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12년부터 시행될 재외 한인의 한국 선거 참여를 보다 용이하게 하기 위한 선거법 개정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선거에서 해외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이 어떻게 투표에 참여하는지가 궁금해졌다.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부재자투표 방식을 통해 이뤄지고 있음을 알았다. 국방부 산하의 ‘연방 투표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미국인들이 부재자투표를 통해 국내 선거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절차를 보장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국방부일까. 내친 김에 그 근거를 찾아봤다. 1986년 제정된 ‘해외 부재자 투표법’(UOCAVA)이란 게 있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서명한 이 법이 세계 여러 곳에 파견돼 있는 미군 장병과 그 가족, 그리고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미국 시민권자, 그리고 해외 장기 여행 또는 출장 중인 유권자들의 투표권이 제대로 행사되도록 총괄적으로 규정한 법령이었다.
미국판 ‘재외국민 투표법’이라 할 수 있는 이 법의 배경에는 해외 파견 장병들의 투표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을 연방 국방부 산하에 설치하도록 한 법률이 있었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 법이 생긴 게 1955년이었다. 그리고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의 해외 투표 권리 및 절차를 보장한 법은 1975년에 제정됐다.
1986년의 해외 부재자 투표법은 이 두 가지 법이 합쳐져 개정된 결과였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일반인들의 해외 부재자 투표를 돕고 지원하는 기능이 국방부 프로그램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 사이에 투표권 행사에 있어 법적 차별을 철폐한 1964년의 ‘민권법’, 그리고 소수계가 투표 과정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보장한 1965년의 ‘투표권리법’이 미국 민권사의 역사적 분수령으로 우뚝 자리하고 있다. 미국의 해외 부재자 투표 관련 법령이 완전하게 정비된 것은 이 같은 역사적 시기를 통과하며 30여년의 세월에 걸쳐 이뤄진 과정의 산물이었다는 결론이 가능할 것 같다.
미주 한인을 포함한 해외동포들에게 한국 선거 투표권이 부여되는 역사적 이정표가 세워진 것이 지난해 초였다. 해외 한인 선거권 제한에 대한 미주 한인사회 단체들의 헌법소원 제기 등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 그동안 무시돼 왔던 귀중한 권리를 찾게 됐지만, 오는 2012년부터 가능해지는 실제 투표권 행사 과정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각 지역 총영사관 등 재외 공관에서만 선거인 등록과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미국에서만 100만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한인 선거권자들이 실제 투표에 참여하는데 불편하기 짝이 없을 거라는 불만들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미국식 부재자투표와 비슷한 우편투표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던 것도 그 맥락이다.
그러나 실제 법을 만들고 고치는 한국 정치권의 속내는 간단하지 않다. 미국의 선거 문화와는 다른 한국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우편투표가 매우 제한적으로만 허용되고 있는 한국과의 형평성 문제로 그렇거니와, 부정 시비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내세우는 명분이 어떻더라도 속으로는 정치적 계산기 두드리기에 바쁜 게 정치권의 생리다. 여당은 소위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해외 한인들이 투표에 많이 참여할수록 유리할 거라는 생각에 우편투표를 하고 싶지만, 한 건이라도 해외 투표의 부정시비가 나왔을 경우 선거판 전체가 깨질지도 모를 혼란을 우려하고 있는 눈치다.
미국의 경우를 한국의 상황에 등치시키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미국에서도 해외 부재자투표 정비에 30여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3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지금의 상황을 해외 한인 참정권제 정착을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 합리적이고도 효율적인 대안을 단계적으로 강구해나가는 접근법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꼼꼼히 시간을 두고 연구하면 해외 한인 유권자들이 투표지를 공증해서 직접 한국의 해당 선관위로 보내는 방법 등 합리적이고도 효율적인 대안이 강구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나와 있는 순회투표제 아이디어 같은, 현실적으로 관철 가능한 것부터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차근차근 개정을 요구함으로써 실리를 거두는 전략적 스탠스를 취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김종하 /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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