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들아 잘 있었냐?” 퇴근하여 현관을 들어서는 남편의 첫 마디이다. 모르는 이들은 아마 손자나 늦둥이를 향한 인사인가 할 것이다. 하나뿐인 아들이 아직 미혼이므로 그럴 리는 없다. 남편을 알아본 것들이 벌써 난리법석이다. 첨벙하고 튀어 오르고 기척을 향해 몰려든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금붕어 다섯마리가 꼬리를 심하게 친다. 이끼 먹는 못난이 메기 두 마리도 벽을 타고 슬금슬금 다가온다. 주인을 알아보고 세레모니를 하는 듯하다. 물고기도 생각 없이 사는 게 아닌 모양이다.
남편은 먹이를 다 먹도록 물끄러미 바라본다. 붕어가 밥 먹는 소리가 사람 못지않게 시끄럽다. 유난히 식사시간에 쩝쩝거리는 소리에 민감한 남편이다. 함께 밥 먹는 이가 민망할 정도로 지적을 하곤 한다. 그런데 붕어의 입맛 다시는 소리엔 무척 관대하다. “그렇게 배가 고팠어?” 하며 어린아이 다루듯 안쓰러워하기까지 하니 말이다. 친절하기가 한량없고 부드럽기가 배(梨) 속 같다. 내 기억으론 마누라인 내게도 그렇게까지 상냥했던 적은 없는 듯하다. 붕어의 먹이도 가루로 된 것 과립으로 된 것을 섞어 먹이고, 물풀이나 조개를 넣어주는 등의 환경미화도 어항청소도 지극정성으로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 금붕어는 횟감으로 써도 될 만큼 튼실하다.
한 컵 분량의 강아지라느니, 횟감용 붕어라느니 엽기적인 농담을 하는 나는 동물에 별 관심이 없다. 그렇다면 식물엔 취미가 있는가 하면 그도 아니다. 가끔 상추 잎을 따러 나가거나 토마토나 고추를 밥상에 올리기 위해 수확하긴 해도 물을 주거나 잡초를 뽑지도 않는다. 상추 잎을 뜯어먹는 애벌레가 겨자를 싫어한다며 겨자즙을 스프레이 한다기에 부엌에서 겨자를 갖다 주긴 하였다. 하지만 텃밭의 관리도 남편의 몫이다.
별스럽지도 않은 이러한 일상의 조각들이 우리 삶의 풍경을 이룰 뿐만 아니라 삶의 지속성을 담보하고 있다. 그러나 낯선 것엔 불안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는 나는 애써 일을 만들지 않는다. 그저 무탈한 하루하루에 만족한다. 한 마디로 ‘게으르다’는 말을 이렇게 우회하여 말하는 자존심이라니.몇년 전 영국의 비비씨 방송에서 ‘How to be Happy’라는 것을 제작했다. 그걸 엮은 것이 ‘다큐멘터리.행복’이라는 책이다. 전문가 6인의 위원회가 연구한 친구, 돈, 일, 사람, 섹스, 가족, 자녀, 음식, 건강, 운동, 애완동물, 휴가, 공동체, 미소, 웃음, 영성, 나이 들기 등 17가지 분야에 걸친 행복 지침서이다. 저자들은 두 달만 이 단어에 관심을 갖고 살아보라고 권한다. 그러면 변화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일에서의 성공, 일확천금, 권력이나 명성처럼 거창한 것이 행복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진짜 행복은 가족, 공동체, 사람에 대한 신뢰, 스트레스가 적은 출퇴근 환경처럼 훨씬 단순한 것이다.
문제는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서 하염없이 게으를 수만은 없다는 것이 현대인의 비극이다. 느긋한 평온은 간데없고 모두가 허둥대고 서성거린다. 늘 가슴 한 쪽에 조바심이 있고 무언가에 쫓기듯 산다. 행복 헌장에 의하면 크고 의미 있는 일만 소중하게 여기지 말고, 사소한 일일망정 정성을 다하고 그것을 마음의 닻으로 삼아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한다. 예컨대 식물 기르기, TV 시청 줄이기, 낯선 사람에게 미소 짓기, 애완동물과 친하기 등만으로도 사람은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시아버님의 기일에 맞추어 한국에 나가 있는 동안 금붕어 먹이 주는 일을 대신했다. 텃밭도 내가 건사했다. 늘 보아왔던 풍경으로 인해 내 안에도 일종의 귀속감정이 생겼나보다. 남편이 하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일들을 옆에서 구경만 했을 뿐인데도 시나브로 각인이 되었는지 수월하게 감당했다. 금붕어는 내게도 점프를 하며 반가워했다. 사람을 아는 머리가 아니라 먹이를 아는 거였다. 후레이크를 듬뿍 주며 나도 말을 걸었다. “붕어야 많이 먹어” 한국 고추에게도 말을 걸었다. “애썼다. 너도 이민 왔구나?” 어느새 남편이 누리던 행복을 카피했다.
이 정 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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