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는 1400년대 후반에서 1600년대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 동안 피렌체라는 작은 공화국에서 시작된 학문과 예술의 부흥운동이다. 중세 1,000년간 유럽을 지배했던 신(기독교) 중심 사고에서 인간 중심으로 사고의 대전환이 일어나면서 지적 열정과 예술적 창조력이 폭발적으로 분출됐던 시대였다. 이 시기에 피렌체는 너무나 많은 천재를 배출했는데 르네상스의 대명사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는 물론이고, 리피, 보티첼리, 라파엘로, 도나텔로, 보카치오, 단테, 마키야벨리, 건축가 지오토, 브루넬레스키, 기베르티, 바사리 등 도저히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천재들이 바로 옆집, 옆 동네 살면서 경쟁적으로 작품을 쏟아냈다.
지난해 10월부터 우리(메이 정, 김승애, 주숙희, 조경애, 크리스티나 정, 메이 김, 정숙희)는 르네상스 예술에 폭 빠져 그 역사적 배경과 회화·조각·건축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며 여행을 준비했다. 책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러 간다는 설렘은 우리를 모든 일상의 허접함으로부터 구원해주었고, 매달 적립하는 여행비만큼이나 기대감도 커져갔다. 그렇게 떠난 예술기행, 6개월의 기다림에 비해 믿을 수 없도록 빨리 흘러간 열흘의 이야기는 책 한권으로 묶어도 모자랄 만큼 쌓였지만, 핵심만 추려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쉼 없이 반짝이는 물결, 역동적이고 화려한 화풍 탄생
‘산로코 회당’ 틴토레토가 25년간 작업한 천장화 압권
‘산마르코 광장’ 둘러싼 화려한 대리석 건축물 인상적
전 세계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미국은 왜 남의 나라 지명을 베니스, 플로렌스, 이런 식으로 바꾸는지 모르겠다). 자동차가 한 대도 없고 모든 교통수단이 배로 이루어지는 이 도시는 가는 곳마다 물이 넘실댔고 물결이 반짝였다. 미로처럼 좁게 계속 이어지는 수많은 골목마다 모든 길은 물길이었고 어디에 가든 다리가 나타났다(다리가 400개가 넘는다고 한다). 호텔 문을 열면 바로 물이었다. 밤에 술 취한 사람은 그대로 빠지기 십상인… 도대체 이런 늪지대에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도시를 세웠을까, 우리는 이 베네치아의 특별한 매력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계속 “너무 너무 신기해”를 감탄하며 돌아다녔다.
물의 반짝임 때문에 베네치아에서는 ‘빛과 색채’의 감성적인 회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피렌체에서 선을 중심으로 한 이성적인 예술, 수학적 계산에 의한 질서와 균형이 중시되는 조각이 많이 발달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도착하자마자 짐을 던져놓고 처음 찾아간 곳은 ‘프라리 성당’이라고 부르는 ‘산타마리아 글로이오사 데이 프라리’(Santa Maria Gloriosa dei Frari) 교회. 거대한 고딕 양식의 이 교회는 고색창연하고 웅장하며 경건함이 물씬 풍기는 내부가 인상적이었다. 처음 방문한 곳이어서인지 공기마저 엄숙하게 느껴지던 분위기가 잊혀지지 않는 이곳에는 베네치아 회화의 거장인 티치아노의 묘와 기념비가 있고, 그의 걸작 ‘성모승천’(1518)과 도나텔로의 ‘세례자 요한’(1450), 벨리니의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1488)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들이 소장 돼있다.
그 다음 돌아본 곳은 ‘산로코 대신도 회당’(Scuola Grande di San Rocco)이었다. 병자를 위해 헌신한 성 로흐를 기리기 위해 16세기에 세워진 이 스쿠올라는 틴토레토가 25년 동안 무보수로 그린 56점의 천장화와 회화가 압권이다. 1층에 있는 ‘수태고지’ ‘이집트로의 도피’ 등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그린 대작들과 2층의 천장과 벽을 가득히 채운 성서 이야기의 그림들은 어찌나 격렬하고 역동적인지 경외감에 휩싸이게 된다. 특히 역작 ‘십자가에 달린 예수’(1565)는 따로 전시실이 마련돼 있을 만큼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극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천장화를 보느라 뻣뻣해진 목을 주무르며 다음번 행선지인 ‘아카데미아 미술관’(Galleria dell Accademia)으로 향했다. 이곳은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5세기에 걸친 베네치아 거장들의 미술을 총망라하여 시대별로 전시한 미술관으로 유명한데, 24개나 되는 방에 너무 많은 비슷비슷한 종교화가 계속 이어지는 바람에 그러잖아도 오랜 비행에 지친 우리는 서둘러 돌아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서 꼭 보고 싶었던 대표적 소장품인 조르지오네의 ‘템페스트’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명한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이 다른 미술관에 대여됐는지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쉬움을 남겼다.
하이라이트는 산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이었다.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찾는 곳으로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살롱”이라고 극찬한 이곳은 3면이 대리석 건물들에 둘러싸이고 한 면이 바다를 향해 열림으로써 화려하고 거대한 홀 같은 공간이 되었으며, 산 마르코 성당과 두칼레 궁전, 높이 99미터의 종탑과 500년 된 시계탑 등이 둘러서 있어 주위에 시끄러운 관광객들만 없었다면 마치 수백년 전의 딴 세상에 와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것 같았다.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혼합양식으로 지어진 산 마르코 성당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숨겨 들여온 성 마르코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9세기에 세워진 곳으로, 베네치아의 상징이며 이탈리아 4대 성당 중 하나로 꼽힌다. 유럽 최고의 건축물로 꼽히는 이곳의 2층에서 우리는 제한된 부분을 통해 전체를 조망할 기회를 가졌는데 황금색의 비잔틴 모자이크와 눈부신 벽화들, 120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온 네마리의 청동마상이 장관이었다.
저녁 무렵부터 내린 비 때문에 산 마르코 광장은 불빛과 물빛이 혼재되며 신비한 아름다움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식사 후 다시 광장으로 나와 늦은 시각까지 한 카페에서 라이브 뮤직을 들으며 커피와 디저트를 먹었다. 카페에 앉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했지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상에 빠져 누구도 값을 따지지 않았다.
다음날 유리공예로 유명한 무라노(Murano) 섬을 방문했다. 13세기에 유리제조법이 전해진 후 오늘날까지 섬 전체가 특화된 상품을 만들고 있는 이곳은 입으로 불어 만드는 공방과 유리공예품 상점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유리공예 박물관을 둘러본 후 샤핑에 눈이 먼 우리는 예정시간을 훨씬 넘기며 귀고리·목걸이 샤핑에 열중하는 바람에 레이스 공예가 유명한 인근 부라노(Burano) 섬과 헤밍웨이가 자주 들렀다는 토르첼로(Torcello) 섬을 방문하려던 계획이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대신 우리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과 산조르지오 성당을 방문했으며 페기 구겐하임 뮤지엄도 일별하고 돌아왔다.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는 대운하의 입구에 서있어 누구나 지나치며 바라보게 되는 베네치아의 상징적 건축물 중 하나로, 1630년 흑사병의 재앙이 그친 것을 감사하는 뜻으로 100만개가 넘는 목재기둥을 박아 세웠다는 바로크 양식의 성당이다.
이날 베네치아의 명물이며 세계 각국의 유명인사들은 모두 들렀다는 ‘해리스 바’에서 칵테일 ‘벨리니’를 마신 일과 리알토 다리 아래 노천식당에서 디너를 먹던 일들이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글·사진 정숙희 기자>
베네치아의 대표적 명소 산마르코 광장.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고 극찬했다는 곳이다.
대운하의 입구에 서있는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는 1630년 흑사병이 그친 것을 감사하는 뜻으로 100만개가 넘는 목재기둥을 박아 세운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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