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산토리니
오늘은 목요일 10월 1일이고 날씨는 어제와 같이 청명하며 80F를 안 넘는단다. 주문을 해도 이
런 날씨는 얻기 어려우리라. 아침 8시에 도착한 곳은 동 지중해의 일부인 이오니아 해 가운데
있는 희랍의 큰 섬 크레타(Crete) 위에 초생달처럼 떠 있는 산토리니(Santorini) 라는 곳이다.
접안이 안되어 작은 배 여러 척이 왔다 갔다 하며 크루즈의 승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천만년전 지각 변동으로 그리스 대륙에서 떨어져 나온 에게해에 떠 있는 수 천개의 섬들 중,
이 섬이 화산 폭발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하며 3500년 전에는 유례없이 큰 폭발로 둥글던 섬이
반쪽도 안 남았단다. 파진 곳의 수심이 300미터도 더 된다니, 저 위의 사람 사는 언덕이 해발
300미터라면 600미터를 파버린 대형 화산이었고 혹자는 사라진 전설의 아틀란티스(Atlantis) 란
주장도 할 정도라고 한다. 가파른 언덕을 뒤로 하고 있어 해변가 평지는 아주 협소해 보인다.
오늘의 배 출발 시간은 밤 9시라 바쁘게 내릴 필요는 없을 듯하다. 샌드위치와 물을 갖고 배안
의 환전소에서 200 유로를 바꾸고는 큰 배에서 작은 배에 내렸고 작은 배에서 부두에 내렸다.
9시경에 이 섬의 읍인 피라(Fira)에 왔다. 해변에서 나귀를 타거나 걸어서 올라 올수도 있고, 우
리같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 올수도 있었다.
도시의 한쪽은 거의 절벽이지만 빼곡히 찬 집들로 헛발 디딜 틈이 없으니 위험 하지는 않았으
나 혹시 지진이나 화산이 또 터지면 이 집들에 사는 사람들은 어쩌나? 시멘트 블럭에 흰 돌가
루나 페인트를 바른 어수선 하게 들쭉날쭉 지형 따라 공간 따라 지어놓은 집들이 멀리서 보면
흰색의 달동네 같이 보인다.
어떤 것은 긴 이글루 같이 생겼고 어떤 것은 네모, 육모, 팔모로 반듯한 벌집형이고 또 비스듬
히 기울어진 것, 절벽 쪽의 땅을 반은 파고 들어간 집들이지마는 색깔은 벽 지붕 할 것 없이
다 흰색이다. 교회같은 큰 건물들의 지붕은 한결같이 돔형에 거의 다 푸른색으로 도색이 되어
있다. 경사진 곳의 집들은 집보다 입구의 층계에 돌도 공도 많이 든 듯하다.
이 섬도 크레타섬처럼 BCE 30세기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하며 주인도 많이 바뀌고 싸움도 많이 했단다. 시리아 계통( Phoenician )들이 전설의 트로잔(Trojan) 전쟁을 한 후 BCE 20세기부터 CE 15세기까지 3천5백년을 희랍계 도리안, 아랍, 로만, 라틴, 독일계 십자군인 프랭크족, 베네치안 등의 통치가 이어 졌으나 화산, 지진, 가뭄 등으로 살다가 말다가 했단다. 16세기말
이후에는 오트만의 터키족에 예속되었고 19세기말부터는 다시 희랍 령이 되면서 터키인들도 회교의 사원도 많이 떠났단다.
섬은 두 종류의 지형과 정착지로 분류 된다는데, 섬의 수도 피라나 섬의 북쪽 끝에 있는 오이아(Oia)처럼 한쪽은 해변의 절벽을 낀 가파른 곳과 한편은 포도도 토마토도 생산 되는 산능선 밑으로 완만하게 형성된 동네들이고 다른 지형은 피라고스(Pyrgos) 읍 같이 점령군들이 쌓은 성곽을 중심으로 바다에서 떨어져 비교적 지형이 사방으로 완만하며 융통 있게 움직일 수 있는 동네들이라고 한다. 먼저 바다의 전망이 아름다운 피라에서 한시간을 보내며 회교의 것인지 희랍정교의 것인지는 몰라도 돌로 총총이 칸막을 친 도미니칸(Dominican) 수도원을 보고 그 안에 있는 카펫 짜는 학교라는 곳도 본다. 좁은 골목길에 무슨 상점과 음식점이 그리 많은지!
이 섬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박물관이 옆에 있다 하나, 나중에 배로 내려가기 전에 시간이 있으면 보기로 하고 근방에 있는 천년된 희랍에서는 별로 남아 있지 않는 로만 가톨릭 성당만 봤다. 여기는 화산재와 돌로 된 섬이라 나무를 쓴 건물이 별로 없고 이 성당도 예외는 아니다. 흰색 건물에 푸른 지붕도 예외는 아니고. 비교적 넓은 차도를 따라 내려와 희랍정교의 교회를 본다. 가톨릭의 성당은 조각과 성화, 성모와 예수상, 촛불 등으로 과 하게 치장을 하나 회교나 희랍정교의 사원은 비교적 단순해서 별 볼 것은 없다. 다시 도심쪽으로 올라와 버스정거장으로 갔다. 우리가 가기로 한 또 다른 정상위의 도시 오이아(Oia), 화산재로 생겼다는 동글동글 싸래기 같이 생긴 흑모래가 깔린 페르시아 해변 등을 가는 버스도 있었다. 비싼 택시나 차도 빌릴 필요가 없어 좋았다. 피라에서 오이아까지는 약20분 버스로 해안 절벽을 따라 가고 경관도 좋았고 스릴도 있었다. 지진 후 다시 개발 되었다는 오이아 동네는 등대같이 솟아 둥그렇게 돌아가는 지형으로, 몇몇 위치에서는 진짜 돌아가는 풍차도 볼 수 있고 빤짝이는 바다와 절벽에 붙은 눈이 부실 듯 흰 집들, 푸른 지붕들 다 볼 수 있었다.
흔해 빠진 붉은 색의 제라늄꽃도 흰색과 푸른색으로 뒷받침을 받으면 이렇게 예쁘게 되는구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연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를 배경으로 십자가가 붙은 푸른 돔의 흰 건물은 동화에서나 보는 것인데.. 도시의 한쪽 끝에 있는 풍차 옆의 선인장 열매를 만지다 오른손 바닥에 보일둥 말둥 박힌 수십
개의 가시로 하루종일 불편 하게 지내게 한 곳도 여기였다.다시 피라로 돌아와 다른 버스를 타고 새까만 모래알로 덮힌 해변으로 왔다. 수영할 날씨가 아니어서 인지 해수욕 하는 사람은 없었고 좁다랗게 뻗은 까만 모래사장에는 현지의 까무잡잡하게 탄 이목구비가 분명하게 생긴 애들이 엄마들과 놀고 있었고 원두막 같이 풀새기로 채양을 한 테이블들이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 서 있었다.
때가 한물가서 인지 그 많은 테이블들은 다 비어 있었다. 희귀한 까만 모래사장은 있어도 해수욕장에는 역시 수영복을 입은 미녀들이 없으면 별 볼 것이 없다. 남녀 탈의장으로 각각 쓴다는 두 콘크리트 구덩이를 가 봐도 아무도 없다. 좁은 해변 옆에는 음식점과 버스 종점이 있었고 반대편으로는 우뚝 선 민둥산이 있었고, 머리를 끝까지 처 들어도 정상이 안 보이는, 이름이 일리아스(Ilias)라는 산이다. 거기 정상은 전망이 좋고 옛날 수도원을 개조한 박물관이 있단다.
지금 우리가 가려는 페르시아 읍을 통해서만 그곳으로 갈수 있다. 시간과 차편이 되면 가 보기로 한다. 같은 배로 온 미국인들과 버스를 타고 다시 좁고 정리 안된 해변길을 돌아 페르시아 읍에 와서 우리 둘만 내렸다. 18세기에는 섬의 수도였다는 이곳에는 500 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고 11세기때 베네치안들이 세운 언덕위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좁은 통로의 돌로 된 집들에서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관광객만 상대해서 인지 순박한 면이 부족하고 약삭빠른 편이었다고 생각된다. 여기의 성 매리를 기리는 정교회들과 수도원도 하나 같이 흰색 돌벽에 십자가가 꽃인 푸른 돔형의 지붕을 갖고 있었다. 푸른 대문과 창문 셔터가 달린 교회 옆에는 단층부터 3층까지로 된 하얀 종탑들이 서 있었다. 푸른 하늘과 조화가 잘되는 것 같고 아치형 종탑들이 정취를 더해, 나는 산토리니에서는 소박하나 제일 보기 좋은 교회들이라 생각이 들었다.
앞의 구릉지대를 지나 저 멀리 푸른 카메니(Kameni )해와도 잘 어울렸다. 교회 앞에 나귀를 세워 놓고 한번 태우고 사진 찍는데 2유로, 옆의 나무상자에 싸놓고 집에서 만든 와인이라며 2홉짜리 한병에 10유로를 받는 눈알이 잘 돌아가는 영감의 모습은 안나오도록 교회만 사진을 찍었다. 읍의 중심지인 삼거리에 다시 내려와 버스를 기다리는 몇 명과 만났다. 스위덴에서 온 모녀는
내년 3 월까지 이곳에서 요양하며 산다고 했고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에서 어업에 종사 한다는 신혼부부는 내일 돌아가면 할일이 태산 같다고 했다. 할일 없이 반년을 어떻게 살 거냐고 모녀에게 물었더니 언덕위에 사는 영감과 동업을 하든지 같은 업을 다른 교회 옆에 낼 작정이라며 웃었다.
버스가 먼저 오면 피라로, 택시가 먼저 오면 버스가 안가는 일리아스 산의 옛 수도원을 방문하기로 마나님이 안을 냈으나 한시간을 기다려도 둘 모두 안 온다. 저녁 6시가 넘었고 7시면 해가 지는데 타지에서 온 동양 얼굴을 한 두사람이 7시 이후에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전화로 택시를 부르려고 이 삼거리에 있는 피자집으로 가는데 버스 온다는 마나님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버스였다. 다시 피라에 왔고 이곳의 유물 박물관은 벌써 문을 닫았지 마는 봐도 별것 아닐 것으로 생각됐다. 이곳에는 좁은 면적을 잘 이용해 지은 흰 색깔의 아틀란티스 호텔도 절벽 옆에 있고 냄새 나는 조랑말을 모아두는 곳도 있었고 절벽을 따라 다른 냄새를 피우는 음식점도 많았으며 몇 개의 가톨릭 교회도, 또 민가도 있고 상점도 다 있었다. 한번 더 지물과 지형을 살피고는 걸어서 해변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많은 조랑말과 사람이 같이 쓰는 경사진 돌길이니 좁고 미끄럽고 오물도 피해야 하니 조심해야 되는 하산 길이였다.
작은 배에서 내려 큰 배에 타고 30분도 안되어 큰 배는 고동 소리를 내며 서서히 떠나고 있었다. 손에 박힌 가시들을 뺄 참으로 배의 양호실에 가니 90달러를 내라기에 그만 두고 마나님이 불을 밝히고 돋보기를 쓰고 쪽집게로 다 빼 냈다. <계속>
갖가지 모양의 집들이 지붕은 모두 흰색 일색이나 교회같은 큰 건물 돔은 푸른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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