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0으로 통과되었어야할 법안이다” 이틀 전 해리 리드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에너지법안 처리를 가을로 연기하자 터져 나온 존 케리 상원의원의 개탄이었다.
한때는 ‘포괄적’ 에너지 기후법안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젠 석유기업에 대한 오일유출 책임강화와 천연개스 자동차 지원을 핵심으로 한, ‘초당적 합의’를 못할 이유가 별로 없는, 어떻게 보면 맥 빠진 법안이다. 그런데도 공화당의 절대반대로 무산위기에 처한 것이다. 다음 주부터 한달간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돌아올 가을 의회는 한층 양극화된 11월 선거모드로 바뀌어 있을 테니 통과는 더욱 기대하기 힘들어 진다.
어디서부터 짚어보아야 할까. 기후변화법안이 상원에서 사실상 죽어버린 것은 지난 7월 하순이었다.
세계 곳곳이 폭염으로 펄펄 끓고 있을 때였다. 예년 평균기온이 76도였던 러시아가 111도까지 치솟고 요즘 홍수에 떠내려가고 있는 파키스탄의 5월 최고기온은 무려 130도를 기록했으며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와 미 동부, 유럽도 한두 달 넘게 찜통더위와 홍수, 가뭄 등 기상이변에 시달려왔다. 올해 6월의 지구촌 평균기온이 기온 관측이 시작된 1880년 이후 가장 더웠다는 미 국립해양대기청 보고서도 발표되었다.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라는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연구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이른바 ‘기후 게이트’ 스캔들도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온난화 대책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바로 그 때, 연방상원은 무책임하게도 기후대책 입법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미국은 기후변화 대처에서 그동안 무책임했던 게 사실이다. 공화당 행정부와 공화당 의회가 기후변화 과학에 회의를 제기하며 대책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를 초래하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개스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였으면서도 상원은 16년전 유엔의 기후변화조약을 비준한 이후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연방대법원에 의해 “온실개스는 공해다. 그러므로 환경보호청(EPA)에 그 규제권한이 있다”는 결정이 내려진 것도 2007년에 와서다.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희망이 되살아났다. 기후대책을 공약으로 내건 대통령과 민주당 의회, 심화되는 기상이변, 거기에 사상 최악의 오일유출이라는 환경훼손 사태까지 발생하지 않았는가. 지난해 6월말엔 하원이 완벽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온실개스 배출량 규제를 포함한 기후변화법안을 통과시켰다. 연방의회사상 첫 가결이었다.
금년엔 정말 ‘포괄적 기후변화법 실현’이라는 새 역사를 기록할 것으로 부풀었던 기대는 그러나 기후전쟁이 상원으로 옮겨가면서 급속히 퇴색했다. 필리버스터를 막을 60표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데 공화당의 일치단결 반대에 유전과 탄광, 농업지역 출신 민주당 의원들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케리와 무소속의 조셉 리버맨,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이 협력해 탄생하려던 ‘초당적’ 법안은 지난 4월 그레이엄이 발을 빼면서 물 건너갔다. 5월 케리와 리버맨이 공개한 법안은 환경단체의 외면을 받을 만큼 온실개스 배출 규제가 대폭 약화되었는데 그것도 통과가 힘들다는 민주당 지도부의 자체 진단에 따라 7월 초엔 또 한 번 양보, 규제대상을 발전소에만 국한시키기로 했다. 그래도 찬성 60표를 확보할 수 없었던 리드대표는 7월말 법안의 핵심내용인 온실개스 배출을 규제하는 ‘상한제와 거래제(cap and trade)’를 아예 제외시켜버렸다. 그건 기후법안에 대한 정치적 사망선고였다.
누구의 탓인가. 리버럴 미디어를 통한 책임추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기후변화를 다루는 과학자체의 복합적인 측면에서부터 경제적 손실에 대한 두려움, 그 복합성과 두려움을 교묘히 포장한 이해집단의 네거티브 홍보작전, 여론의 무관심과 그 여론을 살피는 의회 양당의 소신과 사명감 저버린 정치적 계산…그러나 아무리 엄중히 책임을 묻는다 해도 전망은 별로 밝아질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내년 새 의회에선 민주당의 파워가 대폭 약해질 것이 분명하고 11월 중간선거 이후 레임덕 의회에서의 처리 강행도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다. 앞으로 오랫동안 기후법안은 되살아나지 못할 것이란 뜻이다.
지난해 말 코펜하겐에서 “2020년까지 미국의 온실개스 배출량을 17% 감축하겠다”고 다짐한 오바마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가. 방법이 없진 않다. 내년 1월부터 시작될 EPA의 배출규제 시행이다. 경비가 많이 들 뿐 아니라 대상 업체와 보수진영의 반발이 심해지며 소송도 잇달을 것이다. 재선 앞둔 오바마 행정부가 그 압력을 견디며 시행을 강화할 수 있을까…
결국 기후법안은 양극화된 대립으로 죽어버렸고 EPA의 규제 또한 정치적 환경에 묻혀 제대로 시행되기 힘들다는 게 현재의 진단이다.
“자연은 우리의 정치책략엔 관심없다(Nature doesn’t care about our political machinations.)”고 컬럼비아대학의 제프리 삭스교수는 말한다. 공화당이 반대하든 민주당이 저울질 하든 아랑곳없이 지구는 계속 뜨거워질 것이고 그것을 방치한 자만의 대가를 언젠가는 뼈아프게 치를 것이란 경고다.
박 록 /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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