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LA서 문학강연회’ 소설가 이문열
지난주 동서문화교류회 주최 강연회 차 LA를 방문한 소설가 이문열씨를 인터뷰했다. 이문열은 1979년 ‘사람의 아들’을 발표한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최고 인기를 누렸던 한국의 베스트셀러 작가다.
100만부 넘게 팔린 소설만 5권이 넘고 ‘삼국지’는 1,700만부가 팔렸으며, 수십권의 작품이 18개 국에 번역됐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보수 지식인으로서 신문의 칼럼, 기고, 발언 등이 진보 측 인사들과 충돌하면서 소위 ‘시대와의 불화’가 시작됐고, 그의 발언은 바로 뉴스가 될 정도로 논란의 복판에 서있다. 바로 이달 초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휴가 중 그와 만났다는 이야기가 온 신문에 도배를 했으니 조금 지나친 감도 없지 않다. 그래서일까.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내내 긴장과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책 장례식을 당한 후 지난 10년 간 언론과 안티들에게 얼마나 당했는지, 미국 땅에까지 와서 자기가 한 말이 또 어떻게 둔갑할지, 이 인터뷰가 어떤 기사가 되어 나올지, 몇 번이고 기자에게 묻고 확인하고도 의심스런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인터뷰는 또 왜 하는 건지, 사실 그것도 좀 묘했지만 말이다.
참여문학이 정치로 과장·왜곡된듯 껍데기에만 치중하는 세태 안타까워
-한국의 수많은 작가 중에서 유독 발언마다 논란이 된다.
▲너무 호전적 발언인지도 모르겠는데, 순수한 관심도 있지만 집단적인 이용이 있다. 내가 말한 대로가 아니라 항상 비틀어지거나, 과장되거나 욕되게, 나한테 좋지 않은 내용으로 확대되고 변해서 나온다는 것이다.
-누가 왜 그렇게 하는 것인가.
▲나의 안티세력이다. 나는 10년 가까이 아직도 피해의식에 젖어 있다. 여기에 관해서는 나중에 책을 한 권 내도 될 만큼 내 발언이 원래 뜻과 다르게, 희한하게 바뀌어 사람을 괴물로 만들곤 했다. 요즘은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악의가 가신 것 같지는 않다.
-문학인으로서 정치 주변에 가까이 가서 그런 것 아닌가.
▲지난 10년간 집중적으로 덮어씌운 것이 그것이다. 나는 33년간 작가로서 80권의 책을 쓰고 활동과 상벌 관계도 많았다. 그런데 인터넷에 나오는 것을 보면 작가로서의 나는 되도록 지워버리고 7년 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만 항상 제일 앞에 나와 있다. 그 10년 동안 책을 열댓권을 썼는데 그건 다 없애버리고…
-정치 주변에 안 가면 되지 않나.
▲그런데 그게 약이 오른 게, 지금도 그렇고 예전에도 그랬고 특히 1980~90년대에는 문학이 정치 중심으로 이뤄졌다. 소위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라 했고, 참여하는 것이 문학의 제1 대의였다. 그런데 자기들이 하면 로맨스고, 내가 하면 스캔들인 거다.
-그래도 어떤 부분에서는 본인의 책임이 있지 않을까.
▲그 책임의 인과관계가 과장돼 있다는 것이다. 정치와 연관된 거라면 2003년 1월1일부터 3월15일까지 75일 동안 직접적인 정치인도 아니고, 공천심사위원 15명 중 1명으로 일한 것뿐인데 이걸 끊임없이 반복하고 확대 재생산하며 정치했다고 하는 것이다. 한번 낙인찍히면 교정이 안 된다. 나는 구제받을 수 없는 친미주의자, 아니면 격렬한 반공주의자로 찍혀있다.
-반미에 관해 많은 한국인이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 반미하면서도 미국 시민권을 원하고, 동시에 미주 동포를 무시한다.
▲맞다. 한국의 반미는 굉장히 이중적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나쁘게 말하면 교활해졌고 좋게 말하면 세련돼졌다. 행동도 그렇고, 가치판단의 잣대가 이중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또한 의사소통과 전달방법이 옛날과 많이 달라져서 속도가 빠르고, 이합집산이 빠르고,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힘이 빠르다. 이를 이용해 ‘민족주의 성감대’를 자극하면 어떤 젊은이들은 파블로프의 개가 반응하듯 무조건 따라간다. 이것을 필요할 때 스포츠 국수주의에 적용하기도 하고 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라지만 아직도 미국이 세계의 중심축이다. 미국은 지금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대통령이 이끌고 있는데 역사 속에서 그를 어떻게 평가하나.
▲글쎄… 그 사람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미주동포를 비롯해 해외 한인의 숫자가 크게 증가했다. 이들에 대한 생각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이제 거리는 무의미하고, 나와 같은 시간대에서 한국 소식을 알고 정보를 갖는 것 같다. 그러나 정보라는 게 언제나 굴절되기도 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정보에 대한 시차와 오해가 있다면 풀었으면 좋겠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은 어떤가.
▲동인문학상 심사를 위해 매달 7명이 모여서 그 달 나온 작품들을 검토한다. 여기서 후보작을 뽑아 놓았다가 10월에 압축하는 것이다. 그렇게 젊은이들의 작품을 읽고 경향을 알게 되는데 확실히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장르라 하긴 뭣하지만 인터넷 글쓰기의 특별한 흐름을 갖고 있다. 또 실시간 소통하는 도구들의 사용을 보면서 인터넷보다 더 핫한 트위터 글쓰기가 생겨날 수도 있고, 또는 내 짐작밖의 세계가 될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로서 요즘 관심 가는 주제나 화두가 있나.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시대 해석과 연관된 것이다. 내가 사는 시대를 해석하는 것, 특히 80년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마음에 걸린다. 다른 하나는 나이 먹고 늙어가는 만큼 그것이 얹힌 글을 쓰고 싶다. 그것이 나름의 터득일 수도 있고 축적된 지혜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이 얹힌 글, 성숙해진 티가 나는 글을 써봤으면 싶다.
-그동안 축적된 지혜와 터득을 통해 주고 싶은 교훈이 있다면.
▲시대가 매체와 연관되는데, 요즘은 보이는 것, 껍데기, 표현된 것, 혹은 이미지가 세계를 지배하고 우리 인식을 지배한다. 옛날에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안 보이는 것들이었다. 소중하게 닦아오고 문화 축적해 온 것들은 무시되고, 젊은이들이 보이는 것에만 치중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글 정숙희 기자·사진 왕휘진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