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86살 까지 운전할 수있는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고 차량국 밖으로 나왔을 때, 올때 와는 달리 날씨가 활짝 개여 있었다. 나는 합심(合心)하여 기도 한 마누라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도 나와 같이 발이 묶여 살뻔했던 위기에서의 탈출을 반가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자동차에 올라 탔다. 차 뒷 창문을 통하여 멀어져 가는 DMV 청사를 뒤돌아 보았다. 그 어두컴컴한 분위기의 대기실과 칙칙한 색깔의 페인트 칠 때문에, 허름한 창고 같게 보였던 그 집이 오늘 따라 그렇게 멋있고, 예뻐 보일수 수가 없었다.
주차장을 빠져 나와 집으로 달려 가면서, 지난 날 홍수환이 네 번 쓸어졌다가 다섯 번 일어 나, 상대방을 때려 누이고 챔피언 벨트를 감고는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라고 소리 쳤듯이, 나도 차창문을 활짝 열고 "나 드라이브 라이센스 먹었어!" 라고 소리 치고 싶었다.
차량국에서 차츰 멀어 져 가면서 들뜬 내 마음은 냉정(冷情)을 되 찾아 가고 있었다. 가라 앉은 내 마음속에 지난 날 내가 이민 와서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던 그 날의 설래임이 되살아 나고 있었다. 이민 온 다음 해인 1977년 봄, 싼마테오(San Mato) 차량국에서 나는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치루기 위해 영어 답안지와 마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민 온지 반년도 안된 시점에서의 영어 시험지에 의한 일차 합격은 무리었다. 그래서 2차 시험에서 겨우 붙었다. 그리고 운전 실기시험(Driving Test)은, 내가 지난 날, 무용수업에서 딲은 발달 된 운동신경 덕분으로 단번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내가 난생 처음으로 자가용을 몰수 있게 된 그 순간, 내가 이민 올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자가용을 갖일 수 있는 사람이 가믐에 콩 나듯한 시절이 었기에, 내가 잘 못 왔다고 생각한 이민에 대한 후회를 다소나마 누그러 뜨리게 해 준 촉매제(促媒制) 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33년 동안 운전대를 잡고서도 단 한 번의 운전사고를 저지른 적이 없는 모범운전자였지만, 70살 이상의 운전면허 경신에 대한 엄격한 규제(規制)로 인한 스트레스는 나의 시원찮은 시력으로 인해 더욱 나를 옥조여 왔던 것이다. 게다가 만일에 내가 이번 경신에서 실패했을 경우, 이민 와서 지금까지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를 단 한 번도 타 본적이 없는 내가, 일상 생활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난감(難堪) 함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다고 이곳에는 한국처럼 거미줄 같이 얼힌 버스 노선(路線)이나, 지하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한 발자국만 집 밖으로 나가면, 마을 버스가 있는 것도 아닌 실정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하루의 시간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 가며 바쁘게 사는 자식들에게 우리의 운송(Ride)를 위해 그 때마다 시간을 내 달랠 수도 없는 현실에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나의 운전 중단은 곧 바로 나와 집사람의 정상적인 생활로 부터의 정지(渟止), 바로 그것과 직결 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기에, 이번 운전면허 경신시험 합격은 이런 막다른 길에 서 있는 우리를 동적(動的)인 생활 방향으로 길을 터준 결과였음이 분명했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를 동적인 생활 쪽으로 이끌어 내어 준 힘이 과연 어디에 있었던가 하고 말이다. 그건, 두 말할 것도 없이, 우리 집사람과 내가 절대자에게 매달린데 대한 응답(應答)이 었으며,둘째가 28번 창구의 그 나이 지긋한, 나와 피부색이 같은 그 분의 배려(配慮)였고, 그리고 다음이, 소위 교장선생의 내신서(內申書) 같은 나의 안과 주치의의 소견서와 평소의 나의 우수한 학업성적과도 같은 8년 무사고 운전기록(Driving Record) 그리고 본 고사(考査)에 해당 하는 100점 만점에 가까운 필기시험 점수가 주효(奏效) 했기 때문이 라고 생각 되어 지는 것이다.
한편, 이번 운전면허 경신 과정에서 내가 직면한 여러 형태의 시련의 굴다리를 뚫고 난 다음 내가 느낀게 있다면 그건, 우리가 사는 삶의 여러 모서리마다에서도 그렇듯이, 가혹한 시련 뒤에 얻어 지는 성취(成就)가 안겨 주는 환희(歡喜)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 5년 더 운전할 수 있는 차열쇠가 내 손에 쥐어 진 이 사실! 이 열쇠의 선물은 내 81살 생일에 안겨진 어떤 선물 보다 더 값진 황금열쇠 같은 것이라고 여기면서, 마음 속으로, 52년을 함께 살아 오면서 미운정, 고운정이 다 들어 버린 할멈을 옆 자리에 태우고,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지 우리 여생(余生)에 남겨진 세월을 가르며 달려 가 볼 거라고 다짐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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