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오바마 대통령은 오하이오에서 날아온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암 생존자인 50세의 청소부 네이토마 캔필드가 무보험자로 전락하게 된 사연이 담겨있었다. 암 치료 후 10여년동안 재발이 없었지만 보험료는 계속 가파르게 인상되었다. 앤섬 블루크로스 의료보험의 개인 가입자인 캔필드가 지난 한해 지불한 보험료는 6,700여달러, 그 외에도 코페이와 처방약 등 의료비로 4,000여 달러를 더 부담해야 했다. 보험사가 지불한 캔필드의 의료비는 935달러에 불과했다. 그런데 12월 보험사는 다시 40% 보험료 인상을 통보한 것이다. 50여년전 자신의 부모가 손수 지었던 집을 팔지 않고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보험을 포기했다고 캔필드는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헬스케어 개혁안의 막바지 ‘유세’인 15일 오하이오 집회에서 오바마를 대중들에게 소개하기로 했던 캔필드는 지난주 병원으로 실려갔고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병상에서 의료비 걱정과도 힘든 투쟁을 벌여야 하는 캔필드와 또다른 수백만 캔필드를 위해 개혁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오바마는 강조했다.
그는 청중만이 아니라 개혁안 찬성을 주저하고 있는 민주당 하원의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들은 우리가 행동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용기를 내야한다” 개혁실현은 정치를 뛰어넘는, 올바른 국가를 위한 역사적 책임임을 그는 역설했다.
워싱턴의 현실은 다르다. 지난 14개월, 온갖 시각에서 사실과 분석, 파장과 예상, 두둔과 비판 등이 제시되어온 헬스케어 개혁안은 이제 심판대에 섰다. 앞으로 3~4일, 아마도 이번 주말까지는 죽든 살든, 결판이 날 것이다. 남은 것은 숫자 게임이다. 생사여부가 한두표로 갈릴 듯 아슬아슬한 상황이어서 한표 확보경쟁이 숨막힐듯 치열하다.
숫자를 움직이게 하는 우선 기준은 ‘역사적 책임’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다. 개혁안의 향방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그것이 최우선 관심사다. 특히 접전지역의 민주당 의원들에겐 정치생명이 달린 중대이슈다. 보수진영은 경고한다 : “낙선하려면 찬성표를 던져라”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의 달래기와 팔 비틀기도 장난이 아니다 : 부결되면 민주당은 집단적 무능으로 낙인찍힌다, 통과되면 개혁안 중 인기 조항들이 곧 시행되어 재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보험사 횡포가 규제받고 26세 자녀도 부모보험에 커버될 수 있다…
상당수 의원들이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17일 오후 현재 찬성측도 반대측도 아직 과반수 216표를 확보하지 못했다. 공화당이 부결에 필요한 민주당 반란표 38표 중 37표를 확보했다는 소문이 나돌긴 하지만 지난 하루이틀 사이 통과 낙관 분위기 또한 솔솔 감지되고 있다.
퍼블릭 옵션 빠진 개혁안은 절대 반대한다고 공언해온 데니스 쿠치니치의원이 오바마에 설득당해 찬성으로 돌아선 17일을 전후해 태도를 유보해온 5명 의원들도 잇달아 찬성 편에 섰다. 보수신문 월스트릿저널이 1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통과 지지가 46%로 반대 45%를 누른 것도 좋은 징조이며, 가톨릭수녀 단체에서 개혁안 지지를 촉구한 것 역시 ‘정부의 낙태지원 제한조치가 부족하다’며 반대해온 보수파의원들에게 찬성으로 돌아설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막바지 공방을 더욱 뜨겁게 달구는 것은 민주당이 보다 확실한 통과를 위해 새록새록 동원하고 있는 표결절차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엊그제 내비친 비장의 카드는 ‘자동발효 규정(self-executing rule)’이다.
하원은 본회의에 한 법안을 상정하기 앞서 어느 정도의 논쟁을 허용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룰(rule)을 통과시킨다. 그러니 보통대로라면 이번 주말 하원 본회의에선 먼저 룰을 통과시킨후, 상원안, 이어서 상원안 일부 내용을 변경하는 수정안을 차례로 통과시켜야 한다. 그런데 ‘수정안을 통과시킬 경우, 상원안도 통과된 것으로 간주한다(deem)’로 규정하는 ‘룰’을 통과시키면 상원안은 직접투표를 생략한채 자동발효 될 수 있다. 시간도 단축되고 중도파 의원들의 정치적 부담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다.
헌법에 대한 모욕이라고 펄펄뛰는 공화당도 다수당 시절 즐겨 쓰던 정식 절차 중 하나다. 가능한 수단의 하나로 슬쩍 띄웠을 뿐인데 찬반공방이 와글와글 시끄럽다.
4,700만 무보험자를 외면하고 보험료 40% 인상을 감수하며 중병 들면 보험에서 쫓겨나는 현행 헬스케어제도를 방치할 수 없다는 국민적 합의는 이루어진 상태다. 마지막 표결을 기다리는 개혁안은 잘라내기와 덧붙이기를 거듭하며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다. 완벽과는 거리가 멀다. 보수는 물론 진보에게도 만족한 모습이 아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완벽한 개혁이란 없다. 이렇게라도 첫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앞으로 수정을 거듭해가며 보완하면 된다.
지금 대부분 미국인의 노후 생활을 지켜주고 있는 메디케어와 소셜시큐리티도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입법화된 후 수십년 손질 거쳐 정착해왔다.
1965년 메디케어법 서명당시 존슨이 그랬듯이 이번 주말 오바마도 아시아순방을 떠나기전 “이제 더 이상 미국인들은 치료를 거부당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병 때문에 파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라고 선언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록 /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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