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보 특별후원·UCLA 파울러 뮤지엄 ‘한국도예·나무꼭두전’
나무꼭두와 도자기가 한 전시장에서 만나니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한 세기 전 상여 나갈 때 동행했던 나무꼭두들과, 한국의 흙과 불로 빚어진 도예작품들은 파울러 뮤지엄 전시장 안에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태평양을 건너 UCLA 대학 박물관에 전시된 감격을 이야기하는 걸까, 아니면 수천년 한민족의 정서가 빚어낸 ‘현대 속의 전통’을 자랑하는 것일까. 아무튼 서로 상관없이 보이던 꼭두와 도자기는 함께 놓이자 더욱 생명력을 발하고 정서적 동질성을 보이면서 서로를 빛내주는 시너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정숙희 기자>
전통과 현대 잇는 도자·한민족 정서 담긴 꼭두 한자리에
지난 22일 본보 특별후원으로 개막된 ‘도자 속의 일상: 현대한국작가 5인전’(Life in Ceramics: Five Contemporary Korean Artists)과 ‘한국의 나무꼭두-또 다른 여행길의 동반자’(Korean Funerary Figures: Companions for the Journey to the Other World)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전시회다.
‘도자 속의 일상’이란 제목처럼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도예품이면서 현대적 디자인 속에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작품들은 그저 보기만 해도 친숙하고 다정하다. 또한 실제로 상여 나갈 때 사용됐던 닳고 낡고 색 바랜 나무꼭두들은 우리만의 색, 우리만의 소박한 형태를 하고 익살과 해학까지 곁들인 모양들이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얼마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는지 가슴이 다 저려온다. 결국은 모두 우리나라의 흙과 나무 아닌가.
해외에서 참으로 보기 힘든 두 전시회가 UCLA 파울러 뮤지엄에서 함께 열리게 된 처음 동기는 나무꼭두 미국 대학 순회전의 마지막 투어를 파울러 뮤지엄이 유치한 데서 시작됐다. 로이 해밀턴 수석 큐레이터는 이를 계기로 좀 더 특별한 한국 관련 전시를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나무로 깎아 만든 19세기 꼭두와는 완전히 다른 재료와 형태를 가진 한국 미술품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열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UCLA 한국 미술사 교수이며 LACMA 큐레이터를 역임한 버글린드 융만 교수에게 전시기획을 의뢰했고, 융만 교수는 전통과 현대의 예술이 일상생활 속에 가장 잘 녹아있는 도예전을 만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두 전시의 오프닝은 대성황이었다. 22일 정오부터 몰려든 관객들은 2시 김옥랑 꼭두박물관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2시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융만 교수와 작가들(김익영, 이인진)의 대화, 4시 잔디밭 광장에서 열린 퓨전국악팀 ‘예락’의 연주, 4시30분 VIP 오프닝 리셉션에 이르기까지 수백명이 참석해 한국 예술품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옥랑 관장은 이날 관람객들에게 “꼭두는 망자가 집에서 무덤까지 가는 길에 동행했던 물건”이라고 소개하고, 한국 사람들조차 꼭두에 대해 전혀 모르던 1970년대 초 이를 발견하고 모으기 시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 관장은 “17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방황하다가 청계천 5가 골동품 상점에서 구석에 버려지다시피 놓여 있는 꼭두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그때부터 수집하기 시작했다”며 그렇게 모은 꼭두가 현재 2만점이 넘어 지난 4월 동숭아트센터에 꼭두박물관을 개관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지난 40년 동안 수집만 한 것이 아니라 잡지 발간, 연극, 영화, 아카데미, 각종 강연을 통해 꼭두 살리기 작업을 펼쳐온 김 관장은 “꼭두의 전시뿐 아니라 그 민중 문화정신을 보다 깊이 조명해 삶의 가치로 보편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열린 ‘도자 속의 일상’ 작가와의 대화에서는 이번 전시 오프닝 참가 차 미국에 온 김익영, 이인진 작가의 작업에 관한 설명과 함께 다른 어떤 나라보다 도자기를 중요한 예술로 대우하는 한국 도예의 특별함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가 오갔다.
“한국의 도예는 어느 나라의 세라믹 아트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한 융만 교수는 “특히 작가의 손길과 소성기법에서 오는 ‘즉흥성’과 그 결과 빚어지는 ‘불완전함’이 한국 도자기를 더욱 자연스럽고 생동감 넘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전시회 입장료는 무료이며 오픈 시간은 수~일요일 정오부터 오후 5시(목요일은 오후 8시)까지다.
문의 (310)825-4361
www.fowler.ucla.edu
버글린드 융만 교수(오른쪽)가 이인진(왼쪽), 김익영 작가와 함께 한국 도자기의 특별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왕휘진 기자>
전시회 오프닝 행사에서 김옥랑(오른쪽) 꼭두박물관장이 관람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왕휘진 기자>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을 하는 김익영의 도자조각 작품. 오각형 형태의 정원의자와 길고 각이 진 정원등이 우아하고 단순한 백자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박상혁 기자>
고려청자의 정제된 색감을 연상시키는 이영재의 작품. 독일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반복적이며 제의적인 111개의 사발 설치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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