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 손열음 리사이틀
정확·섬세한 테크닉 우아한 감정 표현력 감동으로 꽉 찬 무대
주말 저녁에 멀리 벤추라까지 다녀온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8일 벤추라 뮤직 페스티벌의 피날레를 장식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리사이틀은 한마디로 완벽 그 자체였다. 이제 스물네 살, 반짝반짝 빛나는 젊음과 또랑또랑한 자신감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손열음은 이날 베토벤(Andante Favori), 슈만(Carnaval Op.9), 슈베르트(Sonata No.16), 리스트(왈츠 카프리스 Soiree de Vienne), 그리고 앙코르곡으로 바흐(Sheep may safely graze)를 연주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균일한 집중력과 에너지로 전곡을 완전하게 표현해 내 백인 노인 일색인 500여 청중들로부터 일동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녀의 연주를 듣는 것은 아주 맛있고 신선한 과일바구니를 선물 받는 것 같았다. 복숭아, 포도, 사과, 딸기, 무화과… 색깔도 모양도 맛도 다르지만 하나하나 예쁘고 향기로운 과일들을 아주 정성껏 닦아서 예쁜 그릇에 담아주는 향연에 초대된 기분이었다. 특히 21개의 소품들로 구성된 슈만의 카니벌에서는 그 다양한 감정과 스타일을 충분히 자신의 것들로 소화해 열개가 아니라 삼십 개쯤 돼 보이는 손가락들이 자유자재로 건반 위에서 춤추는 것 같았다.
한 음도 밀리거나 뭉개지지 않는 고도의 정확성, 고전낭만파 음악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섬세한 테크닉, 더함도 덜함도 없이 딱 떨어지게 움직여주는 서정, 감정의 격정과 폭발마저 탄력적으로 제어하는 그 유려한 표현력은 ‘과연’이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열음이란 이름은 열매가 열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이름처럼 속이 꽉 차고 지성과 감성과 재능의 밸런스가 아주 잘 여문 아가씨, 여기에 연륜이 더해진다면 얼마나 굉장한 연주를 할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하고 기대된다.
손열음은 지난해 밴 클라이번 콩쿠르 2위 입상으로 국제무대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한국에선 오래 전부터 금호가 키운 영재로 유명하다. 그녀의 연주를 들어본 사람은 단번에 그의 팬이 되어 버린다는 매력적인 피아니스트, 현재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손열음과 벤추라 음악제 연주가 있기 바로 전날 밤 전화로 30여분 인터뷰했다.
“다양한 색깔로 다채로운 레퍼토리 소화”
손열음 인터뷰
-캘리포니아에서 첫 연주인가
▲지난해 밴 클라이번 콩쿠르 입상 직후에 퍼시픽 심포니와 협연한 적이 있으니 두 번째다. 이번 연주도 밴 클라이번 콩쿠르 입상자로서 3년 미국 연주 계약에 따른 것으로 앞으로 2년 더 미국에서 연주를 갖게 된다.
-연주곡이 모두 고전음악이다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가 ‘비엔나 클래식’이라 거기에 맞는 곡들을 연주해 달라고 해서 선택한 곡들이다. 개인적으로 독일 고전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분도 좋고 기대도 크다.
-좋아하는 작곡가나 스타일이 있나
▲특별하게 선호하는 것은 없다. 곡마다 다 나름대로 재미있어서… 피아노는 레퍼토리가 너무 많다 보니 특정한 음악가나 분야에 전문적인 피아니스트가 많은데 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런 게 없고 색깔이 다양해서 여러 장르와 작곡가를 남보다 쉽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세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고 하는데
▲엄마가 음악을 좋아하셨다. 집에 피아노가 있어서 잘 가지고 놀았고, 음반도 많아서 자주 들었던 것 같다. 두 살 반 때 피아노 배우러 갔는데 선생님이 너무 어리다고 해서 돌아왔던 기억, 그래서 세 살이 된 다음해에 가서 배우기 시작했던 것들이 생각난다. 성격이 혼자 가만히 앉아서 뭘 하는 걸 잘하는 편이라 체질에 맞았던 것 같다. 많이 연습했다기보다 조금씩 꾸준히 해서 오늘에 왔다.
-피아노는 어떤 악기인가
▲중성적인 악기다. 치우치지 않고, 차가울 정도로 이성적인 악기다. 음악성만으로도, 기술적인 것만으로도 잘 연주할 수 없고 모든 걸 다각도로 잘 해석해야 잘할 수 있는 악기다. 레퍼터리가 너무 많고 방대해서 평생을 쳐도 다 못 쳐볼 정도인데 나는 새로운 거 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런 점이 나와 잘 맞아서 행복하다.
-‘국내파’라고들 하는데 일부러 유학하지 않았나
▲일부러는 아니고 좋은 선생님(김대진)을 만난 것이 그 이유다. 또 한국종합예술학교에 월반제도가 있어서 중학교에서 대학으로 건너 뛸 수 있었다. 만일 그 제도가 없었으면 유학을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줄리어드로 많이 진학하는데 독일로 유학 간 이유는
▲그 곳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이 한 이유고, 또 원래 유럽을 가고 싶어 했다. 클래식 음악이 유럽 음악이기 때문에 그 본 고장에 가서 하고 싶었다.
-어떤 연주자로 기억되고 싶은가
▲확실하게 나만의 색깔이 있어서 다른 사람과 뚜렷이 구별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 나는 엄청난 성공을 바라거나 대중들에게 유명해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소수더라도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음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좋은 연주자로 기억되고 싶다.
-후배 피아니스트들에게 조언한다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서는 어려서 재능이 있어 보이면 주위에서 시켜서 음악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음악은 시켜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하면 좋겠다. 생활에서도 즐길 수 있는 음악, 그걸 염두에 두고 연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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