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한국현대작가 도예전’큐레이터 융만 UCLA 한국미술사 교수
인터뷰를 하는 도중 그녀에게 “감사합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많이 빚 졌습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버글린드 융만(Burglind Jungmann, 독어 발음으로 부르글린트)은 UCLA에서 한국미술사(Korean Art History)를 11년째 가르치고 있는 교수다. 독일인인 그녀가 한국미술을 공부하여 미국에서 영어로 가르치는 것만도 놀랍고 감사한데, 그녀는 미국 내 대학, 아니 전세계의 대학에서 한국미술사를 가르치는 ‘유일한’ 교수라고 한다. 또 그녀가 집필한 두 권의 연구저서도 영문으로 기록된 유일한 한국미술 서적이라니, 우리에게 그녀는 너무나 중요한 존재다. 게다가 파울러 뮤지엄에서 오는 8월22일 개막될 ‘도자 속의 삶: 한국현대작가 5인전’(Life in Ceramics: Five Contemporary Korean Artists)을 큐레이트까지 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더 잘 알고 더 사랑하는 이 여성에게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일까.
한국 외 대학 유일의 한국미술사 교수
전통예술 우수성 글로벌 시각 재조명
한국문화 영향력 알리려 도예전 기획
또 놀라운 것은 “한국 미술이 아시아 미술의 중심”이라고 보는 융만 교수의 시각이다. 그녀는 한국미술을 중국미술의 아류로 보아온 일반적인 학계의 관점과는 달리 한국미술이 중국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특히 도예에 있어서는 12세기 때 성나라 사람들이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알고 일부러 수집했을 정도로 기술과 미적 감각이 앞서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의 차와 도예 문화는 임진왜란 때 히데요시가 한국의 도자기를 일본으로 가져가 발전한 것입니다. 히데요시가 전쟁 중에 한국 도자기를 가져간 이유는 그의 다도 선생이 한국 다기의 가치를 알고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었죠. 지금까지 한국 미술은 한국 내에서만 이야기되고 이해돼왔지만 이제는 세계 속에서 글로벌 시각으로 재조명돼야한다고 봅니다”
우리끼리는 한국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은 세계적이라고 우기지만, 세계 역사 속에서 중국미술의 변방 정도로 취급되는 현실을 당연히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닌 한 외국인이, 그것도 동양 문화권과 관계없는 서양인이, 한국미술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찾아내고 연구해 미국의 유수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점은 정말 감동적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런 시각을 갖게 됐을까?
“나는 유럽인이며 독일인입니다. 유럽의 나라들은 미술과 건축의 역사가 서로서로 모두 연관돼있지요. 이탈리아의 고대 문화, 프랑스의 고딕 건축 같은 사조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발전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유럽문화의 배경과 유럽인의 시각이 동아시아 각국 미술의 상호관계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했고, 연구하면서 그 속에서 빛나는 한국미술의 아름다움을 보게 했습니다”
한국미술사 교수니까 당연한 얘기지만 융만 교수는 한반도의 미술을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훤히 꿰고 있다. 불교미술과 회화는 말할 것도 없고, 장례와 묘지문화에 이르기까지 책을 두 권이나 쓰고 명문대에서 10년 넘게 가르친 그녀는 또한 도자기에도 관심이 많아 독일과 UCLA에서 세라믹 아트를 가르친 적이 있을 정도로 깊은 조예를 갖고 있다. 파울러 뮤지엄의 한국현대작가 도예전을 큐레이트 하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폭넓은 지식과 경험이 뒷받침된 것이다.
지금까지 융만 교수의 강의를 수강한 학생은 거의 1,000명. 그중 5명이 박사 코스를 밟아 1명의 박사를 배출했으며 또 한명이 이수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염원대로 한국미술이 세계 속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인정 받을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쉬고 싶을 땐 코리아타운에 간다는 그녀는 자신과 한국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했다.
“어떤 사람은 인연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내가 전생에 한국인이었다고도 해요. 난 그냥 한국이 좋아요. 한국문화의 모든 것이 편하거든요. 아마 감수성이 한창이던 18세 때 접한 문화라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운명이라고 해두죠. 그래서 결국은 UCLA교수가 됐으니까요”
독일서 고등학교 졸업 뒤 한국행
LACMA서 한국미술 큐레이터도
부르글린트 융만 교수는 독일 북쪽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심심하고 재미없는 곳이었다고 웃으며 전한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멀리 가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한국이었고, 1973년부터 74년까지 1년간 교환학생으로 서울에서 살았다. 연세대학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했고, 이화여대에서 동양화를 배웠으며, 인사동의 유명한 일중선생에게 서예를 배웠다. 그리고 태권도까지 배워서 검은 띠를 땄다고 하니 젊은 날의 독일처녀가 길지 않은 1년간 어지간히 한국문화에 흠뻑 빠졌음을 알 수 있겠다.
독일로 돌아온 그녀는 괴팅겐 대학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미술사와 중국학(81년 석사학위 취득)을 공부했고, 이어 대만의 푸렌 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했으며 바로 이 시기 서울을 다시 방문해 국립중앙미술관을 돌아본 후 한국미술사를 공부하기로 결심한다. 1983-84년 서울대학에서 한국미술사를 공부하며 조선시대 회화에 관해 연구한 그녀는 1988년 ‘회화에 있어 한국과 중국의 관계’를 고찰한 논문으로 동아시아 미술사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 논문은 92년 독일에서 출판됐다.
이어 융만 교수는 18세기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가 미친 일본 회화의 영향에 관해 연구하여 1996년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두 번째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화가들과 사신들’(Painters and Envoys)은 2004년 프린스턴대학 프레스에 의해 책으로 출판됐다.
“그때만 해도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한국에 대해 관심이 없던 시절이라 학위를 받으려면 한국미술사만을 해서는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한국 미술을 아시아 미술로 뭉뚱그려 다루고 있는 추세니까요. 그리고 독일에서는 박사학위를 2개 받아야 박사로 인정하기 때문에 한번은 중국미술, 또 한번은 일본미술과의 관계를 함께 연구해 한국미술사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하이델베르그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강의했으며 1999년 이후 지금까지 UCLA 교수로 일하고 있다. 동시에 99년부터 2003년까지 LA카운티미술관의 한국미술부 큐레이터(Adjunct Associate Curator of Korean Art)로 일하면서 당시 최초의 한국실 개관에 큰 역할을 맡기도 했다.
<정숙희 기자>
“내가 한국을 택했다기 보다 한국이 나를 선택했다”고 말하는 버글린드 융만 교수. 쉬고 싶을 땐 코리아타운에 가서 한국문화에 젖는다고 한다.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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