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안녕하고 말할 때 그는 안돼! 하고 와락 붙잡았다. “난 당신 싫어.” 여자가 말했다. 그말에 그는 자기 가운데 손가락과 엄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어 여자 이마에 탁 튕겼다. 아얏!
“이런 인정머리 없는 사람.” “자기 말 안듣는다고 손가락으로 그렇게 이마를 찍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딨어?” “아프지 안잖아?” “아파.” “아파? 그럼 안그럴께 제발 가지마.” “놔. 붙잡지 마.”
그러나 그 여자는 갔다. 자기를 돌아보고 혓바닥을 한번 쑥 내밀더니 그렇게 총총히 가버렸단다. 그는 나하고 만난 지 얼마 후에 오래 전 한국에서 있었던 그 여자 얘기를 아이들 장난같이 그렇게 말하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나하고 3년을 살다가 일꺼리가 자꾸 줄어들자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잡일을 하고 있다는 친구하고 한참 전화하더니 돈벌어 오겠다고 그곳으로 갔던 것이다.
그 겨울이 가고 봄이 왔을 때 그이한테 장문의 편지가 왔다. 혼자 지내는 긴밤이 무척이나 외로웠나 보다. 그는 잘 지내고 있다고 그러면서 딸아이 미영이를 잘 챙기라는 말로 이만 총총하고 끝을 맺었다. 건성으로 나에 대한 배려는 한마디도 없이 생뚱맞게 거듭거듭 의심이 가고 화나는 미영이 얘기만 잔뜩했다.
그가 나한테 실망을 준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아무리 그냥 그렇게 서로 살면서 눈치 보지 않고 적당히 사는 미국이라지만 그가 하는 것은 나를 언제나 불안하게 했다. 어느날 새벽 기도하러간 사람이 난데 없이 핏덩이 같은 갓난아기를 안고 집에 왔다. 교회앞에 아기가 앙앙 울고 있길래 생각도 안하고 그냥 안고 왔다는 것이다. 누가 증인이 있느냐니까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기도차지 않았다. “이 아이 눈을 봐. 완전히 한국 아이잖아? 분명히 한국 아이인데 어떻게 신고해? 그러면 분명히 외국인 손으로 넘어가잖아.” 그 아이가 지금 데리고 있는 3살된 딸아이였다. 나 역시 한국에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미국으로 입양되었기 때문에 한국 아이라고 덥석 안고온 그사람 마음을 알 수 있지만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일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꼬투리도 없는데 무작정 의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하나님 앞에 억지로 감사하다는 기도밖에 드릴 수 없었다. 가끔 골이 빠게지도록 상식적으로 이해 안되는 여러가지 괴로움을 당할 때 그래도 나를 지켜주는 것은 내가 가진 작은 믿음의 위안 뿐이었다.
그의 이름은 쪽발이 이름 같은 마사오다. 부산이 고향이라는데 혹시 광복동을 은근히 주름잡던 오야봉 아니면 일본 야꾸자? 그러나 아니란다. 원래 성이 마씨고 이름은 순 한국식으로 사오였다. 이름과 비슷하게 그는 양처럼 순한 남자였다. 그런데 기절초풍할 일은 얌전한 성품과 달리 그의 허리둘레에 빨간 장미꽃이 그것도 화려한 꽃다발을 무더기로 문신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서 이게 뭐냐니까 그냥 씩 웃었다. 안녕! 하고 떠나간 그 여자 이전에 자기가 진짜 사랑한 첫사랑이 있었는데 그 여자가 남겨준 멋진 기억이란다. 그가 사랑하는 첫사랑 여자에게 어느날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기 위해 만나기로 했는데 그가 빨간 장미꽃 백송이를 들고 기다리는 동안 자기를 만나려고 오던 그 여자가 그시간 버스속에서 불이나서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다른 승객과 함께 안타깝게 죽고 말았단다.
너무 애통하고 안타까운 나머지 꺼이꺼이 울다가 그 여자를 한평생 꼭 끼고 살겠다고 자기 허리둘레 가득히 장미꽃 다발을 그렇게 문신으로 화려하게 새겨 넣었다는 것이다. 갓난 아이한테 자기가 지어준 미영이라는 똑 같은 이름을 가진 그 여자 말을 할 때 그는 갑자기 무언가 다른 중요한 얘기를 할듯이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냥 픽 웃으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노스 캐롤라이나로 떠난 다음 달부터 그는 매달마다 은행으로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내주며 가끔 전화도 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하면 내가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나는 입양된 내 자신의 어떤 의식 때문에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해서 일절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아, 있다. 딱 한번 내가 무슨 말끝에 한국에서 어떤 생활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물으면 누구나 자기 집에 금송아지 한 두마리 있다고 하지.” 하고 웃었다. 금송아지라고 하면 진짜 송아지만큼 큰 금덩어리를 떠올렸지만 내가 차이나타운에서 목걸이용 조그마한 순금 금송아지를 하나 사고부터 그런 개념은 없어졌다. 그러나 그는 솔직히 내가 먼저 프로포즈 할만큼 좋아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금송아지만큼 큰 금덩어리와 진배없었다.
그날 새벽일찍 뜻밖에도 룸메이트하는 그의 친구가 전화를 했다. 지금 뭐라는 거야? 무슨 소리야?! 갑자기 빨간 전화통이 살아있는 듯이 내 눈앞에서 벌떡벌떡 숨을 쉬고 있었다. 한국에서 수배된 인터폴에 걸려 경찰에 잡혔는데 곧 송환될거란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면사포만 쓰지 않았을 뿐 나하고 정식으로 결혼하고 영주권도 얻었는데 사람많은 곳을 가지 않으려고 자꾸 피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동안 겪은 마음의 고통은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데 꼭 죄값을 치뤄야만 하는가?
나는 그날 밤 딸아이와 함께 노스 캐롤라이나 행 비행기를 급히 탔다. 이제가면 미국에는 다시 못올 사람. 인정많고 사랑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찬 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한번 마주보고 싶었다. 나는 그사람이 감사하다는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났다. 내가 갖지못한 아이까지 하나 선물하고 내가 전도해서 예수믿고 온전하게 거듭난 사람. 그래, 그가 출소할 때 내가 딸아이와 함께 한국나가서 살면되지. 얼마나 가고싶던 한국이더냐. 나는 은빛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비행기 구석에 앉아 눈물 때문에 무지개색으로 쭉 뻗은 빛다발 속에서 상상의 날개를 자꾸자꾸 펄럭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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