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미국에 온 후 가능하면 미국인들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한국 분을 만나면 미국의 전반적인 것에 관해 물어본다. 문화는 한 국가와 민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현듯 미국도 우리나라 단군신화처럼 그런 신화(神話)를 가지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문화를 이해하기에 앞서 신화를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미국에 신화가 있다면 미국인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우리나라 민족성을 규정하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다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의 민족성을 규정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인을 ‘고추장을 먹어 화끈하다’, ‘고추를 다른 것도 아닌 고추장에 찍어 먹는 독한민족이다’, ‘성격이 급하다’, ‘냄비처럼 확 달아오르고는 금방 식어버린다’ 등 다양하게 말한다. 이처럼 한 민족의 민족성을 한 단어로 규정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지만 굳이 필자에게 한국인의 민족성을 한 단어로 규정하라고 한다면 “악착같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필자가 미국에 온 후 초기 이민시절 배를 타고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부터 비교적 최근에 정착한 사람까지 다양한 한국분들을 만나 보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온화한 미소에다 미국식의 젠틀(gentle)함이 온 몸에서 배어난다. 그렇지만 그 뒷면에 고국을 떠나 먼 이국땅에서 끈질긴 집념과 철저하게 노력하는 성실함으로 성공한 또 성공하려는 그런 강한 기운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알려진 대로 미국인의 선조는 1620년 종교의 자유를 위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필그림(Pilgrim, 순례자)이라는게 역사적 상식이다. 따라서 미국은 그리스, 로마신화처럼 “신성한 역사를 이야기하며, 태초의 원시시대, 전설의 시기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언급하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신화보다는 “살아있는 신화(living myth)”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종교학, 신화학 분야에서 20세기 최고의 학자였던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살아있는 신화의 의미를 “인간의 행위를 위한 모델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또한 그것을 통하여 이 살아있는 신화는 존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고 언급하였다. 즉 여기서 엘리아데가 말하는 살아있는 신화는 “실질적인 역사(real history)”인 것이다. 엘리아데의 정의가 다소 어렵지만 이 정의에 그냥 쉽게 단군신화를 주입해 설명해보면 다음과 같다. 즉 단군신화는 ‘한국인이 행동하는데 지속적인 모델이 되고, 또한 그 모델을 통하여 단군신화는 한국인들의 존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엘리아데가 언급하는 것처럼, “신화라는 단어를 정확한 의미로 개념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또 그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간단하게 말해 “궁극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문학에서 ‘아버지의 신화’, ‘어머니의 신화’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어떤 문학작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역을 맡은 작중인물이 보편성을 획득하여 ‘궁극적인 무엇’으로 간주된다는 의미이다. 더 쉽게 설명해보면, 1980-90년대 방영된 TV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최불암, 김혜자씨를 한국의 아버지, 어머니상이라고도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신화, 어머니의 신화이다. 즉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은 그들을 궁극적인 무엇 즉 한국의 대표적인 아버지와 어머니, 다시 말해 신화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미국의 살아있는 신화 즉 실질적인 역사를 살펴보면 그 기반에 미국 건국의 3대 정신 <청교도 정신, 개척자 정신, 실용주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즉 미국의 3대 정신은 ‘미국인들의 사상과 의식 속에 뿌리깊이 존재하고 있으면서 이 정신이 미국인들이 행동하는데 지속적인 모델이 되고 또 그 모델을 통해서 이 정신은 미국인들의 존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3대 정신은, 우리나라 단군신화처럼, 미국인들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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