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0월 2일은 구름 한점 없는 청명한 날이라 하니 햇살이 뜨겁고 선탠 지수도 제일 높은 날일것 같다. 기온은 78F 밖에 안된 단다. 지중해 연안에 사는 사람들이 왜 까무잡잡한지 이해가 간다. 몇일 사이에 우리도 까무잡잡 하게 탓다. 이목구비도 작고 색갈은 같으니 별로 내세울 얼굴도 아니다. 배는 오늘 아침 3시경에 성 요한이 예수님의 계시를 받아 7개 교회에 보낸 편지를 쓴 밧모 (Patmos) 섬을 지났다는데 6시에 일어 났으니. 섬들의 크기도 비슷, 모양도 비슷하고 수도 많아 밧모섬을 보았어도 머리에 특히 남아 있을것 같지도 않다. 성 요한이 유배지의 이 섬으로 올때 또 갈때도 우리와 같은 뱃길을 갔겠지 마는 노구에 얼마나 고난스러운 뱃길 이였을가. Aegean 해의 항구 도시였든 에배소는 오랜 역사와 인류의 신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옛날 소아시아의 관문이였다. 에게 해역에서 고대 도시의 모습을 제일 잘 보여주며 또 잘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아직 발굴이 계속 되고 있지 마는 지금 있는 폐허의 도시 모습으로도 2천년 전의 생활상을 충분히 상상하고 묘사 할수 있는 곳이다. 에베소의 역사는 희랍의 것과 같고 희랍의 잡신들도 여기에 살았으며 로마제국 통치에 예속 되는 권력에의 우상도 많았고 영지주의에 집착한 똑똑한 유대인도 많이 산 곳이 였다. 이 와중에 기독교인들이 비집고 들어가 전도의 요람지로 만들었던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성 요한이 활동 한 곳이고 또 죽은 곳이며 버진 메리도 요한을 따라와 생을 마감 한 곳이며 성 누가도 여기서 죽었단다. 바울 선생은 이
곳에서 성경책을 썼고 성 베드로도 로마에 입성 하기전에 이곳을 둘렀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 가면 희랍의 철학자, 수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고장이었고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거대한Artemis (일명Diana) 신전이 있었든 곳이기도 하다. 희랍의 Alexandria 대왕도 이집트 점령 시에는 이곳을 자주 둘렀고 그후 이집트의 여왕 Cleopatra도 로마제국의 실력자들인 Caesar또 Antony등과 데이트 하고 결혼 하고 살면서 이곳을 자주 들렀 다고 한다.
지금의 에배소는 물길이 없고 20마일 남쪽에 있는 Kusadasi 를 통해 터키의 서남쪽을 가게 된다. 2천년후에는 성지 순례에는 으뜸가는 한국 여행자들도 꼭 둘렀든 곳이다. 배는 해뜨기 전 7시에 Kusadasi 항 부두에 닿았고 우리는 준비를 다 하고 있다가 7시 반경에 내렸다. 배에서 내려 별 통관 수속도 없는 세관건물을 빠져 나오니 배에서 내린 승객들이 자기들이 선택한 현지 단체여행에 배당된 버스를 찾고 있고, 현지 택시 운전수들의 호객 소리, 흥정 소리들로 부산 하다. 길을 건너니 바로 시장통이고 아직 상점들은 문을 열지 않아 한산한 편이며 아침 공기는 맑고 상쾌하다. 아무래도 에페소를 다녀오면 이Kusadasi 안을 못 볼것 같애 조용한 아침 시간을 이용해 한 30분 정도 돌기로 한다. 배에서 얻은 관광지도를 보며, 중앙지 일것 같은 Liman 광장으로 왔다. 고대와 현대의 건물들이 비교적 잘 어우려져 있고 팜 트리의 가로수가 있는 툭 터인 길은 깨끗하며 관광지라 시내가 잘 다듬어 져 있음도 본다. 출근 하는 시민과 학생들이 분주히 오가고 대로에는 버스와 택시들이 많이 다니는 것을 보면 조그만한 도시 임에도 상당히 역동적인 곳으로 여겨졌다.
지도에는 사방에 흩어져 있는 회교 사원과 증기와 찬물을 번갈아 둘러 쓰며 마사지 한다는 터키탕의 위치만 적혀 있고 별 가볼만 한 고적은 없
는 것 같다. 오늘은 택시를 우리 둘이서만 대절해 속히 움직여 많은 곳을 돌려고 한다. 여러 사람들과의 택시나 단체 버스로 많은 시간을 끌며 다니는 것 보다 우선 많이 볼수 있다. 자세한 가이더의 설명은 못 듣지 만은 사전에 충분한 안내서를 읽어서 실물을 봐도 답답 하지도 않다. 정 모르면 옆으로 수없이 지나가는 그룹투어단에 잠시 귀를 기울이면 된다. 시내에서 흥정한 택시 요금은 배 있는 데서 보다 그의 반 밖에 안되고, 6시간 정도 대절해 100불을 주기로 하고 예배소를 향해 해안길을 따라 떠났다. 서부 터키에서 왔다는 이 뚱보 운전수는 영어도 소통이 될 만큼 하고 마음도 착한듯 하다.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한국사람에도 호감을 두는듯 했다.
구릉지대와 잡초지를 지나 처음 찾아간 곳은 에배소 옆의Selcuk 이라는 큰 읍에 있는 페허의Artemis 신전이다. 습지에 초석과 높히 선 돌기둥 하나 밖에 없었으나 이 역사속의 신전은 희랍의 아데네에 있는 파르데논 (Parthenon) 신전의 3배 크기 였다니 가히 상상을 초월 하는 규모였나 보다. 나중에 차에서 내려 이 페허를 다시 보기로 하고 읍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를 돌려 Bulbul 이라는 산 정상의 삼림속에 숨어 있는 버진 메리 집으로 가기로 했다. 포장이 잘된 산길을 따라 올라 간다. 이 꼬불꼬불한 길에 버스가 꼬리를 물며 양쪽으로 지나가고 산중턱에는 버진 메리의 높다란 동상이 서 있었고 저 멀리 낮은 곳의 경관은 좋았다. 경내는 수많은 버스가 서 있는 것을 보니 그 집을 방문 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인가?
단체 여행객의 양해를 계속 구해 버진메리 집에는 10분도 안 기다려도 들어 갈수 있었다. 근방에 아름드리 나무도 많았으나 로만 건축 같이 전부 돌로 소박하게 만들어 져 있다. 4세기때 옆의 교회, 집 또 그의 무덤을 합쳐 지금의 새 건물을 지었고 침실과 기도실은 기독교인들이 쓰는 교회로 다시 개조 됬으며 벽난로가 있는 방은 회교도의 채플로 쓴다고 한다. 조그만한 기도원 같다. 옆에 있는 “Water of Mary”의 샘은 염분이 많다지만 병 치료에 좋다고 했다. 이 집은 1980년에 교황으로부터 버진 메리 성지로 추서를 받았고, 회교들도 자기들 선지자의 모주로 8월 15일을 승천일로 정해 예배를 드린단다. 성모 마리아는 양대 신앙으로부터 예배를 받으니 하나님이 합당한 여인으로 선택 하셨음이라. 나오는 길옆 돌벽에는 구겨 넣은 기도문들이 꽉 차 있다. 그 많은 기도문을 다 읽으시려나?
성 요한의 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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