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개막된 2010 광주비엔날레는 고은 시인의 연작시에서 따온 만인보 를 주제어로 택했다. ‘만인보’가 수많은 인물의 삶을 소개하고 있듯이 오는 11월7일까지 66일간의 대장정을 시작한 이번 광주비엔날레 역시 사람들이 지금껏 만들고 남기고 간 수많은 이미지를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초점을 맞춘다. 디지털 카메라와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나 이미지의 생산자가 될 수 있고 이를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서 이미지와 사람들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총감독의 기획의도다. 31개국 134명의 작가가 만든 9,000여개 이상의 이미지들로 가득한 비엔날레전시관은 ‘이미지의 임시 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미국에서는 신디 셔먼, 앤디 워홀, 스탠 밴더비크, 크리스토퍼 윌리엄스, 마이크 켈리, 워커 에반스, 칼 앤드리, 모턴 바틀릿, 라이언 트리카틴, 엘리옷 포터, 세스 프라이스, 폴 매카시, 브루스 나우먼, 존 밀러, 맷 멀리컨, 제프 쿤스 등 약 40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신디 셔먼·앤디 워홀 등 이미지 작업 전시
이번 비엔날레는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포되며 변주되는지, 어떤 힘을 갖게 되는지 등을 보여주는 5개의 전시실로 구성됐다. 알래스카 말라뮤트 동호회 등 다양한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의 모습을 찍은 김상길의 ‘오프라인 동호회’ 연작으로 시작되는 1전시실은 갖가지 포즈를 취하는 이미지와 이미지를 통해 구축된 자아를 소재로 한다.
이탈리아 작가 프랑코 바카리는 1972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이 벽에 당신의 흔적을 사진으로 남기시오’를 다시 내놨다. 관람객이 전시장에 설치된 즉석 사진 부스에서 사진을 찍고 인화된 즉석사진을 전시장 벽에 붙이도록 한 작업은 관객이 이미지의 제작과 전시까지 모두 참여함으로써 완성된다.
사진작가 워커 에반스의 사진을 살짝 비틀어 복제한 미국작가 셰리 래빈의 ‘워커 에반스를 따라서’나 앤디 워홀의 ‘꽃’(Flowers)을 워홀의 기법대로 복제한 일레인 스터트번트의 ‘워홀 플라워’는 이미지 복제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영웅과 순교자를 주제로 한 이미지를 모은 3전시실에서는 대지주에게 착취당하는 중국 소작농민들의 모습을 100여개의 실물 크기 조각상으로 재현한 ‘렌트 컬렉션 코트야드’에 큰 관심이 쏠렸다. 1965년부터 1974~1978년 제작된 이 작품은 중국 문화 혁명의 토대가 된 이미지로, 중국 밖에서는 이번에 처음 전시된다.
최병수의 이한열 걸개그림도 역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불씨가 됐다. 쓰러진 이한열의 모습을 담은 대형 걸개그림은 당시 경찰에 의해 칼로 잘렸지만, 다시 복원됐고 이번 비엔날레에선 당시 장례식 때처럼 추모객들을 인도하는 검은 트럭 위에 설치돼 전시된다.
독일 작가 구스타프 메츠거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관련된 연작 ‘역사적 사진’을 내놨다. 방수천으로 덮여 있거나 거적으로 가려놓은 사진들은 관객이 직접 천 아래로 기어들어가거나 거적을 뒤집어 써야 볼 수 있다. 1938년 오스트리아와 독일 합병 당시 기어다니면서 도시 거리를 닦도록 강요당했던 오스트리아 유대인의 기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한 작품이다.
4전시실은 종교적인 형상이나 우상의 느낌이 드는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4전시실의 핵심 전시작은 독일의 큐레이터이자 컬렉터인 이데사 헨델레스의 ‘테디베어 프로젝트’로, 테디베어를 안은 사람들을 찍은 3,000여 장의 사진과 실물 테디베어들이 벽의 빈틈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전시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우리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신하는 우상이나 대용품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극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광주가 갖는 특수한 역사성에 주목한 작품도 있다.
크로아티아 작가 산야 이베코비츠의 작품 ‘바리케이드 위에서’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채 조각처럼 정지 자세를 취한 사람들이 무대 위에 앉아 나지막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읊조린다. 이들을 둘러싼 벽에는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작가는 이들의 눈을 모두 감겨줌으로써 마지막 안식을 취하도록 했다.
여러모로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일반적인 비엔날레와 다른 점이 많다. 비엔날레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묘하고 장대한 설치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사진과 영상이 그 자리에 빼곡히 들어찼다.
또 비엔날레가 기본적으로 첨단의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1901년 처음 제작되기 시작한 작품을 포함, 구작이 대거 포함된 것도 이번 비엔날레의 특징 중 하나다.
지오니 총감독은 “이번 비엔날레를 트렌드 탐색이나 유명 인사들의 목록이 아닌 다른 뭔가로 바꾸고자 했다”며 “주제가 있는 전시회, 혹은 더 그럴 듯한 표현으로는 임시 박물관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과거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비엔날레에 국내 미술계 관계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전시장을 둘러본 김홍희 경기도미술관 관장은 “대중적으로 친근한 주제였고 전시방식도 현대적이라 누구나 쉽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전시”라며 “스펙터클을 강조하는 비엔날레의 관행을 넘어 새로운 비엔날레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미술 평론가 임근준 씨는 “완성도는 그동안의 광주비엔날레 중 가장 뛰어났던 것 같다”며 “특히 공간 편집이 뛰어나 마치 한 편의 잡지를 보는 듯 정리가 잘 돼 있다”고 말했으며 미술평론가 반이정씨도 “어깨에 힘을 뺀 전시”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연합>
현대미술의 축제 ‘2010 광주비엔날레’가 66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감독이 취재진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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