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캘리포니아 공화당 주지사후보 경선 결과를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돈이 말했다”
미국선거에선 ‘돈이 말한다(money talks)’가 새삼스런 현상은 아니다. 정치가 소수의 큰손이나 특수이해집단이 건넨 선거자금에 휘둘리는 정도가 심해지면서 ‘예선은 국가적 경매(national auction)’라는 비판까지 나왔으니까. 그렇다 해도 멕 휘트먼과 스티브 포이즈너의 돈 싸움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려 1억500만 달러의 선거자금이 지출되었다. 8,100만 달러를 퍼부어 1,101,074표를 얻어낸 후보가 2,400만 달러 ‘밖에 못쓴’ 후보에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승자 휘트먼에게 던진 한 표는 약 73달러였던 셈이다. 8일 밤 선거분석에 나선 전국의 TV해설가들은 캘리포니아를 언급할 때마다 쓰레기 버리듯 와르르 쏟아 버린다는 뜻의 ‘dump lots of money’란 표현을 빠뜨리지 않았다.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승리한 휘트먼 캠페인이지만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롤러코스터 타기를 방불케 했다. 무명으로 출발해 일류 전략가들을 불러 모은 조직 구성과 이름 알리기 위한 라디오 및 TV광고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한때 포이즈너와의 격차를 50% 포인트까지 벌려놓았다. 그러나 애리조나 이민단속법 제정을 계기로 전국에 확산된 반이민 무드에 잽싸게 편승한 포이즈너가 ‘이민 리버럴 휘트먼’에 가차없는 맹공을 퍼붓자 지지도가 폭락했다가 비싼 봉급받는 유능한 위기대책팀이 발빠르게 움직이면서 휘트먼을 강경우파로 변신시킨 덕에 전세를 회복, 무난히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
이렇게 마무리된 예선의 종료휘슬이 채 끝나기도 전에 본선 시작의 벨이 울렸다. 라이벌 없이 민주경선을 무사통과한 제리 브라운과 휘트먼은 각기 예선 승리 소감의 절반 이상을 서로에 대한 공격에 할애했다.
브라운은 주정업무란 좀이 쑤신 억만장자가 어느날 문득 “나 주지사해볼까”하고 뛰어들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휘트먼의 경험미숙을 내리쳤고 휘트먼은 “기성 정계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균형예산을 실현시킬 줄 아는 여성 기업가를 경계하라”며 브라운을 직업정치가로 몰아붙였다.
돈이 휘트먼 승리의 절대적 요인이긴 했지만 사실 카리스마도, 메시지도, 친화력도 특출하지 못한 포이즈너는 처음부터 강적이 아니었다.
브라운은 다르다. 캘리포니아 정치 명문가 태생으로 두 차례 주지사를 역임한 검증된 능력 갖춘 현직 주 검찰총장 브라운의 본선 경쟁력은 막강하다. 노련한 베테랑이면서도 늘 이상주의를 추구해와 보통 기성정치가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취임 첫날부터 캘리포니아 재건작업에 착수할 수 있는 준비된 후보임을 강조하는 그는 ‘72세의 고령, 흠집 많은 40년 정치판’이라는 금년 표밭의 치명적 핸디캡에도 불구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휘트먼 진영에겐 본선모드 재정비가 필요하다. 표를 찍어야 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시급한 과제는 우선 두 가지다.
첫째, 구체적 정책 제시다. 솔직히 지루한 헌 얼굴보다는 신선한 새 얼굴을 누구나 선호한다. 그러나 아직 억만장자는 것 외에는 휘트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정치 입문 전 성공한 기업가 휘트먼은 투표조차 하지 않았다. 굳이 투표할 필요를 못 느낀 탓일 것이다. 그때의 느낌을 기억한다면 유권자들이 자신에게 투표해야할 이유를 주어야 한다. 막연히 ‘미래를 위한 정책’이라는 추상적 약속은 예선에서 끝내고 이젠 실현 가능한 구체적 위기 해결책 제시로 승부를 겨루어야 한다.
둘째, 이민에 대한 입장 정리다. 중도였던 그의 입장은 경선을 통해 강경으로 선회했다. 1994년 불법이민에게 공공서비스를 중단한다는 주민발의안 187 통과이후 공화당과 이민커뮤니티의 관계에는 치유하기 힘든 상처가 생겼다. 그 이후 주 고위공직에 선출된 공화당 후보는 대부분 중도파였다. 인구의 35%를 넘어선 라틴계의 파워다. 휘트먼의 강경 선회를 이민계 유권자들이 이해하고 용서해 줄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보수표밭에 대한 예선공약을 깨지 않으면서 이민사회와 화해의 악수도 나누어야 하는 난제가 주어진 것이다.
앞으로 본선은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현재의 지지율은 45% 대 38%로 브라운이 앞서 있다. 공화당은 ‘과거와 미래’의 대결이라고 강조하고 민주당은 ‘경륜과 미숙’의 한판 승부라고 맞받는다.
다시 돈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휘트먼 진영은 아직 8,000만 달러는 더 쓸 수 있다는 입장인데 브라운의 현재 자금은 2,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주 전역에 TV광고를 1주일 간 계속하려면 약 300만 달러가 든다. 11월까지 휘몰아칠 휘트먼의 광고홍수에 대한 대책마련은 브라운 진영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본선에서 돈의 힘은 어느 정도 발휘될까. 올해 미 전국 표밭을 휩쓰는 유권자의 분노와 절묘하게 합쳐져 강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면 휘트먼의 돈은 캘리포니아의 새 역사 기록에 확실한 일조를 할 수도 있다. ‘첫 여성 주지사 탄생’이라는.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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