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체는 먹어야 산다. 경제는 먹을 것을 만드는 행위다. 정치는 먹을 것을 나누는 행위다. 생명체인 인간이 사는 사회를 논하면서 먹고 사는 문제를 빼고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아무리 고매한 철학이나 문학 이야기도 배가 고파서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금강산 식후경”(金剛山 食後景)이란 말을 남겼고 한국의 직장인들은 “밥 먹고 합시다” 혹은 “다 먹자고 하는 일”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관념철학자였던 칼 마르크스는 이를 “물질적 하부구조가 정신적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어려운 말로 설명했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문제는 경제다, 바보야”라는 쉬운 말로 풀이했다.
농사가 거의 유일한 산업이던 시절 집권자는 의지와 능력만 있으면 경제 문제를 비교적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웃나라보다 강한 군대를 조직해 쳐들어가 땅을 빼앗고 주민들을 노예로 삼으면 됐다. 공짜 노동력을 이용해 얻은 땅에 곡물을 심어 세금으로 거둬들인 후 자국민들에게 인심을 쓰면 대왕이란 칭호까지 붙여줬다. 사이러스 대왕부터 알렉산더 대왕에 이르기까지 대왕 칭호가 붙은 사람들은 주로 남의 나라를 잘 쳐들어간 사람들이다.
그러나 전쟁의 파괴력이 커지고 주요 산업이 농업에서 공업으로 바뀌면서 이런 식의 경기 진작은 힘들어졌다. 제2차 대전 때 미국은 숱한 물자와 인명 손실을 보며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이로 인해 직접적인 물질적 득을 본 것은 없다. 전쟁 수요 덕분에 잉여물자를 처분하고 대대적인 징집으로 고실업을 해결했지만 이는 별개 문제다.
시장 경제 체제에서 장기간 호황이 계속되면 수요와 공급 양쪽 모두 거품이 생기고 이 거품이 터지면 불황이 찾아오는 것은 불가피하다. 오랜 불황은 개인과 기업 모두 군살을 빼고 경쟁력을 높이며 잠재적 수요와 공급의 싹을 키워 미래의 호황을 가능케 한다.
불경기와 호경기가 주기적으로 진동하는 제도 하에서 집권자들이 국민들의 배를 부르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실상 별로 없다. 낮은 세금과 법치주의, 재산권 보호 등이 경제 발전에 필요한 요소들이지만 이런 제도적 장치가 효력을 발휘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효과를 보더라도 경기 사이클은 막을 수 없다.
지난 100년간 미국 역사는 두 가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하나는 대통령이 아무리 애를 써도 경기는 독자적인 사이클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호경기 사이클을 탄 인사는 유능하고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칭송되지만 불경기 사이클을 탄 인사는 재수 없는 인물로 매도된다는 점이다.
집권 내내 지식인들로부터 ‘멍청이’로 조롱받았던 레이건은 지금까지 미국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고 화이트워터부터 르윈스키에 이르기까지 스캔들의 대명사였던 클린턴 또한 아직 인기가 여전하다. 학력이나 나이, 기질, 이념적으로 하나도 닮은 데가 없는 이들 두 사람의 공통점은 80년대와 90년대 유례없는 장기 호황 때 집권했다는 점이다.
반면 닉슨과 포드, 카터, 아버지 부시, 아들 부시 등은 모두 한 텀밖에 못했거나 임기 중간 쫓겨나거나 물러난 후 혹평을 받고 있다. 모두 불경기 사이클 때 백악관에 앉았던 죄다. 미국이 대공황에서 벗어나던 때에 맞춰 순직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위대한 대통령’으로 불리고 대공황 한 가운데 집권한 후버가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오바마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기고 같은 민주당원들도 중간 선거를 앞두고 가까이 오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이러쿵저러쿵 온갖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진짜 이유는 경제가 죽을 쑤고 있기 때문이다. 배부르면 웬만한 것은 그냥 넘어가지만 배고프면 이것저것 다 불만스럽고 까다로워지는 게 인간 심리다. 오바마가 집권한 것도 불경기 덕이고 지금 욕먹는 것도 불경기 탓이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대통령 자리도 알고 보면 경기의 바다에 뜬 쪽배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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