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작가 문희정은 밝고 쾌활하고 잘 웃는다. 얼마전 종영된 ‘그대 웃어요’의 인물들처럼… 생각보다 젊고 꾸밈없이 소탈한 그녀는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는 한국 방송계에서 ‘착한 드라마’도 시청률이 나온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착한 작가’다. ‘천국의 계단’‘발칙한 여자들’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로 미주 한인들과도 친숙한 그녀, 특별히 최진실과 절친해 세간의 이목을 모았던 그녀가 과테말라 선교 다녀오는 길에 LA를 방문했다.
과테말라 선교여행 마치고 LA 방문
후원아동 보며 특집 드라마 구상
친했던 최진실 그리며 ‘…웃어요’ 집필
“아주 뜻깊은 선교여행이었습니다. 후원하고 있는 아이의 가족도 만나고, 이야기 소재도 하나 건졌으니까요. 기회가 되면 키다리아저씨 주제의 러브스토리를 하나 쓰고 싶어요. 후원하던 사람과 후원 받던 아이가 훗날 과거의 관계를 모른 채 사랑에 빠지는 거죠. 크리스마스 특집극 같은 기획드라마로 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재벌과 신데렐라, 출생의 비밀과 불륜 등 비현실적인 막장 드라마만 요구하는 한국방송계에서 착한 드라마로 서바이브 해온 그녀는 “사람들이 지금 보고 싶은게 무언지를 찾아내는 ‘시대적 감’에 따라 작품을 쓴다”고 말한다.
“요즘엔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갈등 스토리에 식상하기 시작해 따뜻한 이야기로 추세가 변하고 있다”고 지적한 문 작가는 “‘그대 웃어요’를 쓸 때는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다들 힘든 것 같아서 가난해도 괜찮아, 힘들어도 괜찮아, 상처 있어도 괜찮아, 가족이 있으면 되잖아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내가 시청자들께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지만, 돈도 드릴 수 없고 환율을 떨어뜨리지도 못하지만, 웃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았거든요”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과 최진실에 관해 물었다. 의외로 길고 격렬하고 안타까운 이야기가 눈물과 함께 줄줄 흘러나왔다.
“정말 많이 사랑받은 드라마고, 시즌 2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최진실이 굉장히 좋아했죠. 자기가 먼저 시즌 2 하겠다고, 해야 된다고 주장했어요. 진실이는 ‘장밋빛 인생’으로 드라마 복귀에 성공했지만 그건 ‘아줌마’ 느낌이었고 ‘내 생애…’는 주부 트렌디로 썼기 때문에 젊은 느낌이었으니까요. 오래전 히트했던 ‘질투’와 같은 컨셉이었고, 나이 들어도 할 수 있어, 하면서 너무 즐거워했어요. 그런데 기획안 나오고, 시놉시즈가 나와서 그걸 전해준 날, 너무 재미있다고 좋아하던 날, 그날 죽은거에요. 그날도 전화 통화하며 위로했었는데…”
그때부터 몇 달 동안 글을 못 쓰고 슬럼프에 빠졌다고 한다. “그냥 인생이 너무 슬프고, 더 잘 해주지 못한게 미안하고, 위로해주지 못해서 후회되고, 진실이가 몇 번이나 놀러가자고, 함께 여행가자고 졸랐는데 글 쓰느라 이것만 끝나고 이것만 끝나고를 반복하다가 못 간게 너무도 한이 돼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데 최진실이 평소 하던 말이 갑자기 떠오르더란다.
“문작가님, 우리 뒤에 누가 있는지 절대 잊어버리지 말아요.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시청자들이고 팬들이야. 그러니까 절대 잊지 말고 시즌 2는 팬들과 함께 해요. 팬들을 초대해 파티부터 하고 시작해요”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생각나면서 그래, 내가 그 약속을 지켜야지 하는 생각에 문희정은 다시 일어났다. 그 영향으로 ‘그대 웃어요’가 나왔고, 이 드라마는 최진실과 시청자들에게 쓴 글이라고 그는 고백했다.
문희정은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늦깎이 작가다. 숙명여대에서 첼로를 전공했으나 “요요마가 연주하는걸 보고 1학년 때 진작에 포기했다”는 그는 졸업후 한때 열심히 탁아소를 경영했으나 결혼하면서 그 사업도 접었고, 심심해서 드라마를 열심히 보던 중 방송작가협회에서 하는 드라마 토론 아카데미에 참석했다가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됐다.
처음에는 칭찬받는 것이 좋아서 열심히 썼는데 송지나 작가(모래시계)가 ‘카이스트’를 함께 해보자고 해서 그 팀에 합류한 것이 작가 데뷔가 됐다는 그녀는 “조금 배우고 갑자기 드라마 작가가 된 것이 아쉽지만 쓰는걸 워낙 좋아해 바쁘게 많이 썼고, 언제나 신나하면서 글을 썼다”고 말하고 “드라마는 쓰면서 배우는 것이라, 열심히 많이 쓰면서 계속 배우고 싶다”며 20년쯤 후에는 김정수 작가나 김수현 작가처럼 많은 내공이 쌓인 파워풀한 글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정숙희 기자>
“작가는 많이 쓰는 사람일 뿐 한국사람은 모두 다 작가”라고 말하는 문희정 작가.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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