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갖 수난 견디며 살아온 시실리인 발자취 살펴봐
왕궁 앞으로 다시 가 팜나무 그늘의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와 사온 감홍시로 점심을 잘 먹었다. 여기서 머미들을 모아둔 지하묘지(Cappuchin Catacombe)가 있다기에 가 보기로 했다. 좁고 형편없이 더러운 지름길을 걸어 16세기까지 사용한 공동묘지 옆에 있는 카타콤에 들어갔다. 로마의 카타콤은 초기 기독교도들의 옥사장이었지마는 여기서는 옆의 묘지가 부족 하여 신부나 힘깨나 쓰던 토후들만 머미가 되어 들어갔다고 한다.
어떤 머미는 옷도 갈아 입혔으나 어떤 머미는 월세를 못내서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고도 했다. 50년부터 400년이 된 것들이 몇 십줄씩 양 쪽 몇 칸의 선반에 잘 정돈 되어 있었고 뼈에 살가죽과 옷만 붙어 있으니 큰 머미도 내 옆을 지나가는 배불땡이 시실리인의 반의 반도 안되 보인다. 이번에는 가던 길을 피하고 조금 깨끗해 보이는 길을 따라 대로로 나와서 2,000년 역사를 지켜온 엠마누엘(Emanuele) 가의 입구인 승리문인 포르테 누오바(Porte Nuova_까지 왔다.번화한 팔러조(Palazzo Reale) 구역은 그린 지역으로 깨끗했고 여기서 맴돌다 보니 이곳에서 시작 하는 엠마누엘가를 병목처럼 막고 있는 이 협소한 승리문을 여러 번 지나게 된다. 새문이라고 하며 16세기 초엽에 지은 것으로 기독교의 로마왕이 튜니시아에 있던 오토만(Ottomans) 과의 전쟁에서 이긴 것을 자축해 지었단다.
아치형 탑 위에 지붕을 씌운, 차한대가 겨우 지나 갈수 있는 뾰족한 아랍식 건물의 문인데 매우 인상적이다. 이 문의 풍수가 안 좋았던지 준공 3년 후 다시 오토만과 싸워 대패 했단다. 아침에 본 팔레모 교회를 지나 해변을 향해 10여분 걸어오면 많은 유적과 중세의 교회 등 고풍의 건물들이 많이 모인 네 모퉁이의 사거리(Quattro Canti) 가 나온다. 옛날에는 이 네 모퉁이의 방언이 다 달랐고 서로 수화불통 했단다. 다른 종교를 인정 하지 않았던지 다른 족속을 경원시 했던지 좌우간 시실리 사람들은 마음들이 좁았는가 보다. 이 네거리의 동남쪽 모퉁이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것이 많았기에 이곳으로 왔다. 성당이나 유적지들의 이름이 너무 생소하고 또 길기도 해서 지도를 봐도 헷갈린다.
도시의 북쪽 해변가에 있는 높은 산 펠레그리노(Pellegrino)를 지도 북쪽에 맞추어 놓아도 길 따라 적혀 있는 깨알만한 길 이름을 매번 찾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쨌든 근방에는 마르토라나(Martorana)라는 12세기에 희랍인이 짓고 아랍인이 고치고 지금은 이태리안 그리크들이 쓰는 성당이 있고 외부에서 보면 많이 헐었어도 종탑도 있고 안은 비잔틴 스타일 이라고 하며 상당한 치장을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는 캐탈도(Cataldo) 라는 성당이 있고 이는 노르만들이 지은 대표적인 교회 건물이란다. 지붕위에 조그마한 세 개의 분홍색 돔들을 얹어 놓은 게 특이하게 보인다. 16세기에 개축된 이들 성당을 보며 바로크 아트라는 게 저런 것이로구나, 복잡한 치장으로 신이나 하나님의 눈에도 틀림없이 어지럽게 보일텐데 염려된다. 성당 안에는 돈 받는 수부는 있으나 중간에 쇠줄이 쳐진 것을 보면 예배는 없는 모양이다. 지천으로 늘려 있는 게 성당들인데 이곳에서는 입장료를 받는 게 본토와는 달랐다. 성당안의 치장을 보는 것이 벌써 취미가 되었나? 아직 취미가 아니라는 마나님을 달래 다른 성당 한곳만 더 가 보기로 하고 근방에 있는 카테리나(Caterina) 라는 성당에 갔다. 17세기초에 지은 이 거대한 성당은 외부는 비교적 간단한 선으로 처리 됐으나 지붕에는 대형 돔을 올리고 노랑 파란 색의 타일로 보기 좋게 꾸며 놓았다. 내부는 두 복도 옆으로 높이가 다른 대리석 기둥을 세우고 제단 천정 벽들도 다 조각 그림 모자이크 등으로 치장을 했으니 교회를 지나치게 장식한 것 같다. 이를 예술적으로만 보면 황홀 하다고나 할까?
교회옆 시청 청사 앞에 있는 잘 조각된 석상들이 둘러 서 있는 프레토리아(Pretoria) 이라는 분수대가 있었고, 얼마 안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성당 도미니코(Dominico)가 있었지마는 성당 앞의 높은 기둥과의 그에 붙은 조각들만 보고 성당 안은 안보기로 했다. 사진만 찍고는 또 걸었다.해변과 가까운 곳에 부치리아(Vucciria) 시장이 있었고 어물전, 과일상, 정육점, 잡화상 등도 있고 과일 같이 생선 종류도 많았다. ‘저 큰 낙지를 사면 소주와 고추장은 어디서 살고?’해변에는 700년이 된 스테리(Steri) 라는 궁이 있었는데 방위를 위한 성곽 같았으나 안에서는 왕을 배신하는 자들을 추달하고 고문하는 장소로 써 왔다고 한다. 툭 터진 팔러모만을 오른쪽에 두고 아침에 가던 길을 올라와 부두에 정박한 배에 다시 올랐다. 장장 8시간의 강행군이었으나 아프리카에도 가까운 지중해의 요지에 앉아 수난 속에서도 자기대로의 퓨전문화를 개척 하며 몇천 년을 살아온 사람들이 남겨 놓은 족적을 훑어볼 기회는 값진 것이었다.
서쪽 지중해를 돌고 온 뒤에도 이 항구에 다시 기항 한다니 그때는 도시 외곽에 있는 사적지를 찾아 볼 참이다.
오늘은 9층 수영장 옆에 차려 놓은 미국 스타일의 큰 버거에 토마도 레터스, 피클 등을 잔뜩 넣고 맥주 한병과 같이 먹었다. 아직 한뼘쯤 남은 저녁해가 잔잔이 일고 있는 파도에 반사되어 아롱거린다. 해가 완전히 떨어져 우리도 일어나 방으로 돌아 왔다. 밤 8시에 영화관에 갔다. 큰 스크린의 영화 한편 보고 있는 중에 나는 잠이 들었다.
팔레모 시티의 시청 앞 모습
노르만이 지은 대표적인 교회건물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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