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실시된 5개주 예선에 대한 워싱턴포스트의 승자와 패자 리스트엔 존 매케인이 2번 올랐다. 빈틈없는 선거 전략으로 압승을 거둔 ‘매케인 캠페인 팀’이 승자에 오른 반면 그 전략의 일환으로 휴지처럼 구겨 버려진 ‘매케인 브랜드’가 패자로 지목된 것이다.
매케인은 이날 애리조나주 연방상원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6선 연방하원의원 출신의 극우보수파 J.D. 헤이워스를 56% 대 32%로 누르고 승리했다. 대선 후보였던 지명도로, 자기의 텃밭에서 거둔 압승이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그가 승리스피치에서 밝혔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어렵고, 힘들게 싸웠던” 선거전이었다.
정치환경 자체가 불리했다. 공화당내에서 한번도 보수이념의 적자로 인정받아 보지 못한 매케인에겐 티파티의 부상, 현직에 대한 반감 만연 등 모든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티파티 후보’를 자처한 헤이워스는 출마선언 전부터 지지율 2% 포인트 격차로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지난 어떤 선거 때보다 위기감을 느낀 매케인 팀은 초반부터 진지하게, 빈틈없이, 강력하게 대응했다. 4선 현역이 언더독처럼 뛰었다. 이번 예선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성공적인 캠페인의 하나로 평가받는 매케인 팀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였다 : 첫째는 네거티브도 불사하는 상대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 둘째는 매케인의 확실한 보수화. 그리고 이 두 가지의 홍보를 지원할 막대한 선거자금, 매케인은 이번 예선에 2,1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헤이워스 선거자금의 7배, 매케인 자신의 지난 4번 상원 예선 비용을 다 합한 것보다 많은 액수다.
운이 좋았다고 할까, 헤이워스는 너무 흠집이 많은 후보였다. 하원의원시절 부정로비 스캔들에 연루되었던 그는 ‘참신한 아웃사이더’가 아니었다. 2008년 대선의 러닝메이트였던 새라 페일린을 동원해 헤이워스의 티파티 바람을 잠재웠고 값비싼 TV광고를 통해 연일 ‘부패하고, 멍청하고, 무능한’ 헤이워스 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효과는 확실했다. 선거 한 달 전부터 압승의 가능성은 여론조사를 통해 나타났다. 자금이 바닥난 헤이워스는 맥을 못 췄고 돈의 힘은 대단했다. 그러나 많이 들어간 것은 돈 뿐이 아니었다.
승리를 위해 치른 값비싼 대가는 또 있었다. 매케인 자신의 정치적 변신이었다.
30년을 바라보는 의정생활 내내 매케인은 ‘뚝심 있는 중도파’로 통해왔다. 당론에 맹종하지 않고 소신껏 행동하는 무소속 정치가를 뜻하는 ‘매브릭’은 자타가 인정해온 그의 브랜드였다.
그는 ‘후안’ 매케인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친이민적이었다. 대선 출마 이전부터 한인사회가 매케인이라는 이름에 친숙해진 것도 그가 추진한 포괄적 이민개혁안을 통해서였다. 기후변화에서 선거자금 규제, 동성애자 차별금지에 이르기까지 진보정책 추진에도 ‘벽장 속 민주당원’으로 불리는 것에 개의치 않고 초당적 합의에 앞장 서 왔다.
그랬던 그가 이번 예선에 돌입하면서 안면을 ‘확’ 바꾸었다.
‘인도적 포괄적’ 이민법안의 선두기수였던 그가 ‘반인도적, 비상식적, 악의적’ 애리조나 이민단속강화법에 공개지지를 천명하는가 하면, 2008년 대선 공화후보 공개토론에서 “불법이민도 하나님의 자녀”라며 반이민 극언을 쏟아내던 다른 후보들을 질책했던 그가 지난 몇 달 “불법이민은 마약밀매, 주택침입, 살인 등 애리조나 범죄의 원인”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불과 3년전 국경 장벽은 ‘비효과적이고 불필요한’ 이민정책이라고 반대했던 그가 요즘엔 장벽 설치를 끝내고 국경강화가 완료될 때까진 어떤 이민정책도 절대 반대한다는 선언을 거듭한다.
4년전 스스로 주장했던 군의 동성애자 차별정책 폐지는 필리버스터를 동원해서라도 막겠다고 공약했고 자신이 제안했던 기후변화 법안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 한다.
이토록 완벽한 변신에 지지자, 반대자 할 것 없이 어안이 벙벙해 묻고 있다 : “저 매케인이 그 매케인 맞아?”
미디어의 집중포격도 잇달았다. 타임은 “영혼을 악마에게 판 파우스트의 거래”에 비유했고 뉴욕타임스는 “돌아오라, 매케인”을 촉구했으며 슬레이트는 지켜보기 괴로운 “가장 슬픈 상원의원”이라고 개탄했다.
가장 실망한 그룹은 이민단체들이다. 매케인 같은 공화당 중도파 원로의 도움 없이는 포괄적 이민개혁법 실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 이겨야할 게임인 선거가 끝났으니 ‘매브릭’ 매케인이 돌아올 것”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보수지역 애리조나에서의 공화당 경선 승리는 이변이 없는 한 본선 승리를 의미한다. 내년 1월 매케인은 5선 상원의원으로 무난히 워싱턴에 재입성할 것이다. 오는 일요일로 74세가 되는 그에겐 어쩌면 정치생활의 마지막 챕터가 될 수도 있다.
날로 양극화되어가는 상원에는 그가 앞장 서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공화당에 가득한 극우보수가 아닌 합리적 중도인 ‘옛 매케인’을 그리워하는 까닭이다. 그가, 한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친이민’ 정계 원로의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박 록/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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