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서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건축과 조각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동안 책에서 사진에서 영화에서 수없이 봐왔던 조각과 건축들은 실제로 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몇배, 아니 몇백배는 더 아름다웠다. 조각과 건축은 입체물이기 때문에 입체로 보아야만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 지극히 당연한 얘긴데도 실제로 가서 보기 전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현장에 서있을 때의 압도적인 규모와 위용, 주변 건물들과의 조화 같은 것은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이건 마치 다른 작품을 보는 것처럼 감동적이었다.
미켈란젤로·도나텔로·지오토… 거리 곳곳 ‘거장의 숨결’
피렌체 상징 ‘두오모 성당’ 정교한 조각과 화려함에 압도
특히 미켈란젤로와 도나텔로의 조각들은 어찌나 강렬하고 격동적인 에너지로 보는 사람을 휘어잡는지, 그 깊은 영혼의 예술적 파워는 500년 세월이 흘렀어도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모양이었다. 꽃의 성모마리아 대성당(두오모)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골목길을 벗어나 광장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내 앞에 떡 버티고 선 대성당을 만난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엄청나게 크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성당의 위용은 어이가 없었고, 건축물을 보고 그런 감격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좀 어지러울 정도였다. 수많은 색깔의 대리석으로 정교하게 장식한 그 엄청난 석조건물은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이었고, 거기 곳곳 저 높은 꼭대기에까지 올라선 수많은 조각들이 세월의 흐름에 조금도 지치지 않고 서있는 모습은 감동을 넘어서 경이로웠다.
지나친 감격이 왠지 무안했을까, 나는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도대체 이태리 사람들은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조상들은 1,000년 전에 이런 건축을 짓고 2,000년 전에 저런 조각들을 만들었는데, 그 후손들이 지금 빽이나 만들고 옷이나 디자인 한단 말이야?”
피렌체에서 우리가 방문한 미술관과 성당(대부분 뮤지엄으로 변했다)들은 다음과 같다.
▲두오모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l Fiore): 피렌체의 상징인 대성당으로 브루넬레스키가 지은 둥근 돔이 유명하다. 바사리의 프레스코 천장화 ‘최후의 심판’이 있다.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 두오모의 세례당. 1402년 청동문 제작 공모전에서 라이벌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 경쟁했던 유명한 ‘천국의 문’을 볼 수 있다.
▲지오토의 종탑(Campanile di Giotto): 두오모 바로 옆에 지오토가 설계한 높이 89미터의 종탑으로 414개 계단을 매일 하루 수백명의 관광객이 오르내리고 있다.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 이탈리아 최고의 미술관으로 메디치 가문의 컬렉션 중 회화작품들을 소장한 곳이다. 지오토, 다빈치, 보티첼리, 라파엘로, 티치아노 등 45개의 전시실에 엄청난 양의 미술품이 걸려 있어 제대로 구경하려면 하루가 모자라다.
▲바르젤로 미술관(Museo Nazionale del Bargello): 로마시대와 르네상스 조각품들이 모여있는 국립박물관으로 도나텔로의 ‘다비드’와 미켈란젤로의 ‘바쿠스’, 두오모 세례당의 공모작이었던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의 부조가 전시돼 있다.
▲두오모 미술관(Museo dell Opera del Duomo): 조각 컬렉션이 많은 성당작품 박물관으로 도나텔로의 ‘성 막달레나’와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작품 ‘피에타’를 볼 수 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a dell Accademia): 1563년 설립된 유럽 최초의 미술학교로 현재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다비드’와 미완성인 4명의 ‘노예상’이 있다.
▲산타 크로체 성당(Basilica di Santa Croce): 단테, 갈릴레이,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등 피렌체 출신의 유명인들의 무덤과 기념비 276기가 있다.
▲파치 예배당(Cappella dei Pazzi): 산타 크로체 성당 옆에 브루넬레스키가 건축한 파치 가문의 예배당으로 치마부에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1966년 홍수로 손상)이 유명하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 마사치오의 ‘삼위일체’를 비롯한 뛰어난 프레스코 그림들이 있다.
▲피티 궁전(Palazzo Pitti): 피티 가문이 짓다가 파산해 메디치 가문에 넘어간 거대한 궁전으로 수많은 방들이 가족의 취향에 따라 각종 보석과 미술작품들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으며 당연히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이 가득하다.
▲보볼리 정원(Giardino di Boboli): 메디치 가문이 피티 궁전 뒤쪽에 조성한 엄청난 규모의 정원으로 아름다운 분수와 조각품들을 볼 수 있고 곳곳으로 숲과 가로수 길이 나있다.
▲산 로렌초 성당(Church of San Lorenzo): 메디치 가문의 전용 교회로, 두오모 돔을 얹은 예배당, 지하 가족묘, 브루넬레스키가 지은 옛 성물실, 미켈란젤로가 지은 새 성물실, 미켈란젤로가 계단과 책장까지 전체를 설계한 도서관 등 여러 곳으로 나뉘어있다.
써놓고 보니 정말 엄청나다. 6일동안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지, 아니 돌아다니기만 한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각기 수백 수천점의 회화, 조각, 부조, 벽화, 천정화, 석관들을 모두 다 감상했는지 믿어지지 않는데,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너무나 많은 부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나이에 뭘 어쩌랴. 그냥 그곳에서 그것들을 보며 꿈이냐 생시냐, 행복했던 순간들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었기를 바라는 수밖에.
어떻게 이곳들을 다 찾아다녔는지 궁금할 지도 모르겠다.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피렌체 시내 한 복판에 숙소를 얻으면 며칠 동안 지도를 들고 이곳저곳 걸어서 찾아다닐 수 있는 곳들이다. 우리가 일주일 동안 묵었던 집은 500년이 넘는 살비아티 가문의 저택(현 소유주는 디자이너 페라가모)으로 고풍창연하면서도 현대식으로 개조된 4베드룸 2층집이었는데, 얼마나 좋았는지(즉 얼마나 비쌌는지)는 지면상 생략해야겠다. 이 집을 중심으로 엿새동안 얼마나 걸었을지 역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토록 먹고 마셨는데도 체중이 불지 않고 돌아온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미술관들의 입장료는 일인당 5~10유로 정도 된다. 성당은 입장료를 받지 않지만 옆에 딸린 세례당, 종탑, 예배당, 도서관, 정원 등등은 모두 따로 돈을 받기 때문에 티켓 하나만 샀다고 해서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유명한 우피치와 아카데미아 같은 곳은 언제나 줄이 길어서 티켓을 당일 구입해 입장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몇달전 인터넷으로 예약해 두었다.
<정숙희 기자>
1296년부터 140년 동안 지은 ‘꽃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의 전면. 정교한 색 대리석과 수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른쪽이 지오토 종탑.
미켈란젤로가 80이 다 되어 자신의 장례비로 조각했던 ‘피에타’. 니고데모의 얼굴에 자신의 모습을 새겨 넣었으나 대리석 왼쪽 부분의 품질에 불만을 갖고 미완성 상태로 놓아둔 것을 훗날 칼카니가 막달레나를 조각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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