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음식을 만들면서 불이나 물속에서 식재료가 어떻게 변하는지 우리는 경험상으로 알고 있다. 갈비를 구울 때는 불판이 뜨겁게 달구어졌을 때 고기를 올려야 하는 것, 조기를 구울 때 살이 부스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밀가루를 겉면에 고루 묻혀 식물성 기름에 지져내는 것, 냉동했던 고기를 해동했을 때 수분이 많이 빠져 나오면 고기가 뻣뻣하게 요리된다는 것, 튀김을 할 때는 버터 같은 지방보다 연소점이 높은 기름을 사용한다는 것, 달걀 거품을 낼 때는 기름기 없이 깨끗한 유리나 스테인리스스틸 그릇을 사용하는 것 등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어 무심코 하는 방법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을 잘 안다.
‘요리는 과학’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떠한 방법론(요리법)을 사용하여, 그 지시에 따라 재료들을 섞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요리과정), 완성되면 결과를 분석(시식하여 맛을 음미)하는 것은 과학실험과도 같은데, 기본적인 화학작용을 알고 있으면 요리 재료가 물리적 환경으로 인해 변하며 생기는 요리과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요리기술까지 향상시킬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가장 실패하기 쉬운 품목인 치즈 수플레의 경우, 보통 요리책에
써있는 대로 따라 했으나 원하는 만큼 수플레가 제대로 부풀지 않고 볼품없이 푹 꺼져버려서 실패할 확률이 높다. 치즈 속의 지방이 달걀 거품을 파괴하는 작용을 하는데 이 작용을 미리 이해하고 지방을 녹말이 주성분인 소스 속에 가두어 거품 파괴를 막아 준다면 꺼지지 않는 수플레를 만들 수 있다.
요리하면서 실패했던 경험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다. 레서피의 부정확이나 실력부족으로 생각해 포기하지 말고 식재료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상황에 따라 응용하면 재미있을 것이다. 가장 흔히 사용하는 재료들에서 그 동안 궁금했던 점들을 찾아보았다.
근섬유 등으로 된 육류
센 불에서 변성 일으켜
결합조직 많으면 오래 조리
지방 골고루 퍼져야 향 좋아
●육류와 가금류
먼저 육류의 조직에 대해 알아보자. 고기는 근섬유, 결합조직, 지방과 물로 이루어져 있다.
근섬유는 주로 미오신과 액틴이라는 두 종류의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는데, 흔히 말하는 고기 결이 바로 이 근육의 방향을 말한다. 이 근육 단백질은 화씨 105도에서부터 변성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120도 이상에서는 응고하며 딱딱한 덩어리로 굳어가므로 질긴 질감을 만들어 낸다.
결합조직은 근섬유 다발의 사이사이에서 근육을 서로 결합하고 뼈에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콜라겐(교원질), 레티쿨린(망상조직), 엘라스틴(탄력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큰 하중을 지탱해야하는 다리 같은 부분에 특히 많이 있고 모든 결합조직은 질기며 흔히 말하는 힘줄이라는 것이 많다. 그런데 이 결합조직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콜라겐은 140도 이상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레티쿨린과 엘라스틴은 195도 이상에서 아주 오랫동안 가열해야만 변성을 일으켜 부드러워지게 된다.
지방은 고체의 상태로 고기 속에 섞여 있는데 고기에 많은 향기를 나게 하기 때문에 마블링이 잘 되어있는 고기를 씹었을 때 고소한 향이 퍼져 나와 고기가 맛있다고 느끼게 도와주며 질긴 근섬유 가까이 붙어있을 때는 고기가 덜 질긴 느낌이 들도록 한다.
또, 고기를 잘라보면 육즙이 흘러나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물 분자들은 고기 속 단백질에게 붙잡혀 있다가 가열되어 단백질이 변성을 일으키면 빠져 나오면서 고기가 건조하고 텁텁하게 느껴지게 한다. 고기를 구운 후 바로 단면을 자르지 말고 3분에서 길게는 10분 정도 따뜻하게 보관하였다가 자르면 육즙 방출을 줄일 수 있다.
냉동했다가 해동한 고기에 물이 흥건히 나와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물이 얼음결정으로 변해서 쉽게 단백질로부터 빠져나오게 되므로 냉동고기가 신선한 고기보다 더 마르고 건조한 느낌을 주게 된다.
따라서 고기를 익힐 때는 근육단백질의 부드러움을 보존하는 것과 결합조직을 연하게 만드는 것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내면 된다. 일반적으로 결합조직이 적은 고기는 짧은 시간(스테이크, 볶음) 동안 조리하고, 결합 조직이 많은 고기는 좀더 오래(갈비찜, 국거리 고기, 스튜용) 조리하면 되는데 문제는 닭이나 칠면조 한 마리 같이 결합조직과 근육단백질을 한꺼번에 조리해야 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이때는 가슴부위를 다른 부위보다 덜 익혀야 하므로 쿠킹호일로 가슴을 덮어 열을 차단해주면 촉촉한 가슴살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스테이크나 고기볶음 등을 요리할 때 고기를 센 불에서 겉면을 먼저 익히라고 되어있는 레서피를 많이 본다. 특히 스테이크를 팬에서 구울 때는 팬에 기름을 두르고 기름에서 연기가 날 때 고기를 올려 지지직~ 소리가 심하게 나도록 겉면을 지지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한다. 이는 열로 인해 당과 단백질 사이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으로 250도정도의 높은 온도에서만 일어나면서 ‘고기냄새’로 느껴지는 향기를 만들어내서 고기요리의 풍미를 좋게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낮은 온도에서는 이 반응이 일어나지 않게 되어 같은 고기를 구워내도 맛없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생갈비 한 점 구워 먹을 때도 불판이 잘 달궈졌을 때 고기를 올려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생 선
물이 몸의 체중을 떠 받혀주는 생선의 경우 그 근육조직이 긴 근섬유의 배열이 아니라 짧은 다발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익혔을 때 조각조각 잘 부스러지고 부드럽고 약하다.
육류는 겉면을 높은 온도에서 먼저 지져내야 풍미가 좋아진다.
근육 부드러운 생선 “조리는 짧게”
생선 필레는 끓는 점이 높은 식물성 기름으로 지져내는 것이 좋다.
겹겹이 바삭거리는 페이스트리.
글루텐 형성이 많이 되면 쫄깃거리는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다.
익혔을 때 부서지기 쉬워
튀김옷 입히면 수분 증발 막아
질긴 결합조직이 전혀 없기 때문에 조리의 목적이 살을 연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살을 일정온도로 익히면서 풍미를 더해 주는데 있다. 생선은 섬세한 향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주로 살 속의 기름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생선의 비린내는 왜 나는 걸까?
생선에는 원래 비릿한 바다냄새가 나는 걸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금방 잡은 싱싱한 생선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죽은 후 몸속의 효소작용으로 발생하는 노폐물이 순환계가 더 이상 작용하지 않아 쌓이기 시작하면서 비린내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사후경직으로부터 6시간 후 세균활동이 시작되는데 이로 인해 상한 듯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 생선을 잡은 즉시 얼음 속에서 보관하면 최고 1주일까지 사후경직을 연장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냄새가 나지 않는 생선을 골라서 만든 잘된 생선요리의 요점은 조리시간을 짧게 하여 지나치게 익히지 않고, 풍미를 살려줄 수 있도록 강한 소스를 사용하지 않는데 있다.
육류에서 나타나는 마이야르 반응이 생선에도 있는데, 육류의 경우처럼 풍미를 돋워주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심한 생선냄새를 풍겨서 섬세한 향미를 없애버리는 역할을 한다. 가자미 같은 생선을 기름에 지졌을 때 기름에 쩐 듯 좋지 않은 냄새를 풍기는 것이 이런 경우이다.
생선을 찜 또는 포칭(생선의 반 정도가 육수에 잠긴 상태로 요리하는 방법)하여 요리하면 온도가 물 끓는 온도인 화씨 212도를 넘지 않으므로 태울 염려가 전혀 없고, 증기 때문에 촉촉한 상태를 유지해주게 된다. 생선 필레를 팬에 지지는 것 역시 쉬운 요리방법인데 이때는 버터보다 끓는점이 높은 기름을 사용하여 심한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요령이다.
영국의 음식 피시 앤 칩스의 생선튀김은 튀김옷이 생선을 보호해 주면서 생선 자체에서 나오는 수분의 증기로 조리되기 때문에 속살이 부드럽고 촉촉한 요리가 만들어지므로 생선을 튀기는 것은 생선에 아주 잘 어울리는 요리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용도따라 밀가루 종류·반죽 다르게
●밀가루
좋은 빵을 만들려면 글루텐이 생기도록 밀가루를 잘 반죽해야 하고, 좋은 페이스트리를 만들려면 글루텐이 생기지 않도록 밀가루를 아주 부드럽게 다루어야 하는 것 정도로 알고 있는데, 묵직하게 쫄깃한 빵과 가볍게 바삭거리는 페이스트리가 만들어지는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다.
밀가루는 포함된 단백질의 함량으로 구별되는데, 강력분이라 불리는 12% 이상으로 단백질 함량이 높은 종류가 반죽을 치대면서 글루텐의 형성이 잘 되어 구웠을 때 쫄깃한 빵을 만들어낸다.
강력분을 물, 효모와 섞어 손바닥을 이용해 힘차게 쭉쭉 늘이는 기분으로 반죽하여 탄력있는 글루텐을 잘 만들어주면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럽게 쫄깃거리는 빵의 질감을 내고, 효모가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기체들이 부풀어 올라 빵을 팽창시켜 주면서 이때 반죽 속에서 형성된 글루텐 막이 고무풍선처럼 기체를 가둬두기 때문에 구워진 후 단면을 잘라보면 크고 작은 구멍이 생기게 된다.
효모를 넣고 부풀리지 않은 빵도 많은데 또띠야가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다. 옥수수가루에 물을 섞고 반죽을 아주 얇게 밀어 뜨거운 철판 위에 놓고 한 면당 30초 정도로 잠깐 구워낸 것이다.
부드럽고 폭신한 질감을 내야하는 케익을 구울 때는 박력분으로 단백질의 함량이 8~10%정도인 종류를 사용한다.
페이스트리를 만들 때는 글루텐의 생성을 최소화해야 얇고 바삭거리는 질감을 낼 수 있으므로 단백질 함량이 7~10% 정도 되는 중력분을 사용하고 글루텐 생성을 억제하기 위해 물을 섞기 전에 지방(버터)과 밀가루를 비벼서 잘 혼합한 후 반죽한다.
페이스트리는 먼저 반죽으로 지방 덩어리를 감싸서 편편하게 만든 다음 이것을 접어서 밀고 다시 접어서 밀어주는 과정을 반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지방이 밀가루 반죽 사이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얇게 바삭거리며 겹겹이 갈라지는 형태로 만들 수 있게 된다.
팬케익 믹스로 팬케익을 구울 때 가루와 물을 섞고 ‘너무 많이 휘젓지 말라’(Do not over mix)라고 되어 있는 것 또한 비슷한 경우로 팬케익은 가볍고 폭신한 느낌이 나야 하는데 반죽을 마구 휘저으면 그만큼 글루텐이 생성되어 쫄깃하고 딱딱한 팬케익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단백질 함량에 따라
강력분>박력분>중력분 구분 반죽 오래하면 글루텐 잘 형성
구우면 쫄깃한 빵 만들어
요리할 때 왜 그럴까
*밀가루를 체에 치는 진짜 이유
거의 모든 요리법에서는 밀가루를 사용하기 전에 체에 치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밀가루에 공기를 통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용되는 대부분의 밀가루는 물을 넣어 반죽하기 때문에 그 속에 들어 있는 공기는 모두 빠져나가게 된다.
밀가루를 체에 치는 진짜 이유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는 밀가루를 포장하지 않은 상태로 팔았고 때문에 이물질(나방, 애벌레, 심지어는 쥐똥까지도)이 들어갈 확률이 높았기 때문에 이를 걸러내기 위해 밀가루를 체에 치는 과정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덩어리지는 것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도 하지만 오늘날의 밀가루는 알갱이들이 서로 들러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첨가제가 들어 있으므로 덩어리진 밀가루는 거의 없다.
*달걀 흰자위로 거품을 낼 때 플래스틱 용기를 피하는 이유
오늘날 기술 혁신의 하나로 탄생하여 편리한 이면에 그만큼 많은 공해를 일으키고 있는 플래스틱 그릇의 폴리프로필렌이나 폴리에틸렌 성분에는 지방과 비슷한 분자들이 포함되어 있어 그 자체로는 해롭다고 할 수 없지만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거품의 생성을 방해하는 작용을 한다. 스크래치가 쉽게 나는 플래스틱 그릇에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므로 거품을 낼 때는 스테인리스스틸이나 유리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실패를 줄여준다.
흰자위 거품은 스테인리스나 유리용기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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