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무덤이 있었다.
무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그 석관은 조르지오 바사리가 조각한 작품인데, 그 안에 천재 예술가의 유해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 성당엔 갈릴레이도 있었고, 로시니, 마키아벨리, 단테 등 피렌체가 배출한 수많은 위인들의 묘와 기념비가 276기나 안치돼있었다. 도나텔로의 ‘수태고지’와 지오토의 ‘성 프란체스코의 임종’ 등 유명한 조각, 회화 작품들이 내부를 빼곡하게 장식하고 있는건 말할 것도 없고…
4월초의 열흘 동안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베네치아를 여행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7명의 여성들로 이루어진 우리 일행은 6개월 동안 계획하고 준비하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작품들을 물리도록 구경하고 돌아다녔다.
총 일정은 열흘이었지만 오며가며 하루씩 까먹고, 베네치아에서 이틀, 피렌체에서 엿새를 지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로마도 안 가고 밀라노도 안 가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 여행은 애초부터 15~16세기에 꽃핀 르네상스 아트만을 꿈꾸며 계획된 것이었다.
앤드류샤이어 갤러리에서 수년동안 아트 클래스를 수강해온 학생들이 메이 정 관장의 지도 아래 작년 10월부터 매주 두시간씩 르네상스 예술과 천재들과 건축에 대해 공부했고, 그렇게 공부한 작품들의 찬란한 실재를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림, 조각, 건축물을 실제 눈앞에서 보는 감격이란 표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한 친구는 프라리 성당에 걸린 티치아노의 ‘성모승천’을 보고 나서는 이 작품 하나를 본 것만으로도 여행의 보람이 있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마사치오의 ‘삼위일체’를 본 후 이론으로만 듣던 원근법을 눈으로 보며 이해했다고 감격했다. 우리는 파찌 예배당에 걸린 마사치오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이 1966년 홍수로 형편없이 훼손된 모습에 다같이 안타까워했고, 우피찌 미술관에서는 보티첼리의 황홀한 작품들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두오모 미술관에 전시된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작품 ‘피에타’를 마주하면서는 그 미완성의 절대적 아름다움 앞에서 아무도 감히 아무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부하지만 언제나 진리다. 공부했으므로 500년전 피렌체 공화국의 역사 속에서 숨 쉬던 천재들의 작품을 보며 쉴 새 없이 가슴이 벅찼고, 공부했으므로 엿새를 쉬지 않고 발이 부르트도록 다녔건만 아직도 미처 보지 못한 것들 때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베네치아와 피렌체 두 도시에서 입장권을 사서 들어간 뮤지엄과 건축물만 20군데가 넘고, 돌아본 성당만 10여 곳을 헤아린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으며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아파서 끙끙대기도 했고, 지오토 종탑의 414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갈 때는 허벅지가 끊어지는 것 같았지만, 꼭대기에 올라 피렌체 시내를 360도로 돌아보던 순간의 기쁨은 도저히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흔히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라고 부르는 꽃의 성모마리아 대성당에서 부활절 축제를 보고 미사를 가진 일도 내 생애 잊지 못할 몇 장면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또한 이탈리아 여행 하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듯이 하루 세끼 우리를 흥분시키고 황홀하게 했던 맛있는 음식과 와인들도 빼놓아서는 안 되겠다. 게다가 하루는 피렌체를 벗어나 인근 도시들을 돌며 와이너리도 2군데 방문했다는거! 절대로 빼놓아서는 안 될 ‘여행의 꽃’이었다고 본다.
이 벅찬 감동을 여행 첫날 베네치아에서 나는 한마디 부르짖음으로 요약했다. “나 오래 살아야겠어!” 정말 오래 건강하게 살아서 세상 곳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고 즐기고 감사하고 싶다.
여행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마침내 다녀온 지난 6개월은 정말 행복했다. 우리는 또 다시 공부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매일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내게 남은 시간들을 전반적으로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정숙희 / 특집 1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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