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나 은은한 한국의 아름다움
전통과 현대 잇는 350여 작품 전시
UCLA 파울러 뮤지엄(Fowler Museum at UCLA)에서 본보 특별후원으로 개막되는 한국 도예전과 나무꼭두 전시회가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도자 속의 삶: 현대한국작가 5인전’(Life in Ceramics: Five Contemporary Korean Artists)이란 제목으로 열리는 도예전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라믹 아티스트 김익영, 윤광조, 이강효, 이인진, 이영재 등 5명의 작품 350여점을 소개하는 대형 기획전이다. 버글린드 융만 UCLA 한국미술사 교수(전 LA카운티미술관 큐레이터)가 큐레이트 하고, 코리아 파운데이션의 지원으로 열리는 이 전시회는 22일 정오 개막되며 이날 오후 2시30분에는 융만 교수가 작가 이인진, 김익영과 대화를 갖는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한국현대도예의 최정상에 있는 다섯 작가의 작품세계를 정리했다.
전시회 안내
▲도자 속의 삶: 현대한국작가 5인전: 2010년 8월22일~2011년 2월13일
▲한국의 나무 꼭두: 또 다른 여행길의 동반자: 2010년 8월22일~11월28일
▲파울러 뮤지엄 위치: UCLA 노스 캠퍼스 내 로이스 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며 선셋(Sunset) 블러버드와 웨스트우드(Westwood) 플라자 교차로에서 UCLA 캠퍼스로 진입해 파킹랏 4번에 주차하면 된다.
▲입장료: 무료
▲개장시간: 수~일요일 정오부터 오후 5시(목요일은 오후 8시)까지, 월·화요일은 휴관
▲문의: (310)825-4361 www.fowler.ucla.edu
※부장품 전시회 ‘한국의 나무 꼭두: 또 다른 여행길의 동반자’는 다음 주에 소개한다.
김익영
우아함 직선미 강조 사면체 백자 유명
김익영은 조선백자를 현대적으로 해석해낸 한국 현대도예의 1세대 작가로 꼽힌다.
1960년부터 무려 50년 동안 기술적으로 최고 수준이 요구되는 순도 높은 백자 창조의 외길을 달려온 김익영은 소박하고 청아한 한국의 정서를 담는 그릇, 전통과 현대가 지나침 없이 적절히 융화되어 우리 곁에 두고 싶은 생활 도자기들을 창조해 왔다.
김익영의 도예가 지닌 우아함과 특별함은 곡선보다 직선을 많이 사용하는 샤프한 조형 감각이다. 둥근 형태에서 각진 사면체로의 전환하는 방법을 통해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도예의 한계에서 벗어나 현대성과 세련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됐다.
그는 고운 선을 지닌 고려청자보다는 형태가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을 동시에 지닌 조선시대 제기에서 발견한 독특한 형태미를 발전시켜 사면체 형태의 백자를 만들었으며, 1965년 첫 개인전에서 이를 소개한 후 그녀만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백자라는 매체의 고급한 이지주의에다 세련된 추상성과 생활주의를 융화시킴으로써 실내외에서 의자로도 사용할 수 있는 기능적이고 조각적 세라믹 아트를 창조했다.
1935 함경북도 청진 출생으로 서울대 화공과를 졸업하고 부친의 권유로 서울대 대학원에서 요업공학을 전공했다.
평론가들은 그녀가 흙·물·불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재료의 특성을 연구하는 요업의 과학적 본질을 이해한 후에 동서양 도자기를 섭렵함으로써 ‘가장 전통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도예언어를 획득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뉴욕 알프레드 대학 요업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국립박물관에서 3년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백자에 대한 심미안을 쌓았으며 이후 한국, 미국, 일본 등지에서 수많은 초대전을 가졌다. 25년간 국민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4년 윤광조와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다.
영국 대영박물관과 빅토리아 & 앨버트 미술관, 디트로이트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김익영의 작품.
윤광조
자유롭고 투박한 분청사기 대표 작가
자유분방하고 투박한 맛, 세부에 얽매이지 않는 대범함과 조용한 파격, 불완전함 속에서 역동하는 생명력…
분청사기의 대가 윤광조의 작품은 벌거벗은 한국을 보여준다. 소박하나 거친 한국의 산세를 닮아있고, 이성적이기보다 직관적인 민족성, 따스한 정과 동질감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심성이 느껴진다.
표면에 나뭇가지, 지푸라기, 산, 강, 달, 바람을 품은 추상적 이미지를 넣거나 반야심경 등을 적어 넣기도 하는 그의 분청사기는 한국의 자연이 그렇듯 건강하고 순후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한다. 어설퍼 보이는 불완전함 속에 전통문화의 유전자에 녹아 있는 조형적 미감과 기가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한다.
분청사기는 화려하고 정제된 고려청자가 절제된 숭고미를 지닌 이조백자로 변천하는 과정에서 15~16세기에 나온 도예양식으로 흙의 선택이나 굽는 과정의 제약이 적기 때문에 표현이 보다 자유로운 특성을 지녔다. 윤광조는 20여년 전 도예작업에서 중요한 도구인 물레를 벗어던진 후 전통의 답습이 아닌 현대적 변형에 초점을 맞춘, 표현주의적인 요소가 극대화된 분청사기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1946년 함흥 출생인 윤광조는 홍익대 공예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한국문화공보부 추천으로 일본의 유명 도예지인 당진으로 유학 갔으나 일본의 기교적인 도예에 회의를 느끼고 돌아와 오히려 자연스럽고 소박하며 자유분방한 분청사기의 위대함을 발견하게 됐다.
2003년 이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비롯해 영국과 호주 등 국제 화단에서의 초대전을 통해 한국의 도예의 미를 알려온 그는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2008년에는 ‘한국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경암학술상 예술분야 수상자(상금 1억원)로 선정됐다. 그는 15년째 경주 도덕산 바람골, 휴대전화도 안 터지는 외진 작업실에서 조수도 두지 않고 홀로 작업하고 있다.
윤광조의 작품.
이강효
거칠고 남성적인 대형 옹기로 주목
‘옹기쟁이’ 이강효의 작품은 꾸밈없는 멋이 두드러진다. 그가 만든 그릇에는 탁월한 비례미와 세련되면서도 힘이 넘치는 선의 아름다움, 절제된 가운데 그만의 독특한 색감이 담겨 있다.
이강효는 거칠고 건강하며 남성적인 대형 옹기로 주목을 끌어왔다. 남다른 조형미를 가진 그의 항아리들은 철분 함량이 많은 검붉은 옹기토를 화장토(백토)로 분장한 다음 손가락을 이용해 그리는 자유로운 문양 표현으로 현대적이면서 친근감 있는 도예의 멋을 느끼게 한다.
1961년 인천 출생, 홍익대 미대 공예과를 졸업한 그는 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옹기의 제작 방법을 배우기 위해 경남 울주 원동 마을의 옹기막으로 들어갔다. 도예를 전공한 학생이 옹기막에 들어가 3년이나 머문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이었는데 그는 그 곳에서 옹기를 만드는 전래의 기법과 함께 작업장에 남은 재를 유약으로 사용하는 것 등 제도권 교육에서 배울 수 없던 소중한 것들을 체득해 나갔다. 코일링에 의한 타렴 기법을 주로 사용하는 그의 제작방식은 옹기의 기법을 따른 것이다.
조금 못나고 넉넉해서 겸손한 그의 옹기는 오래 곁에 두고 있어도 아름답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대담한 조형미가 주는 자유와 거칠게 손으로 그린 문양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흙의 짙은 빛깔은 대지가 가지는 원시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도 평가된다.
이강효는 2001년 미국 8개 대학을 돌며 가진 옹기 아메리칸 투어를 가졌는데, 웍샵에서 사람의 키를 넘는 큰 항아리를 제작하는 과정을 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여년 간 한국, 일본, 스위스 등지에서 수많은 개인전을 열어온 이강효의 작품은 대영박물관과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 프랑스 국립 도자기박물관 등지에 소장돼 있다.
이강효의 작품.
이영재
단순하지만 우아한 사발 111개 소개
이영재는 독일 퀼른 대성당에서도 그의 그릇이 미사용 성배로 사용될 만큼 유럽에서 대단한 명성을 갖고 있는 도예가다. 그녀는 철저한 장인정신과 도공의 자세로 30년이 넘도록 독일에서 한국 전통 그릇인 사발을 연구하고 실험해 한국 도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에 독일 바우하우스의 단순함과 실용성을 접목시킨 생활자기를 만들어냈다.
1,000번 이상의 유약 실험을 통해 태어난 은은한 도자기 빛깔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그녀의 예술철학은 단순하면서 우아한 생활 속의 자기, 예술에 일상을 담는 그릇을 구워냈다. 독일과 유럽, 미국, 일본의 상류층에는 이영재의 그릇을 지속적으로 사고 일상생활에서 식기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1951년 서울 생, 수도여사대 생활미술과를 졸업한 이영재는 1972년 독일로 갔다. 외국의 도자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딸의 소망에 어머니가 파독 간호사를 자원했다.
비스바덴 예술대학에서 도자기와 조각을, 하이델베르크에서 동양미술사와 중국학 등을 공부했으며 학교를 마치면서부터 개인 공방을 운영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1984년부터 87년까지 카셀대학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기도 했다.
1986년 그녀는 바우하우스 시대에 만들어진 에센의 유서 깊은 생활도자기 전문공방 ‘마르가레텐회에’(Margaretenhohe)의 공동책임자가 됐다. 1993년 공방의 단독 책임자가 됐으며 2006년엔 공방을 완전히 인수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예술성과 실용성이 조화가 된 독특한 디자인의 그의 도자기는 세계 각지로 수출되고 있다.
일본, 독일, 미국 등에서 수많은 전시를 개최해 왔으며 2001년 파리박람회 작품상을 비롯 디세너 도자기 부문 대상, 바바리안시 도예 부문 대상, 리하르트 밤피 젊은 도예가상, 프레흐너 문화재단 상 등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다.
그녀는 이번 전시에서 111개의 사발을 전시하는데 이것은 2006년 뮌헨의 현대미술관에서 1,111개의 사발을 바닥에 흩어놓고 전시해 극찬 받은 것을 소규모로 재현하는 것이다. 그녀는 퀼른 성당의 2층에서도 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사발을 전시한 바 있다.
이영재의 작품.
이인진
남가주 출신 ‘불의 도예가’
이인진은 남가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한국에서 전통자기를 배웠으며, 일본의 도기제작법을 사용해 작업하는 도예가다.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 때 미국에 온 그는 웨스트민스터 고교와 오렌지코스트 칼리지, 라구나비치 미술학교, 칼스테이트 풀러튼에서 수학했으며 후에 칼스테이트 롱비치에서도 공부했다. 대학 재학 중 이천의 한 도방에서 전통자기 제작을 연수하면서 흙과 도예에 매료된 그는 82년 홍익대 공예과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불의 도예가로 불리는 이인진은 1986년 일본 비젠의 후지와라 유 도방으로 연수를 떠나 장작불에 의한 다양한 발색과 형태의 기물을 만들어내는 기초를 쌓았다. 보통 도기를 구울 때는 초벌구이 한 다음 유약을 바르고 재벌구이 하는데 비젠에서는 초벌구이도 하지 않고 유약도 바르지 않은 기물을 7~10일 동안 소나무 장작으로 지핀 고화도의 불 속에 놓아둔다. 아무런 보호막 없이 놓인 기물은 온전히 불길을 흡수하여 불이 남긴 상흔을 무늬처럼 안고 태어난다. 비젠의 이처럼 독특한 도기 제작방법은 1,000년 전 신라 도공들이 일본에 전수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제 이인진에 의해 현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인진은 또한 일상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사용하는 일본 도공들의 라이프스타일에 감화돼 대중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식기들과 생활소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쓰임새가 다양한 그릇과 항아리는 물론 우유 따르는 저그, 도자기 와인 잔, 얼굴 모양의 도판, 익살스런 장식품 등 실용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불로 태어나는 이인진의 작품에는 원시적이고 천진한 예술성이 있다. 인위적인 문양 없이 불이 지나간 자리마다 남아 있는 흔적들은 어떤 추상화보다 감동적이며, 넉넉한 크기의 항아리로부터 엉뚱하고 작은 소품에 이르는 그의 작품엔 긍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다.
지난 20년간 홍익 미대 도예·유리과 부교수로 재직해 왔고 한국, 미국, 일본 등지에서 15회 이상 개인전을 가졌다. 국내 여러 미술관과 호주국립미술관, 대영박물관, 빅토리아 & 앨버트 미술관, 벨기에 왕립 마리몬트 박물관 등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인진의 작품.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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