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바마 대통령이 ‘역사적’ 금융개혁법안에 서명했다. ‘역사적’ 헬스케어개혁법안에 서명한지 불과 4개월만이다.
취임 18개월 동안 오바마는 일하는 대통령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금융위기 여파로 얼어붙은 전국에 7,870억 달러의 경기부양법 통과로 온기를 불어넣었고, 긴 시간 오랜 진통을 딛고 3,200여만명의 무보험자를 구제해낼 헬스케어개혁 입법에 성공했으며, 공립교육 경쟁력을 높이는 교육개혁에 착수했고,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규제개혁 장치를 마련했다. 지난 50년 전임 대통령들의 숙원과제가 상당수 실현된 것이다.
이만하면 1930년대 프랭클린 루즈벨트나 1960년대 린든 존슨이 누렸던 것과 비슷한 찬사를 기대해도 큰 무리는 아닐 정도다. 적어도 오바마 지지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업적과 인기가 완전 반비례 현상을 보이니 백악관은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취임 당시 60%대였던 지지도가 계속 하강, 역사적 과업들을 완수한 지금은 40%대로 떨어졌다.
대통령의 높은 업적과 낮은 지지도, 그 괴리의 모순을 뜻하는 ‘오바마 패러독스’가 선거 앞둔 정계의 핫토픽으로 떠올랐다. 그의 업적은 역사의 긍정적 평가를 받기에 모자라지 않겠지만 금년 가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패배를 막기엔 충분하지 못할 것이라는 역설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왜 그런가. 이 패러독스는 이번 중간선거에, 2년 뒤 오바마 재선에, 또 미래의 국가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오바마의 업적을 지지도로 연계시킬 민주당의 전략은 무엇인가 - 여러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원인 : 오바마의 쿨한 성품과 너무 지성적인 사고로 인한 거리감 때문이다, 좌도 우도 아닌 이념성향이 어정쩡해 지지열기가 식었다, 기성정계 관행을 바꾸기는커녕 답습하고 있다…때론 흥미롭고, 때론 엉뚱한 지적들이 다양하게 제시되었지만 모든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빼놓지 않는 한 가지는 물론 따로 있다.
비전문가들도 알 수 있는 것, 경제다. 그중에서도 일자리다. 감원당한 남편의 복직은 요원하고, 감봉당한 아내는 여전히 고용불안과 과중업무에 시달리는데 대학을 졸업한 아들마저 취직을 못한채 일상이 불안하다면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50년대 한국 유권자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다음 영향 : 여론의 지지도가 낮은 헬스케어개혁 법안이 한창 진통을 겪을 때 오바마는 단임으로 그친다 해도 계속 추진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역사의 평가를 확신했을 것이다.
일자리 창출에 전념하는 대신 주요입법 실현에 노력을 분산시켜온 오바마의 결정에 대해 “장기적으로는 국가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정치적으로는 위험한 선택”이라고 줄리언 젤리저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적한다. 정치적으로도 2012년 오바마 재선 무렵이면 각종 개혁의 효과가 가시화 되면서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금년 선거엔 그 역사적 비중과는 달리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전의 전략 : 첫째, 일자리에 집중하라. 고용회복의 전망이 어두우면 위대한 개혁도 당장은 표로 이어지지 않는다.
“Jobs! Jobs! Jobs!” 정치학자 캐더린 맥린의 강력한 조언이다. 지난주 오바마가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공장 기공식에 이례적으로 참석한 것은 장소가 실업률 13%의 미시간 주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둘째, 오바마의 업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적극 홍보하라. 복잡하고 어려운 법안내용을 쉽고 간단한 메시지로 어필하는 홍보작전이 필요하다.
사실 MBA도 아닌 우리는 2,000여 페이지의 금융개혁법안의 내용과 영향력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찬반을 표시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이 법이 2년전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 다시는 억만장자들의 파산을 우리의 세금으로 구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젠 5달러 초과인출에 35달러라는 황당한 데빗카드 수수료 횡포를 막아줄 ‘소비자 보호장치’가 생긴다는 것, 완벽한 규제는 못되지만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첫 걸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지지여부가 확실해진다.
그러면서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왜 공화당은 금융개혁법을 결사반대했을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초당적으로 외쳤던 조속하고 강력한 조처의 다짐은 어디로 간 것인가. 금융개혁만이 아니다. 애리조나 이민단속법에 줄줄이 지지를 표하며 포괄적 이민개혁을 또 반대할 공화당 정치인들, 멕시코만 원유유출사태를 초래한 석유회사에게 오바마가 보상기금 받아냈다고 오히려 사과한 공화당 의원…민주당에 실망했지만 공화당에 마음 주기는 힘든 사람들의 속마음 단면이다.
개혁을 원해 오바마를 선택했으면서도 오바마가 실현한 개혁엔 관심이 없고, 큰 정부는 싫다면서도 정부의 혜택 삭감엔 아우성치며 정부의 대책부족을 비난하는 유권자들은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오바마 패러독스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유권자 패러독스’에 있는 듯싶은데, 어쩌겠는가, “민심은 천심”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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