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객 1900명과 선원 800명을 태우고 동 지중해 2500해리 (2880마일)를 11일간 돈 82천톤의 배는 다음 11일간 같은 수의 인원을 태우고 서 지중해 1700해리를 돌기 위해 어제 오후 4시 반경에 벌써 시비타벡치아(Civitavecchia) 항을 출발 했었다. 육로로는 불과 150마일도 안되고 바닷길은 더 가까울 텐데 왜 일찍 출발을 했나? 아마 타르키니아(Tarquinia)외는 현지관광 할 곳도
별로 없고 복잡한 항구의 정박비도 줄이고 오래 있을 필요가 없었을 테지.
오늘은 10월 7일 수요일이고 75F의 청명한 날이며 하루 해도 많이 짧아져 7시 25분에 뜨고 6시50분에 진다. 대부분의 승객이 동쪽의 프로렌스나 남쪽의 시에나나 San Gimignano를 구경 하기 때문에 배는 늦은 밤 8시에 출발 한단다.
리보르노(Livorno) 라는 항구는 산업, 상업, 관광, 문화 등이 발달되고 역사도 깊고 예술품의 보고인 투스카니 지방의 관문이며 이태리의 항구 중 바쁘기가 두번째란다. 16세기 이후로 개발된 이 도시는 2차대전때 폭격으로 피해가 컸으나 귀중한 그림을 포함한 예술품들은 대부분 건졌다고 한다. 프로렌스로 가기로 하고 아침 7시에 배가 도착 했지만 부두와 시내를 연결하는 셔틀 버스가 8시부터 다닌다기에 7시 40분경에 배에서 내렸다. 셔틀 버스 왕복표를 사고 바로옆에 있는 시내로 나와 기차역으로 걸어갔다. 폭격 받은 독일의 도시처럼 별로 고전적인 풍은 없어 보인다. 프로렌스 왕복 표를 사고 배에서 내려 한시간 반 정도도 안 걸려 농지와 습지 또 공장들이 계속 되는 평지를 지나 프로렌스역에 왔다. 사방에는 관광객이 많았으나 줄을 서 기다릴 정도는 아닐 것 같고 날씨도 덥지 않아 지도에 동그라미 친 곳들을 무난히 돌 것 같다.
이태리나 남부유럽 여행은 9, 10월이 제철 일듯 하다. 역에서 한15분 걸어 두오모 광장에 도착했고 릴리꽃으로 성 메리를 기린다는 13세기 말부터 150년에 걸쳐 지은 고딕(Gothic) 형 성당에 왔다. 아치가 많고 종탑이 있고 어렵게 지은 8각의 둥근 돔도 있는 프로렌스의 대표적인 성당이다. 19세기때 새로 입힌 성당 대리석 외벽의 색갈이 이태리 국기에 있는 색깔과 비슷했으나 돔의 색깔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육중하고 과하게 조각된 청동의 검은 문을 들어서면 넓게 확 트인 공간에 아치형의 천정과 기둥위의 천정 받침 아치들이 있고 다수의 스테인 된 창과 대형 시계도 보인다. 지하실의 묘지는 안 갔다.
십년전 한 무척 더운 날에 땀을 죽죽 흘리며 줄을 서서 좁디좁은 돌계단을 꼬리를 물고 오르며 16세기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이라는 돔의 천정화를 보고 오싹 했었다. 이번에도 다시 올라가 400년전 두 화가가 심혈을 기울려 그린 이 천정화를 차분 하게 보고 또 보았으나 전혀 두렵지가 않았다. 우리가 달라졌나? 돔 밖으로 나가 좁은 옥상을 돌며 프로렌스 전체를 조감하고 지도와 대조해
갈 곳의 위치와 규모를 알아 봤다.남쪽으로 내려와 광장(Signoria)에 왔고 넓게 퍼진 공간에는 르네상스 (Renaissance) 예술의 진원지답게 정교하고 아름답게 사실적으로 표현된 조각품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30세도 안된 젊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5메타가 넘는 청년 다윗의 석상이 있다. 대리석 진본을 120년전 이 도시에 있는 아카데미아 갤러리로 옮기면서 복사본을 세웠단다. 이 작품의 복사본은 사방에 있는 것 같고 미국의 어느 카지노 앞에서도 본 것도 같다.
말 타는 공작의 대형 청동상, 바다왕의 분수, 도나텔로(Donatello)의 작품 복사본들인 사자상과 성서 유딧 13장을 형상화한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징악의 허큐레스와 카커스, 이방 여인의 납치 등 많은 조각상들을 보며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말엽까지 이 지방이 배출한 조각가들의 우수성에 찬사를 보냈다. 한쪽이 트인 아치형으로 꾸민 복도(Lanzi) 에 이 조각들이 서 있었다. 바로 옆에는 13세기 초엽부터 다양하게 공공 청사로 사용된 톱니 모양의 성곽으로 장식된 베치오(Vecchio) 궁과 90메타의 높은 시계탑이 있고 외부의 모양은 훌륭했다. 내부는 텅 비어 있어도 르네상스 당대의 유명 화가들인 다빈치(da Vince), 미켈란젤로(Michelangelo), 바사리(Vasari) 등을 거치며 벽화와 천정화 등의 좋은 장식이 남아 있었다.
강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제일 오래된 유명한 우피치(Uffizi) 미술관이 있고 이를 지났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그 많은 조각품과 13 -18세기의 귀중한 미술품들을 본다고 암표를 사고 반나절을 보냈다. 로마 가는 기차를 놓칠세라 다른 곳은 들러지도 못하고 역으로 빨리 걸어가던 생각이 났다.물고기도 못 살 것 같이 탁한 강(Arno)을 조금 따라오면 1300년대에 지은 베치오(Vecchio) 돌다리가 있고 그위 양쪽으로 금은방 등 보석상이 즐비하게 서 있다. 옛날에는 푸줏간이 다 차지해 살점만 팔고 나머지는 편하게 강에 다 버렸다는데, 이제는 골치 앓던 보석상이 강도를 피한다며 다 차지하고 있단다. 옛날은 궁이었고 지금은 미술관인 피티(Pitti) 라는 16세기의 화려한 건물이 얼마 안 떨어져 있다지만 시간도 없고 너무 비슷한 초상화와 풍경의 그림들이라 이젠
그만 봐도 미련이 없을 듯 하다.
강을 따라 동쪽으로 성당(Croce) 광장으로 왔다. 이 고딕형 홀리 크로스(Holy Cross) 성당과 그 안의 채플 벽에는 호화롭게 꾸며놓은 사회 공헌도가 많은 200기가 넘는 유명인의 무덤이나 추모 조각과 그림이 있다. 그중에는 단테, 미켈란제로, 갈릴리, 알피에리, 로시니, 말코니, 재미교포 펠미 등 귀에 익은 이름도 있었다. 나폴레옹의 형수며 스페인과 나폴리왕국의 왕비였던 쥬리 보나파트도 여기에 묻혔단다. 성당 앞 광장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둘이서 그들의 업적을 말해 본다. 다시 두오모 쪽으로 오며 옛날에는 감옥이었고 지금은 조각, 보석, 무기 등을 모아 놓은 박물관인 궁(Bagello)을 지났다. 이 톱니형의 궁 안에는 이태리 르네상스 조각의 걸작품으로 도나텔로의 다윗 청동상도 있다는데, 프로렌스는 다윗 나머지 이태리는 골리아스로 상징해 제작 되었단다.
우중충한 단테의 집과 박물관도 지나 왔다. 두시간 안으로 기차역에 가야 하는지라 걸음을 재촉해 아까 안 본 두오모 성당의 세례당(Battistero) 세 출입문을 보고 그위의 조각들도 본다. 그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3세기에 걸쳐 프로렌스에 지대한 공헌을 한 메디치가의 예배당이 있고 이 돔형의 팔각 “군주의 채플”을 늘려 옆으로 지은 로렌조(Lorenzo) 성당이 있다. 메디치가의 대대손손 군주들이 묻혀 있는 이 채플에 미켈란제로가 군주들의 조각상들을 제작해 안치 했고, 천정은 성화들로 제단은 대형촛대들로 장식 되었으며 전체 내부의 벽은 보석과 어두운 색깔의 모자이크로 호화롭게 장식 되어 있었다.
로렌조 성당에는 미켈란제로가 꾸몄다는 도서관도 있다는데 마냥 다 볼 수도 없고 머리만 들이 밀고는 나왔다. 지도에 아직 동그라미로 남아 있는 메디치 리카르디(Medici Riccardi) 궁과 아카데미아 화랑에도 가보고싶지만 얼마 남지 않은 기차 시간이 피곤한 다리를 끌고 다니는 나를 살리는 것 같다.
구 시가지에서 성당보다 더 붐비는 곳은 역시 시장통이다. 시장이라도 어떤 곳은 둥근 기둥과 높은 아치형의 천정과 벽면 깊숙이 세워놓은 석상 등 처음 지었을 때는 꽤 호화로운 곳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안에 벌여 놓은 자판들은 남대문 시장보다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기차역에서 멀지 않는 곳에 로렌조(Lorenzo) 시장이 있고 건물 안에도, 튼튼한 대형 천막 안에도, 길 양옆으로도 상점이 늘어서 있었다. 이 지방에서 나는 식료, 과일, 채소, 정육, 와인, 치스, 기름, 생선 등도 팔았고 마카로니치스 햄버거 같은 것도 이 지방의 음식이라며 팔았다. 일본인이 경영 하는 선물 가계도 있었다. 값은 유로로 보고 달러로 환산하니 미국보다 훨씬 비싼 것 같다. 피혁제품, 수예품, 실크류 등
이 좋다고 하며 이 시장에는 이들 상품들이 많았다. 프로렌스는 분명히 그 인구에 비해 세계 어느 곳 보다 예술품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며 그 역사와 예술성도 뛰어 난다고 생각된다.
문화 체험을 위한 관광객은 유럽에서 두 세번째로 많은 곳 이라고 하는데 사실 일것 같다. 옆에 있는 역에서 피사행 기차를 타자 5분도 안돼 출발 했으며 5시경에 피사역에 도착 했다. 역사 옆에 있는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를 얻고 사탑이 있는 성 메리 성당을 향해 빨리 걸었다.고적들이 가득찬 것 같은 우중충한 시내를 거쳐 아노강을 따라 가다 다리를 건너고 왼쪽의 대학교문을 지나서 사탑과 성 메리 성당이 있는 넓은 잔디 광장에 왔다. 10년 전에는 사탑을 안
정시킨다고 몇 가닥의 쇠줄로 이 거대한 탑을 묶어 두고 올라간 쪽 기반 밑의 흙을 파 내 탑을 조금 세워 안정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안정화 작업이 성공해 지금은 7층 옥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었다.
12,3세기에 대리석을 깎아 지반과 기둥 등을 세우고 이 눈부신 원추의 종탑을 세운 피사의 석공과 장인들이 존경스럽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는 장인정신이 이 투스카니 지방에는 배여 있고 그래서 그 많은 예술문화의 유산을 남겼나 보다. 성당이나 옆의 세례당 안은 보지 않고 경내를 나왔다. 기차역으로 다시 오면서 높다랗게 쌓은 강 양쪽의 벽을 보며 바다가 멀지 않는 저지대인 이곳은 프로렌스보다 홍수로 혼이 더 났으리라 여겼다. 강벽에 붙어 있는 조그만한 고딕형 마리아 성당 지붕은 예수님과 열두 사도들의 장난감 같은 석상들을 이고 있었고, 희고 분홍색이 들어간 이 대리석 건물은 노란 벽에 주황색 지붕을 얹은 주변의 건물들과 대조가 되어 눈에 쉽게 들어온다.
6시 반에 출발하는 리보르노(Livorno) 가는 기차는 제시간에 역으로 들어 왔다.먼 현지 여행을 둘이서만 다니며 또 빠듯하게 짜놓은 스케줄이지마는 별 문제가 없어 다행스럽다. 7시 넘어 부두로 가는 버스를 탔고 7시 반경에 배를 탔으며 8시 정각에 배는 몬테카를로(Monte Carlo)를 향해 출발 하고 있었다.
프로렌스 시그노리아 광장안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앙에 청년 다윗의 석상이 보인다.
피사의 아노강 주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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