상카페, 꽃집, 타파스 바, 사람이 든 부동상, 재주를 부리는 야바위꾼, 즉석화가들 등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보께리아 (Boqueria)라는 청과시장에는 과일의 자연색깔, 크기 등을 잘 조화시켜 놓아 과일을 사면 진열대의 이가 빠질라 염려되고, 아름다운 표현이 예술이라면 이 청과상들도 훌륭한 예술가들이라 생각이 됐다.
다시 내려 와 한 골목으로 들어서니 큰 광장 (Placa Reial)이 있고 로얄 프라자로 번역되는 이 넓직한 곳은 아치형으로 꾸민 중후한 건물들에 싸여 있어 이에 상응되는 시민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여행 나와 처음으로 공중전화통에 들어가 미국의 애들과 친지들에게 전화를 했다. 다들 잘 있고 집은 텅 비어 있으나 별일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였다. 콜럼버스 동상 근방까지 오니 해변에서 몬주익 (Montjuic)산의 공원으로 연결되는 케이블카가 오르락내리락 했다. 아침에 배에서 나올 때 그곳에서 해변과 도시를 조감 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간다는 얘기는 들었다. 남산같이 우뚝 선 곳이고 카탈루냐 박물관과 국제박람회의 전시관이 있다고 했다. 인파로 덮힌 해변가의 유흥장을 한번 돌아보니 오후 7시도 지났다. 더 가볼 데는 많은 것 같으나 다리도 피곤하여 배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이곳에서 받은 인상은 바르셀로나는 계속 전위적인 미를 창조하고 그에 따라 자기의 맵시를 가꾸고 자랑도 하는 진취적인 도시임을 느끼게 한다. <계속>
스페인 바르셀로나 가우디의 작품 카사 밀라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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