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국 후진타오 주석과 북한의 김정일과의 회담 통역을 맡았던 통역이 총살됐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국가 기밀인 회담 내용을 한국에 흘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전직 청와대 고위 관계자로부터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들은 적이 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회담은 처음에는 잘 나갔다. 김정일은 제일 먼저 ‘천안함은 북한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후진타오는 “당신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렇게 믿어주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 다음 김정일은 자신이 후계자로 정한 김정은에 대한 지지를 부탁했다. 이에 대해서도 중국은 북한 내부 문제이니 알아서 하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추가 경제 원조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후진타오주석은 “우리나라는 인구가 13억인데 굶는 사람이 없다. 당신 나라는 인구가 2,000만 밖에 안 되는데 아사자가 속출하니 어쩐 일이냐”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줬으며 분노한 김정일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갔다고 한다.
김정일이 중국-북한 간 우호의 상징으로 직접 연출한 북한 피바다 가극단의 ‘홍루몽’ 공연에 참석치 않고 바로 귀국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의 방중 이후 두 나라 국경 수비대 간에 총격전이 벌어지는가 하면 중국 상인들이 북한군에 의해 처형되는 등 양국 관계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악화되고 있다.
천안함에 타고 있던 장병 46명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산화한지 26일로 넉 달이 지났다. 북한의 천안함 공격은 ‘이명박 길들이기’와 후계자 권력 기반 다지기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그 전 10년 간 한국 돈을 대가 없이 꿀떡 받아먹는데 익숙해진 북한은 이것저것 토를 달며 돈을 제대로 주지 않는 이명박에게 화가 났으며 ‘계속 그런 식으로 나가면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또 북한 전역을 전쟁 분위기로 몰아가며 김정은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내부 결속을 다지고 불만을 누르는 것은 과거 한국 군사 정부 시절 자주 봐온 수법이다.
북한의 이런 의도는 얼마나 성공했을까. 지금까지는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여당이 6월 지방선거에서 진 것은 천안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세종시를 둘러싸고 친박 세력이 여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천안함 이후 한국이 북한을 공개적으로 돕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전통적인 ‘혈맹’ 중국의 태도도 생각보다 미온적이다. 북한을 규탄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을 비호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너희가 주장하니 믿는 척은 하겠지만 더 이상은 할 수 없다’는 식이다. 북한이 죽을죄를 졌더라도 이를 공개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것이 한반도 일부를 자기 세력권으로 두고 싶어 하는 중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을 가장 실망시킨 것은 아마도 미국의 태도였을 것이다. ‘보수 꼴통’ 부시와는 달리 좀 더 유화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기대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계속 북한을 실망시켜왔다. 천안함 이후 보여준 미국의 모습은 마지막 일말의 희망을 거둬 가기에 충분했다.
미국은 가장 강력한 언어로 북한을 규탄하는데 그치지 않고 국무, 국방 두 장관을 동시에 휴전선에 보내는가 하면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 군사 훈련을 동해에서 벌이며 작전명 그대로 한미 동맹을 향한 ‘불굴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거기다 곧 북한 지도부의 아킬레스건인 해외 자금 동결에 나설 예정이다. 부시 말기 북한이 마카오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에 묶인 2,500만 달러를 풀기 위해 보인 애타는 노력은 돈줄을 건드리는 것이 북한 지도부에 얼마만한 아픔을 주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가 안보보다 당파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일부 한국 정치인들과는 달리 안보에 관한한 미국은 여야가 없다. 안보가 걸렸다 하면 공화당보다 더 무력 사용을 불사하는 것이 민주당이다. 제1차 대전, 제2차 대전, 한국전, 월남전 참전이 모두 민주당 정부에 의해 이뤄졌다.
북한은 이번 천안함 공격으로 한미 군사훈련과 돈줄 차단이라는 큰 아픔을 겪게 됐다. 이것은 제2의 천안함을 막는 최선의 방책이기도 하다.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아픈 것을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더 이상 그릇된 판단으로 고통을 자초하지 말기 바란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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