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 그가 죽었다. 그는 어리둥절 하면서 새삼스레 죽은 자기 모습을 멍하니 내려다 보았다. 어허, 내가 죽었구나! 아내와 딸아이가 죽은 자기 시신 앞에서 미친듯이 애절하게 우는 모습이 왜 그런지 그는 남의 일처럼 덤덤하고 아무렇지 않게 보였다. 세상을 하직하면서 연을 끊는 일이 다 그런지 순간적으로 자기 마음이 그렇게 변하는 것도 그는 하나도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갑자기 바람의 진동도 없이 지금 자기 몸이 공중에 떠서 아주 빠른 속도로 어딘가 가고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이 들었다. 강렬하고 빠른 빛다발의 색채속을 그는 눈알이 엇찔하도록 쏜살같이 빨려들어가며 아, 저기 가면 않되는데 하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리고는 마치 장대높이 하듯 두 다리를 뻗어 아슬아슬하게 높은 장벽을 간신히 넘었다. 여기저기 알 수 없는 광경이 삽시간에 지나갔다.
“빨리 들어가라니까!”
그때 별안간 너무 가까이 붙어서서 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얼굴이 험악하게 말했다. 그가 자세히 내려다보니 어디서 본듯한 남자 얼굴이 핏기 하나없이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그 옆으로 서너명의 남자와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울음을 참으며 지켜서있는 것이 금방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몸이 굳기전에 빨리 들어가라니까!” 그는 커다랗고 험한 얼굴이 시키는대로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아주 익숙하고 빠른 동작으로 남자의 품속에 쑥 들어갔다. 그리고 곧이어 모든 것이 캄캄해졌다.
뜨거운 물과 같은 강한 빛다발이 온몸과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는 수십만 볼트의 강한 전류에 자기 육신이 삽시간에 오그러들며 그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있는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팔 다리를 허우적거렸다.
“아니?! 아니, 살았습니다! 살았습니다!” 놀라서 고함을 지르는 사람의 말소리에 그는 눈을 번쩍 떴다. 여기가 어딘가. 내가 분명히 죽었는데?! 옆에 서있던 여자가 어스러질듯이 자기를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 “위원장님 깨어 나셨습니까?”나이들어 보이는 한 남자가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얼굴로 자기 이마에 연거퍼 입을 맞추었다.
그는 갑자기 방광이 아프도록 꽉차면서 금방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급히 상반신을 일으키며 말도 못하고 손으로 가리켰다. “어이, 김비서 빨리빨리! 빨리 모셔!” 김비서라는 사나이와 여자가 양쪽에서 황급히 부축했다. 자기 걸음걸이가 후들거렸다. “당신이 화장실에 가시겠다면서 일어서다가 갑자기 쓰러졌어요. 의사가 갖은짓을 다했는데 끝내 호흡이 끊기잖아요. 이제 살아났으니 됐어요. 됐어요.” 여자가 말하다 말고 다시 울먹거렸다.
비서라는 사내가 얼른 화장실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황급히 변기안에 오줌줄기를 떨어트리다 말고 왕궁같이 으리으리하게 꾸민 주위를 둘러보고 깜짝놀랐다. 무언가 이상하다. 아니, 저 얼굴! 한순간 거울속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그는 무서움에 자기도 모르게 두손을 번쩍 들었다. 아니, 저 사람이?! 목구멍이 턱막혀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무심코 나타난 뜻밖의 얼굴은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바로 북한인민 국방 최고 위원장 김정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번개같이 자기가 죽었던 사실이 깨달아지면서 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바로 북한인민 최고 위원장 김정일로 바뀌었단 말인가? 정말 큰일났다. 자기는 소말리아 부근에 반드시 대말리아라는 나라가 있을거라고 알고 있는 그 정도로 무지한 놈인데 이일을 어떡한다?
그는 한기처럼 후드득 몸을 떨며 침착하자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래, 침착해야 한다. 자기가 김정일로 바뀐 사실은 자기만 알뿐 이세상 누구도 모른다. 그는 밖으로 나가 비서에게 지금 저쪽에 누가 있느냐고 물었다. “인민군 총 정치국장 제1부 위원장님, 인민무력부장 위원장님, 인민군 차수 위원장님, 인민군 대장 위원장님, 당행정 부장님, 모두 다섯 분이십니다. 다른 위원장님 몇 분은 평소 가시던 평양 봉화진료소로 갔다가 지금 여기로 오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 인민군 어쩌고 하는 핵심 요원들 말만 들어도 그는 등골이 오싹하고 땀이 났다. 아무리 일인 독재라지만 서로 끈을 잡고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저 무서운 패거리 속에서 자기가 까딱 잘못하면 나중에 어떤 죽임을 당할지 모르겠구나. 아이구, 큰일났다.
그날 밤 그는 화장실에 가서 혼자 몰래 울었다. 보고 싶은 아내와 딸자식이 남한에 엄연히 있고 자기가 지금 살아있는데 어떡하면 좋으냐. 그러면서 문득 한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통일을 시키라는 하늘의 기회다. 이 몸이 일백 번 죽더라도 나라를 위해서라면 내 한 목숨 아깝지 않다. 가슴 맺힌 우리 민족의 억울한 한을 반드시 풀자. 그는 그 자리에서 확고히 결심했다. 갑자기 한꺼번에 통일이 이루어지면 봇물 터지듯이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나고 그야말로 난장판이 될 것이다. 우선 남북한 사람들이 빠른 시일에 마음대로 오갈 수 있게 하자. 그런 다음에 몇 달 사이에 김정일 내가 한국을 방문하고 모든 정권을 남한 대통령에게 일임한다는 폭탄적인 선언을 한뒤 그 자리에서 도장을 꽉 찍자. 그러면 충성스러운 괴뢰군 어느놈이 나한테 따발총 세례를 퍼붓겠지. 좋다. 죽는다 해도 나라가 통일만 되면 내 한목숨 어떠랴. 상관없다. 그가 막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화장실 문이 덜컥 열리며 아내라는 여자가 쓱 들어왔다.
“당신 정말 저의 남정네가 맞아요? 수상해!” “아니 여보! “ “여보라니! 어디서 듣지도 못한 남조선 말을 하고? 내가 짐작했던 대로야. 김정일 동지 탈을 쓴 당신은 누구야? 당신이 거짓뿌렁이 하는지 안하는지 이걸로 당장 알수 있어 이 요상한 괴물 받아랏 탕!” 그러면서 여자가 순간적으로 자기 가슴에 불을 뿜으며 총을 쏘았다. 악! 악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그가 놀래서 눈을 번쩍뜨고 일어났다. 여기가 어딘가? 아, 미국. 아이구 살았네.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데 말이야 아깝다. 그때 옆에 누워있던 자기 아내가 벌떡 일어났다. “당신 왜 나한테 여태까지 속였어? 우리가 나이먹어 재혼한 사이지만 결혼생활도 일년 넘었어. 그런데 철저하게 나를 속였어. 자가다 헛소리는 목속이는 법인데 당신 이제 알고보니 이북에서 온 간첩이지? 분명맞지? 오메, 나 못살아. 자수해요. 당신이 안하면 내가 당장 신고할꺼야 도둑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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