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의 해이다. 벌써 두 세대를 넘길 정도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전쟁은 기억 속에 희미해져 갈지 모르지만 민족 동질성의 공감대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하나됨을 바라는 통일의 염원은 항상 현재 진행형으로 남는다. 한반도 통일은 분단의 역사가 반세기를 넘었다 해서 체념할 일도 아니요, 하루 이틀에 이뤄질 사안이 아니라는 생각에 미래에 떠넘길 일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분단의 대가로 치르는 값이 너무나 크다. 최근 천안함 사태도 따지고 들어가면 분단에서 연유한 재앙으로 잊기 어려운 아픔과 희생을 초래했다. 이럴 때일수록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밑거름이 되는 사려 깊은 논의들이 많이 필요하다. 최근 통일 기반 조성으로 남북한 단일 통화 사용을 최초로 연구 발표한 하워드대학교Howard University) 경영대학의 정진길 교수를 만나 봤다. 아래는 단일 통화와 한반도 통일의 의미에 대한 정진길 교수의 주장을 요점 별로 정리한 것이다.


“남북한 평화통일 통화 단일화부터”

투자.교역 증가 효과...경제 통합 출발점
민간차원 지원 성금등 사용처도 투명해져

▲ 남북한 통화 단일화란
남북한 통화 단일화란 북한이 남한 통화인 원화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한반도 평화 통일을 달성하는 지름길은 한반도 경제통합에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한 통화 단일화를 위한 단계적 과정을 거치다 보면 한반도 경제통합은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어 그 의의가 크다.

▲ 통화 단일화를 주장한 배경은
지금 북한 주민은 식량부족으로 배고픔의 고통을 겪고 있다. 환율 관련 경제이론과 동유럽 국가들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통화 관리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을 돕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해 보고 싶었다. 남북한 정부가 단일 통화제의 타당성을 각자 또는 공동으로 진지하게 검토해 보았으면 한다.

▲ 실용성 있는 얘긴가
소련의 붕괴 이후 동유럽 국가들이 경제체제 변환을 추구하는 동안 환율정책을 통하여 실제로 경제를 안정시킨 경험이 있다. 환율정책으로 동유럽의 많은 체제 변환국들이 급등하는 물가 문제를 해결했다.
북한도 최근 화폐 개혁 등 여러 번에 걸쳐 경제 변혁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식량 및 소비재 부족으로 치솟는 물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물가 상승에 따른 주민의 불만 누적으로 정권 안보에 불안을 느껴 번번이 중도에서 개혁 실패를 인정하고 포기하는 형태가 반복되는 현실이다.
물가 상승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급격한 변화가 없는 안정된 환율 정책이 필요하다. 북한이 경제 변혁에 성공하길 원한다면 원화 사용을 검토해 볼만 하다.

▲ 통화 단일화 방법은
1 단계: 북한의 고정환율제도 채택
북한은 2009년 말 화폐개혁 이후 환율 정책의 실종으로 달러, 유로 등 외환을 바꿀 수 있는 제도가 기능 마비 상태다.
경제체제 변환국의 하나인 중국이 수출주도형 경제를 철저하게 시행하여 연착륙에 성공했듯이 북한도 우선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중국은 미국의 제조업 공장이라는 말이 있듯이 북한도 개성공단 등을 잘 활용하여 남한의 제조업 공장 역할을 수행하며 수출을 증가시킬 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
중국이 경제개발 초기부터 지금까지 최대 수출 상대국인 미국 달러에 자국의 통화가치를 고정시킨 것처럼 북한도 무역 거래가 증가하는 남한의 원화에 가치를 고정시키기는 것이 초기에는 이상적이다.

2 단계: 남북한간 무역 원화로 결제
고정환율제를 도입한 다음 남북한 간의 무역거래는 원화로 결제하는 것이 남북한 모두에게 유리하다. 북한은 2대 교역상대국 중의 하나인 남한과 원화로 결제하게 되면 외환 위험은 사라지게 되고 남북한 무역도 급증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된다.
개성공단에 진출해 있는 남한의 중소기업도 인건비를 비롯한 모든 사용료를 달러로 지급하기보다는 한국은행을 통해 원화로 지급하게 되면 환율변동 및 그에 따른 외환 위험을 제거할 수 있어 더욱 많은 생산과 거래를 유발할 수 있다.
또 남북한 정상회담 및 금강산 관광의 대가로 지난 10여 년 간 남한에서 국제 결제 통화인 달러로 북한에 제공한 현금이 핵무기 개발에 사용됐을 거라는 의혹이 있음은 모두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남북한의 거래를 한국은행을 통하여 원화로 지급하게 되면 그 금액 사용처가 투명하게 되는 장점도 따른다.

3 단계: 한반도 통화 단일화
유럽 경제연합은 회원국 간의 정치적 차이점을 극복하고 주민들의 경제인권을 위해 유로라는 통화 단일화를 1999년부터 10년 넘게 자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한반도도 영토적 통일을 이룬 다음 단일 통화를 사용하게 될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유럽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한반도에서도 비록 정치적 차이로 인해 영토적 통일이 이루어지기 이전일지라도 남북 통화 단일화는 협의에 의해 실천 가능하다. 통화 단일화로 한반도 경제 통합이 이뤄져 모든 남북한 주민이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경제 인권을 누릴 수 있다면 통일은 자연스럽게 달성된다.

▲ 해외 동포에게 의미하는 바는
많은 해외 한인교회와 단체들이 북한주민의 식량사정과 인권개선을 위해 성금을 모금하는 등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달러로 표시된 성금은 현실적으로 금융제재 때문에 전달이 불가능한 실정이며 유엔이나 비정부기구(NGO)를 통한 전달도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다보니 편법으로 많은 수수료를 내고 캐나다나 일본을 경유해 전달되는 사례가 나온다. 쌀, 밀가루 등 현물로 구입하여 전달하더라도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고 임시 미봉책으로 일회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해외동포의 모든 외화 표시 성금이 한국은행에 개설된 북한구좌 중의 하나로 지정 송금 될 수 있다면 남한의 원화로 교환되어 북한에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전달된 남한 원화의 사용처는 한국은행에서 발표하는 북한의 거래 내역서를 통해 확인도 가능해진다. 따라서 해외 동포들이 원하는 뜻대로 성금이 식량 구입을 위해 쓰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투명성이 보장된다.
또 북한의 원화 사용은 해외 동포들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산 가족 방문차 북한을 방문했던 재미 동포들에 따르면 북한은 재미 동포들의 직접 투자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미주 한인들이 북한에 대한 직접투자에 관심이 있더라도 달러를 이용한 투자는 경제제재로 인해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은행을 통해 달러를 남한 원화로 바꿔 투자할 수 있는 제도를 남북한이 동시에 합의한다면 북한은 해외동포를 통해 많은 해외자본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연구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올해 초 워싱턴 DC에 소재한 권위 있는 민간 싱크 탱크이며 미국의 대북 정책에 영향력 있는 한미경제연구소(Korea Economic Institute)에서 ‘경제체제 변환국의 환율정책 및 그 실증적 효과가 남북한 경제관계에 주는 교훈’에 관한 논문이 발표될 당시 각계각층의 관심이 높았다.
연방 국무부, 재무부, 통상부 등의 정부 관리,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미상공회의소 등 민간 싱크 탱크의 연구위원, 국제통화기금(IMF)과 월드 뱅크 등 국제금융기관 직원, 학계, 미국 일본 중국 등 각국 언론들이 논문 발표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국무부의 해당부서에서도 논문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정진길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졸업
●한국은행 조사부 근무(1979-1983)
●메릴랜드 주립대학(UMCP) 경영학 박사(재무학 전공)
●하워드 대학교 경영대학 교수(1995년~현재)
●국제 금융론, 기업재무, 투자론, 파생상품 등 강의

<정리=안성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