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네상스 예술기행 - (3) 토스카나 소도시들
이탈리아는 나라 전체가 미술관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피렌체는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미술관’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어딜 가든 수백년 된 건축물들이 서있고, 성당마다 미술책에서 보았던 그림과 벽화, 조각품들이 걸려있는 곳, 굳이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도시의 모든 곳에서 골목과 집들, 상점과 식당 구석구석에서 예술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집집마다 현관문 하나가 같은 것이 없고 손잡이며 창문의 장식 하나에도 디자인이 숨어있었다. 심지어 남녀 화장실을 구분하는 그림들마저 각자 얼마나 독창적이고 유머러스하던지… 과연 여기서 태어나 매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화유산이니 예술이니 하는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작품이었다.
성벽에 쌓인 마을 전체 세계문화유산
시에나 캄포광장 중세 아름다움 간직
고즈넉한 ‘산 지미냐노’ 탑으로 유명
길과 바닥도 아름다웠다. 엿새 동안 이리저리 훑고 다닌 수많은 골목길들은 오래된 도시가 그렇듯 아주 좁고, 자로 그은 듯 직선이 아니라 조금씩 비뚤 빼뚤해서 마음이 편안했다. 바닥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모두 돌인데, 비슷한 크기의 돌을 맞추고 이어 붙여서 길을 만든 그 자연스러움이 굉장히 좋았다. 뭐랄까, 이 사람들은 억지로, 일부러, 완벽하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점을 보게 된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을 더 완벽하게 보이려고 끝까지 다듬지 않는 마음이… 이 광활하고 멋없는 미국, 어디든 크고 넓고 뻥 뚫린 직선의 도시에서 직육면체의 삶을 살다간 여행자의 눈에 이탈리아인들의 미적 감각은 멋과 일상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피렌체에 도착한 날은 다음날은 부활절 일요일이었다. 이날 두오모 대성당에서는 유명한 불의 축제와 함께 부활절 미사가 열리기 때문에 우리는 인파가 몰리기 전 자리를 잡기 위해 일찍부터 서둘렀다. ‘우마차의 폭발’(Explosion of the Cart)이라고 불리는 부활절 축제는 메디치가의 라이벌이었던 파찌(Pazzi)가문의 500년 된 행사로, 십자군 원정 때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3개의 성물부싯돌로 점화한 불을 비둘기가 품고 날아가 화약을 터뜨리는 축제다.
오전 11시, 지오토의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드디어 축제가 시작됐다. 성당에서 점화한 비둘기가 쏜살같이 날아가 수많은 화약을 장착한 파찌 마차(높이가 30피트로 엄청 크고 화려하다)에 불을 붙이자 그로부터 20분동안 쉬지 않고 폭약이 터지고 흰색 불꽃이 작열하면서 성당 주변과 내부는 물론 도시 전체가 엄청난 양의 흰 연기로 자욱하게 뒤덮였다. 대낮에 벌어지는 불꽃놀이의 화려함은 보지 않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곧이어 부활절 미사가 시작됐고 우리 중 가톨릭 신자였던 두사람이 사제들로부터 직접 성체를 받았다. 이들의 감격이 어떠했을지는 말 안해도 될 것이다. 이제껏 방문한 성당들은 모두 박물관으로 변해서 본래의 기능을 잃은 모습이었는데 이날 두오모 대성당에서 실제로 진행되는 미사에 참석한 것은 우리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남겼다.
다음날은 이탈리아의 큰 공휴일이어서 거의 모든 기관이 문을 닫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 택시를 대절해 피렌체 밖으로 나갔다. 토스카나 지방에 위치한 3개의 중세도시 피엔자, 시에나, 산 지미냐노를 돌아보고 유명한 와인생산지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2개 와이너리(Banfi와 Altesino)를 방문했던 것이다. 세 도시는 모두 언덕 위 옛 성벽들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천년의 고도들로, 베네치아와 피렌체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1996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피엔자(Pienza)는 1458년 이곳 출신의 교황이 이상적인 르네상스 모델 도시를 만들기 위해 건축가를 고용해 설계한 작은 마을로, 교황이 죽자 미완성의 소도시로 남았지만 르네상스 건축의 걸작인 팔라쪼 피콜로미니(Palazzo Piccolomini)는 당시 교황의 거처가 어떠했는지 살펴보게 해준다.
적갈색 고딕건물들이 즐비한 시에나(Siena)는 중세기 피렌체와 심한 경쟁관계였던 공화국이었는데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 2가 죽음으로써 역사 속에 묻힌 도시다. 이곳의 캄포광장은 약간 우묵하게 파인 거대한 조개모양으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세 광장으로 꼽힌다.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 역시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로, 제후들이 힘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수많은 탑들(78개였으나 현재 14개가 남아있다)로 유명하다.
열흘의 여행에서 우리가 보고 겪고 방문한 것은 신문이라는 한정된 지면에 도저히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또 쉴 새 없이 찍은 사진들을 다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도 얼마나 큰지. 하지만 모든건 조금 모자라고 아쉬워야 좋은게 아닐까.
이 여행은 우리가 최대한 많은 예술과 만나도록 전체 일정을 계획한 메이 정씨가 없었다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여행이었다. 또한 여행 내내 거액의 공금과 재정을 맡아 살림을 꾸려준 김승애씨와, 복잡한 베네치아와 피렌체의 지도를 사명감을 갖고 읽어냄으로써 우리의 발길을 인도한 크리스티나 정씨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시에나 캄포광장. 가장 아름다운 중세 광장으로 꼽히는 이곳은 늘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탑의 도시 산 지미냐노. 중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메디치… 피렌체의 영원한 이름
지난 주 여행기를 ‘자세히’ 읽었다면 ‘메디치 가문’이란 단어가 여러번 등장하는 것을 주목했을 것이다. 메디치(Medici) 패밀리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피렌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5세기초부터 약 300년간 피렌체 공화국의 역사를 주도해온 메디치 가문은 은행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고 통치권까지 장악했던 사실상 왕족이나 다름없는 가족이다.
역사상 그런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린 가문은 수없이 많지만 메디치가 특별했던 것은 예술에 대한 후원 때문이다. 이 가족은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도나텔로, 라파엘로, 브루넬레스키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하여 메디치 궁에는 늘 천재들이 모여들고 거주하면서 작품을 남겼다. 르네상스가 피렌체에서 시작되고 약 60년 동안 전성기를 꽃 피운 것은 절대적으로 메디치 가문의 공이다. 메디치 가문은 교황도 2명 배출하고 피렌체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1743년 마지막 딸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가 사망하면서 대가 끊기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메디치가의 모든 유산을 피렌체 공화국에 기증함으로써 당시 왕족과 귀족들만의 소장품이었던 예술품들이 다른 나라보다 2세기나 앞서 일반에 공개되는 역사도 만들었다.
메디치가의 콜렉션이 얼마나 엄청났던지 회화작품들은 방대한 규모의 우피치 궁전에 전시돼있고, 조각과 부조들은 바르젤로 궁전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모든 고대유물은 고고학 박물관으로 옮겨졌다. 그뿐 아니라 메디치 궁전과 피티 궁전, 산 로렌조 성당에도 각각 엄청난 양의 예술품이 장식돼있으니 세상 어떤 왕궁이나 가문도 예술의 후원과 보존에 관한 한 그들의 업적을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피렌체에는 메디치의 후손이 살고 있지 않지만 그 이름은 인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영원히 남을 것이다. 정말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메디치 가의 조각 콜렉션을 전시한 바르젤로 뮤지엄. 내부는 촬영이 금지돼있다.
<글·사진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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