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사인 아팔루사 매니지먼트의 데이빗 테퍼 회장은 지난해 월급과 보너스로 무려 28억달러를 벌면서 지금까지도 월가의 화제로 회자되고 있다. 그가 이끄는 라팔루사도 지난해 70억달러의 이익을 냈다. 28억달러를 환율 1,000원으로 환산하면 2조8,0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테퍼 회장은 경기침체에 따른 금융위기로 미국 대형 은행주가 페니스탁으로 급전직하하던 당시 시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 주식 등을 주워 담았고 당시 미친 짓 같았던 그의 ‘기행’은 결국 월가에서도 드문 ‘대박’을 치는 결과를 낳았다.
테퍼 회장은 지난해 12월 월스트릿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서 “나 혼자만이 대형은행 주식을 샀으며 경쟁자는 아무도 없었다”며 “아무도 이들 은행주를 사려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겁도 나고 외로웠었다”고 말했다.
많은 한인 투자자들도 당시 이들 대형 은행주에 투자하지 않은 것을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당장 국유화될 것처럼 보였던 이들 은행에 투자할만한 강심장을 가진 투자자는 없었다. 일각에서는 그의 이 같은 투자를 ‘도박’에 비교하기도 하지만 그가 이 같은 투자결정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투자하는 업종과 기업에 대한 철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6일 아이비은행(Innovative Bank)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의해 강제 폐쇄조치를 당하고 중앙은행에 인수된 후 아이비은행의 한 한인 주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주주는 지난 2005년 투자그룹 ‘오클랜드 벤처’가 기존 뱅크오브오클랜드 인수를 위해 한인사회를 상대로 주식 공모를 할 때 주위의 권유로 20만달러를 투자했었다.
오클랜드 벤처는 이같이 한인들로부터 3,290만달러를 공모, 뱅크오브오클랜드를 인수했고 행명을 아이비은행으로 바꿔 2005년 7월1일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이 주주는 “살고 있는 집의 라인오브크레딧을 뽑아 은퇴를 위한 장기 투자 명목으로 매입했었다”며 “당시에는 집값이 매년 10%~15% 뛰고 있는 상황이어서 재산증식의 좋은 기회로 생각했었기 때문에 은행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주주의 다음 질문이 충격적이다. 이 주주는 “다행히 중앙은행이 인수를 해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괜찮겠지요?”라고 물었고 기자가 “예금주는 100% 보호되지만 주주가 갖고 있는 주식은 휴지조각이 될 것”이라고 답해주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중앙은행 관계자도 수명의 주주들로부터 비슷한 종류의 질문을 받아 설명을 하는데 진땀을 뽑았다는 후문이다.
은행의 지주사인 이노베이티브뱅콥이 발행한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던 약 160명의 한인 주주들은 이렇게 하루아침에 보유했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분노와 허탈감에 빠져 있다.
연방정부의 5개 은행 감독기관중 하나로 미국 내 8,000개 은행들에 대해 예금보험을 제공하는 FDIC의 비공식 모토는 ‘시민의 예금 1센트가 투자자의 100만달러보다 소중하다’라는 것이다. 투자자는 미래의 수익을 기대하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투자를 하지만 시민들이 맡기는 예금 1센트는 언제라도 다시 찾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100% 안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고객의 예금을 예치 받는 은행은 정부의 감독과 규제를 가장 강도 높게 받는 업종이다. 한인은행 관계자는 “은행 인건비의 최소한 30%는 고객 서비스나 마케팅이 아닌 정부가 요구하는 각종 법규와 규제를 준수(compliance)하는데 투입된다고 보면 된다”며 “은행이 예금을 받지 않는다면 현재 받고 있는 규제의 90% 이상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투자자의 돈으로 금융 사업을 하는 팩토링 회사나 파이낸스 회사들은 실적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등 정부 규제는 상대적으로 전무한 상태다.
앞서 기자가 아이비은행 주주를 거론한 이유는 미국에서 은행에 대한 투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을 기해야하고 투자자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 업종이다. 물론 이는 은행뿐만 아니라 어떤 업종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칙이기도 하다.
특히 2008년 경기침체가 시작된 이후 한인은행을 포함한 은행권에 대한 투자는 투자자들의 날카로운 분석과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투자가 요구된다. 반면 은행들은 투자자가 조금만 공부를 하면 그 어떤 업종보다도 각종 자료가 많이 공개돼 있고 회계도 투명하다.
아이비은행 주주들이 지난 2~3년간 아이비은행의 수익현황, 자본비율과 자산건전성, 부실대출 규모 등 공개된 몇몇 자료만 공부했어도 은행이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었는지를 감지했을 것이다. 투자자가 ‘대박’을 칠지 ‘쪽박’을 찰지는 전적으로 투자자의 몫이다.
조환동 /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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